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병
보들레르
어떤 물질이라도 뚫고 스며나오는 강한
향기가 있다, 그것은 유리라도 뚫으리라.
<동양>에서 건너온 작은 함, 오만상 찌푸리고
삐걱거리는 자물쇠 열면,
또는 버려둔 집에서 세월의 지독한 냄새 가득 밴
먼지 수북한 더러운 옷장 열면,
더러 옛 추억 간직한 오래된 향수병 눈에 띄는데,
되돌아온 넋 거기서 생생하게 떠오른다.
서글픈 번데기처럼 온갖 생각들 거기 잠들어,
무거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떨고 있다가,
날개 펴고 힘껏 날아오른다,
창공의 빛으로 물들고 장밋빛으로 칠해지고 금박으로 장식되어,
이제 취한 추억이 흐린 대기 속에서
나풀거린다, 눈을감는다; <현기증>이
쓰러진 넋을 쥐어 잡고 두 손으로 밀어낸다,
인간의 악취로 어두어진 구렁 쪽으로;
그리고 천년 된 깊은 구렁 가로 넘어뜨린다,
거기서 제 수의 찢는 냄새나는 나사로처럼,
썩고 매혹적이고 음산한 옛사랑의
유령 같은 송장이 잠깨어 꿈틀거린다.
그처럼 나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해묵은 향수병처럼 늙고, 먼지가 끼고, 더럽고,
천하고, 끈적거리고, 금이 가
음산한 옷장 구석에 내던졌을 때,
나는 네 관이 되리, 사랑스런 악취여!
네 힘과 독기의 증인이 되리,
천사가 마련해준 사랑하는 독약이여! 나를
좀먹는 액체, 오 내 마음의 <생명>이자 <죽음>이여!
* 윤영애 옮김 <악의 꽃>
** 지독한 향수가 담긴 병이 마지막까지 같이 하리, '혈연으로 엮인 산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