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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600394의 diary
길에서 길을 묻다

길에서 길을 묻다 93: 홍대

by k600394 2021. 6. 6.

이런 답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대학생활을 홍대 미대에서 보냈던 지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미술 교육현장을 눈으로 확인해보고 그 출신의 설명을 듣는 것은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일단 경의선 책거리의 끝지점에 자리잡은 큰 덩치의 AK몰에서 출발한다. AK몰은 5층 애니메이트, 홀리데이인 호텔 등 유용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경의선 책거리와 연트럴파크를 가로막고 서 있는 시각적, 기능적 장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의선 책거리는 그 모습 그대로였지만, 곳곳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도록 줄을 쳐 놓고 있어 을씨년스럽다. 와우산로를 만나는 곳에서 홍대 방향으로 올라서면 신촌의 상징, 산울림소극장을 보게 된다. 지금은 한창 공사중이다. 또 오래 전 가족들과 함께 찾았던 기억이 있는 난버벌 퍼포먼서 '발레리나를 사랑한 비보이' 공연장을 찾으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대략 별빛소극장였던 것 같긴 한데..
남쪽 주택가로 내려가면 임시거주용 건물들이 많다. 월룸, 다세대 등이 곳곳에 들어서있다.

 

그 가운데에 '대안공간 루프(loop)'가 자리잡고 있다. 크지 않은 전시공간인데 지하와 1층에서 영상창작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홍대정문까지 오는 길에 그 많았던 미술학원은 거의 문을 닫았다. 미대 입시에서 실기가 빠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곳 미술학원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영원한 미소'학원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홍대 정문을 지나 홍익문화공원을 지나치는 길이 홍대생들이 가장 애용하던 길이란다. 인디그룹 공연장이 많았던 길도 여기에서 연결된다. 사실 과거 클럽문화가 활발했던 이 곳도 거리마다 클럽 성격을 달리했단다. 극동방송국 앞은 락클럽, 클럽 헥사곤을 거쳐 포차로 영업중인 클럽은 과거에 m2, 윤형빈소극장 인근은 인디밴드, 그리고 홍대 입구 인근의 nb 등이 여전히 상징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문을 닫았거나 수리중이다. 여기 뿐만 아니라 대부분 상가의 1층에는 임대문의 광고판이 내걸렸다. 코로나정국이 이 거리도 이렇게 폐허같이 만들고 있구나 싶다.

 


이윽고 홍대 정문을 들어선다. 운동장은 지금 공사중이다. 학교의 중심 위치에는 원래 8층 규모의 미대가 들어서 있었다. 그런데 학교부지가 협소하다보니 바로 미대앞에다 본부 건물을 지어서 연결된 형태가 되었다. 지금은 거기다가 숲을 조성해 놓아 외부에서는 학교 건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숲길을 지나야 학교 건물로 진입할 수 있다. 언듯 낭만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 느낌은 조금 다르다. 교정 곳곳에서 야외조각전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영원한 미소' 제목의 작품 일부가 떨어져 나가 있는 것을 목격한다. 지인은 추락하는 모교의 위상 같다고 아쉬워했지만, 나는 그런 처지를 풍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미대 건물 뒷편에는 바로 와우산이 연접해 있고 통할 수 있어 색다른 느낌이다. 8층에서 부터 걸어 내려오면서 조심해서 잠깐씩 들여다 본 실습실에는 창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조소과에서는 수강중인 모습도 목격한다. 칠판과 백묵이 전부였던 나의 학창시절에 견주어 보면, 작품을 앞에 두고 깎고 붙이고 다듬질하는 진지한 작업이 낯설면서도 인상적이다.

 


호기심에 열려있는 스튜디오를 잠깐 기웃거리는데 지인은 학창시절 기억을 잠시 소환한다. 학생별로 일정 스튜디오가 할당되고, 거기서 작업을 하면 교수들이 그 스튜디오를 돌면서 작품을 지도하는 방식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스튜디오가 강의실이자, 작업공간이었고 회상한다.

 


학교를 빠져나오며 들린 홍문관내 '홍익대현대미술관'은 현재 진행행중인 전시회가 없어 닫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공간계획 없이 그냥 일부 남는 공간을 활용하듯 하여 명성에 비해 아쉬웠다. 얼마전에 들린 서울대미술관과는 대조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