첫날
오이타(大分)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나선 지 1시간여 만에 예약한 오이타역 인근의 비즈니스호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런 호텔이 거의 처음이다. 고객은 대부분 일본 직장인이고 기본적인 영어도 잘 통하지 않고 조식도 일본식중심, 다만 식당과 24시간 편의점만 있을 뿐 그 흔한 온천도 제공되지 않는다.
둘째날
일단 벳부로 갔다. 오이타에서 3번째 역이 벳부역이다. 오이타와 벳부는 연담도시라고 할 수 있다. 벳부에서 유후인(Yufuin)까지 버스로 대략 1시간 정도인데, 높은 고개를 하나 넘는 기분이다. 유후인은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인데 버스터미널, 역 근처가 시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근에 ‘由布院’이라는 읍내가 있어 표기상 혼동되기는 하지만 유후인(湯布院)이 정확하다. 이 곳에서 직선으로 이어진,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들어선 거리에 가장 관광객이 많다. 우리나라 여행사들은 ‘민예거리’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유명 먹거리로 금상(金賞)고르게, 하니아이스크림이 있다. 고기와 감자가 들은 고르게와 아이스크림에 꿀을 뿌려주는 하니아이스크림를 골라 먹어 보는데 나름 맛이 있어 유명할만하다 싶다.
조금 더 들어가면 긴린코(金麟湖), 샤갈미술관을 만나게 된다. 호수라고 해보아야 우리의 저수지 규모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제법 운치가 넘친다. 호수에 면해 있는 샤갈미술관에는 비록 샤갈의 원작은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 오후 1시에 문을 닫아버려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대신 가게거리와는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 료칸거리로 가 보기로 했다. 이 거리는 무료 족탕도 있긴 했지만 주로 료칸과 주택들로 이어져 있고 더 없이 한가하고 여유가 넘친다. 그 중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어느 료칸의 커피숖을 찾아들었다. 커피 한 잔을 시켜서는 한껏 여유 있게 즐기고 있으려니 여행자의 조급한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나중에는 떠나기 아쉬운 지경이다.
세째날
도심 백화점 1층에 자리 잡은 오이타 시외터미널에 도착했다. 차고지는 시가지 외부에 있고 역앞, 백화점앞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자리 잡은 것이 특징이다. 우리도 적용해볼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 같다. 8시 45분 나가사키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편도로 4630엔에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서울에서 6000엔으로 구입한 SUN Q pass를 이용한다. 어제 유후인 왕복교통비용 2000엔을 고려하면 이미 플러스이다.
나가사끼 시외버스터미널은 역 맞은 편에 위치하고 있다. 나가사끼 시내에는 아직 전차가 운행 중이고, 이 전차를 이용하면 주요 거점 이동이 가능하다. 이 전차를 이용하여 가장 먼저 이동한 곳은 중화촌. 아는 일본 사람으로부터 추천받아 간 곳이 소천림(蘇川林). 유명한 짬뽕(ちゃんぼん)과 사라우동(皿うおん)이 1188엔.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짬뽕이라고 할 수 있는 나가사끼 짬뽕은 중국 복건성 출신 화교가 ‘걸걸飯(じぼん)’을 나가사끼에 전하면서 경식화되고 각종 바다와 산의 특산물이 들어가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다시 원폭 평화공원으로 이동한다. 원폭평화공원은 서편에 원폭기념물과 동편에 원폭기념관/추모기념관으로 크게 구분된다. 원폭진원지 기념물 인근에 자리 잡은 원폭기념관에는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면 원폭의 참상을 소개하는 자료가 전시되고 있다. ‘어떤 여름날(あの夏の日)’로 시작되는 표현을 통해 갑자기 당한 듯한 뉘앙스로 곳곳에 배여 있다. 성당, 학교, 아이들과 같은 무고와 성스러움 상징물들이 원폭으로 어떤 피해를 입게 되는지에 집중함으로써 그 참상을 극대화하고 있다. 단지 끝 부분에서 원폭의 원인이 되었던 일본의 도발을 ‘중일, 태평양전쟁’을 소개하는 정도에 이고, 가장 마지막에서는 세계의 평화선언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이 원폭의 피해자라는 암묵적 주장을 극대화하고 있다.
연접하고 있는 추모기념관은 주로 지하에 배치되어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자료실을 거쳐 추모준비실에 이르게 된다. 방명록이 마련되어 있고 원폭으로 인한 사망자의 흑색사진이 디지털화되어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 옆에는 흑색돌에서는 생명수가 같은 물이 조금씩 넘쳐난다. 이윽고 맞은 편으로 추모공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정복을 갖춘 남성이 정중하게 방향을 안내해준다. 약 40평대 규모에 8개 정방형의 옥색기둥이 천정과 맞닿아 있고 그 정면에는 죽은 이의 명부가 들은 기둥이 신주처럼 자리하고 있다. 잠시 숙연해진다. 그래, 이 죽은 사람들은 어쨌든 희생자가 아니든가.
