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바틀비
오, 바틀비 김소연 모두가 천만다행으로 불행해질 때까지 잘 살아보자 던 맹세가 흙마당에서 만개해요, 사월의 마지막 날은 한나절이 덤으로 주어진 괴상한 날이에요. 모두가 공 평무사하게 불행해질 때까지 어떻게든 날아보자던 나 비들이 날개를 접고 고요히 죽음을 기다리는 봄날이 에요, 저것들 보세요, 금잔화며 양귀비며 데이지까 지 모두가, 아니오, 아니오, 고개를 가로저으며 하루 를 견뎌요, 모두가 아름답게 불행해질 때까지 모두가 눈물겹게 불행해질 때까지, 온 세상 나비들은 꽃들의 필경사예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몰아쉬 는 한숨으로 겨우 봄바람이 일어요, 낮달이 허연 구 멍처럼 하늘에 걸려요, 구멍의 바깥이 오히려 다정해 요, 반나절이 덤으로 배달된 괴상한 날이에요, 모두 가 대동단결하여 불행해질 ..
2021. 8. 15.
향수병
향수병 보들레르 어떤 물질이라도 뚫고 스며나오는 강한 향기가 있다, 그것은 유리라도 뚫으리라. 에서 건너온 작은 함, 오만상 찌푸리고 삐걱거리는 자물쇠 열면, 또는 버려둔 집에서 세월의 지독한 냄새 가득 밴 먼지 수북한 더러운 옷장 열면, 더러 옛 추억 간직한 오래된 향수병 눈에 띄는데, 되돌아온 넋 거기서 생생하게 떠오른다. 서글픈 번데기처럼 온갖 생각들 거기 잠들어, 무거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떨고 있다가, 날개 펴고 힘껏 날아오른다, 창공의 빛으로 물들고 장밋빛으로 칠해지고 금박으로 장식되어, 이제 취한 추억이 흐린 대기 속에서 나풀거린다, 눈을감는다; 이 쓰러진 넋을 쥐어 잡고 두 손으로 밀어낸다, 인간의 악취로 어두어진 구렁 쪽으로; 그리고 천년 된 깊은 구렁 가로 넘어뜨린다, 거기서 제 수의 ..
2021.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