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에서 회합을 마치고 늦어질 것 같아 인근 양평에 글램핑을 예약했다. 수 주전에 처음으로 글램핑을 했었는데,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다. 물론 이번에는 다른 글램핑장이었지만, 이 역시도 나쁘지 않았다. 컵 라면으로 대충 허기를 면하고 와인 한 잔을 즐기려는데 밖에서 비소리가 들린다. 이런 행운이 어디 있는가. 글램핑 입구 계단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음악을 들으면서 와인도 즐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모여든 많은 여치가 눈에 띈다. 하나같이 영 힘을 못쓴다. 무거운 날개가 비에 젖어서 그런지, 아니면 갑자기 낮아진 온도때문인지 알 길은 없다. 하기야 많은 것을 내려놓지 않고 지고 가려면 우리의 삶도 버겁고 힘겹지 않았던가.
누룽지탕으로 아침을 먹고 커피 한 잔까지 했는데 시간은 아직 8시를 넘지 않고 있다. 대개의 갤러리가 10시가 되어야 개장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그러다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한 곳을 발견했다. 구둔역. 영화 '건축학개론' 촬영지이다. 지금 역사는 굳게 닫혀 있고 색 바랜 객차 몇 량에다 영화 촬영지임을 알려주는 간판만 남아있지만, 영화 장면이 아련하게 기억나면서 나도 첫사랑의 청춘으로 돌아간 듯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서울로 가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양평여행'을 하기로 했다. 대략의 목적지를 정해 놓되 갑자기 생각나는대로, 눈에 보이는대로 들어가보는 무계획답사이다. 처음 들린 곳이 지평면 소재지이다. 갑자기 '지평막걸리'가 유명하다 싶어 지평막걸리 양조장을 찾아 들렸다. 지금이 공사중이었서 아쉬웠지만, 공사중인 건물의 규모와 외관으로 볼 때 완성되면 막걸리 타운이 되지 않을까 싶다. 거의 10시가 다 되어가는 것을 보고 양평군립미술관으로 향했다. 개관 10주년이 되었다니 대단하다 싶다. '비확정 매뉴얼: 드로잉 시점'이라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군민이 아니어서 1천원을 내야 했다. 참가하는 작품 수나 수준이 결코 대도시 갤러리 전시회 못지 않다. 영어로 된 작품 해설이 있을 정도이니 양평의 문화적 역량이 느껴진다.
착시 효과를 노린 작품이나 작가는 많다. 착시 효과 작가 M.C. Escher를 연상케하는 박승예, 볼펜작가 이일을 생각나게 하는 유승호, 철사에 예술성을 담은 한호, 휴머노이드가 끊임없이 그려낸 작품을 전시하기만 하면 되는 작품의 민찬욱- 그 작품은 휴머노이드 작품인가 아니면 민찬욱 작품인가, 상가건물의 생애주기를 시각예술로 표현한 설치작품의 권민호가 재미있다. 허윤희 작가의 드로잉 작품도 보이는데, <나뭇잎일기>로 유명한 그 허윤희가 맞는지 궁금증을 가지면서 미술관을 빠져 나왔다.
미술관 옆에 마련된 포도나무가 운치가 있다. 내 젊은 시절에 포도산지로 유명한 도시의 시장에게 시 경계 도로변에 포도나무를 심어 시의 이미지를 키워보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만약 실현되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양평군청에서 제공하는 '카페지도'에 의지하여 이곳저곳을 찾아본다. 쌀찐빵카페, 대나무 주제 카페, 복합문화센터를 찾았지만, 공사중이기도 하고 다소 실망하기도 했다. 점심식사 시간이 다 되어서 식사할 곳을 찾았다. 도로변 어느 두부집을 찾았는데, 가격은 서울 보다 비싼데 질은 그 반에도 못미친다. 이해가 어렵다.
마을회관 2층을 밥집과 카페로 이용하는 듯한 간판을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 무작정 가보았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코로나 시국때문이겠지만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싶다. 그런 곳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요즈음 국도의 휴게소는 경영상의 어려움이 많은데, 그 만큼 새로운 변신도 많이 보인다. 주유소는 그대로 사용하면서 대규모 조리용품마트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충분한 주차공간이 있는데다 건물을 새로 지어야 될 필요도 없으니 변신이 손쉬운 듯하다. 아예 장례식장으로 용도변경한 곳도 보인다.
'길에서 길을 묻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에서 길을 묻다 97: 인천 미림극장 (0) | 2021.12.04 |
---|---|
길에서 길을 묻다 96: 남양성모성지 (0) | 2021.10.17 |
길에서 길을 묻다 94: 비석마을 등 (0) | 2021.06.26 |
길에서 길을 묻다 93: 홍대 (0) | 2021.06.06 |
길에서 길을 묻다 92: 육조거리 (0) | 2021.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