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대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
고정희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로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 사십대를 넘어 넘어, 육십까지 넘어서면 희열과 슬픔이 구분되지 않는다. 구분해야 할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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