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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600394의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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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도 한때는 울창한 숲이었다.

by k600394 2009. 8. 2.

이 도시도 한때는 울창한 숲이었다

                                              이기철

 

이 도시도 한때는 울창한 숲이었다.

이 빌딩도 한때는 부드러운 숲과 소낙비를 기다리는 나무들이었다.

이 쓰레기 매립도 폐차장도

한때 우리의 맨발을 받아준 꽃밭이었다.

우리를 잠시 그 자리에 서게 하는 신호등의 네거리도

한때는 파꽃 피는 채소밭이었고

뒹구는 고철덩이도 한때는 번쩍이는 은이었고 철이었다.

둥치가 썩은 전나무도 한때는 크낙새의 놀이터였고

지금은 톱날에 잘려 나간 앵두나무도 부리가 여린 박새의 집이었다.

한때는 그 숲 사이로 아름다운 짐승이 지나갔고

목걸이를 건 여자들과 팔뚝에 힘 오른 남자들이

팔짱을 끼고 지나갔다.

바람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거기서 시를 썼고

나무의 숨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그 곁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쓰레기 매립지와 폐차장 곁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이 도시를 파괴한 사람들도 우리 자신이듯이

이 도시를 나무와 숲과 새의 요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도

우리 자신이다

한때는 이 도시가 숲이었고 나무였음을 증언할 사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