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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600394의 diary
좋아하는 구절

자유

by k600394 2022. 1. 24.

자유 Liberté


             

                                   폴 엘뤼아르 Paul Éluard

나의 학습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해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상 위에

전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과 사막 위에

새 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로움 위에

일상의 흰 빵 위에

약혼 시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나의 하늘빛 옷자락 위에

태양이 녹슨 연못 위에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리고 그늘진 풍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새벽의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배 위에

미친 듯한 산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구름의 거품 위에

폭풍의 땀방울 위에

굵고 멋없는 빗방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모든 것 위에

여러 빛깔의 종들 위에

구체적인 진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살포시 깨어난 오솔길 위에

곧게 뻗어나간 큰길 위에

넘치는 광장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불켜진 램프 위에

불꺼진 램프 위에

모여 앉은 나의 가족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둘로 자른 과일 위에

거울과 나의 방 위에
빈 조개껍질 내 침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게걸스럽게 귀여운 나의 강아지 위에

그의 곤두선 양쪽 귀 위에

그의 뒤뚱거리는 발걸음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 문으로 가는 발판 위에

낯익은 물건 위에

축복받은 불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균형 잡힌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건네는 모든 손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놀라운 소식이 담긴 창가에

긴장된 입술 위에

침묵을 초월한 곳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무너진 내 등댓불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욕망 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회복된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리고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너를 알기 위해서 태어났다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자유여Liberté.

 

 

폴 엘뤼아르, 오생근역, <이곳에 살기 위하여>에서



* 자유. 어느 누구도, 어느 무엇도 나의 자유를 강제한 적이 없지 않았던가. 참 새삼스럽고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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