그런데 생각이 이어지다 보면 당연한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왜 이들 무고한 양민들이 원폭 피해를 입었는가. 결국 위정자들이 침략전쟁을 일으켰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많은 양민들이 학살당하고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것을 온전히 부정하고 있으니 과연 피해자라고 주장할 자격이 있는가?
조금 더 다른 곳을 둘러볼까 하다가 오이타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렇게 당일로 왔다 가다 보니 나가사끼 도립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는 건축가 가우디와 일본 만화가의 특별전, 세계 3대 야경이라는 나가사끼 야경도 알 수 없는 미래로 기약할 수 밖에 없다.
기념품으로 유명한 나가사끼 카스테라를 선물용으로 몇 개 구입하고 다시 공용터미널로 돌아와 18시 30분발 오이타행 마지막 버스를 확인한다. 오는 것과 비슷한 시간을 거쳐 오이타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기대를 안고 지친 몸으로 오른다. 그런데 이 마지막 버스가 가관이다. 거의 20여 곳 이상을 들리고 승하차를 하다 보니 4시간 30분이 걸려 오이타에 도착했다. 분명히 안내판에는 ‘고속’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말이다. 거의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시간거리가 소요된 셈이다. 몸은 파김치이다.
넷째날
오늘은 벳부에서 온천을 하면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주 오래전에 이 곳을 방문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무엇 무엇이라는 지옥’은 가지 않기로 하고 지역주민에게 잘 알려져 있다는 묘반온센(明礬溫泉)으로 향한다. 벳부역에서 묘반온센으로 향하는 버스에는 ‘버스 도착할 때까지 일어서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자리마다 붙어 있다. 고령화시대에 맞는 준비가 우리도 필요하다. 노인연금만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바꾸어야 하고 의식부터 점진적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이타에서는 횡단보도에도 점자표시가 되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하나하나 바꾸어 나가야 할 것 같다.
온천마을에서 유노사토(湯の里)라는 유명한 온천 겸 식당으로 들어간다. 벳부의 지역음식 だんご汁(야채로 만든 탕), とり天(닭고기 튀김), やせうま(콩고물에 무친 얇은 줄로 된 떡)로 차려지는 정식을 시켜 맛을 보는데, 나름 독특하고 깊은 맛이 먹을 만하다.
인근 えびす라는 온천에서 1시간 2500엔으로 가족노천풍려를 즐기기로 했다.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는 온천시설이기에 호기심 때문에 이용해보지만, 가족들만 함께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외에 매력은 없다. 그런데 짧은 시간동안 탕 속에 앉아 있어도 이상하게 어지럽다. 1시간 이상 있으라고 해도 아마 더 이상 온천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시내 서점에 들려 31,200엔 어치 책 11권을 구입한다. 그런데 직원이 배달을 원하느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일본이 선진국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제공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미리 이야기해 준다는 점이다. 배달을 요청하고 호텔 주소를 알려주었다.
마지막날
이제 점점 지겨워지는 일본식 조찬을 간단히 마치곤 청바지를 사기위해 ‘Uniqlo'로 향했다. 어제 그곳을 다녀온 지인이 high rise 청바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성용은 regular rise 밖에 없다. 그래도 skinny가 아닌 straight가 있어 만족스럽다. 우리나라의 청바지는 모두 젊은 사람 취향 밖에 없어 난감했던 차였기에 2벌이나 구입했다.
온천열기로 해물찜을 한다는 식당을 찾은 시간이 1시 반이었는데, 9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팻말이 큼지막하게 걸려있다. 할 수 없어 버스로 시내에 있는 ‘水天’이라는 유명한 체인 초밥집을 찾았다. 여기에도 사람이 많아 결국 3시가 다 되어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메뉴를 잘 모르기에 세트메뉴를 시켰는데 회, 초밥은 대단하다. 다만 2000엔 이상의 비싼 가격이 거슬릴 뿐.
부른 배로 모래찜질(沙湯)을 한다는 온천을 찾았다. 벳부역 인근인데 찾아가다 보니 15년 전에 묵었던 ‘別府溫泉’이 보인다. 감동이 새롭다. 그 뒤편으로 갔더니 다케가다온센(竹瓦溫泉)이라고 하는, 일본에서 문화재로 인정받은 고색창연한 온천이 나타난다. 사탕을 하려면 1시간 반을 기다려야 한다기에 100엔을 내고 온천물에 몸을 적시는 정도의 대중탕을 이용하기로 했다. 큰 온천탕에 들어가 몸을 적시고 가볍게 닦고 나오는 정도로 수건도 비누도 샴푸도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 어제 예약해 놓았던 식당을 찾았다. 전국 からあげ금상에 빛난다고 소개하는 식당이었는데, ‘とめ手羽’(기름에 튀긴 닭 날개 끝) 몇 점을 시켜서 먹었는데 술 안주로서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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