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스스로 이 세상을 떠난 고등학교 동창녀석이 있다. 멀리서 마음이 안타까웠는데... 그의 딸 아이가 고교동창 블러그에 글을 올렸다. 얼마나 기특하고 감동적인지... 그 글을 옮겨 본다.
To. 해동고 37기 아버지들께..
안녕하세요? 저는 고 피귀동씨의 딸 피 O O 입니다..
집의 버팀목,. 제가 세상에서 제일 믿는 큰 산이 갑자기 사라져버렸습니다..이 현실이 믿기지도 않고 지금도 꿈이였으면 합니다.. 아버지가 평상시에 정말 저를 너무 이뻐해주시고, 저만바라보고 사시고, 제가 있어 행복하다 하시고 살아가는 의미가 되신다 하셨는데,, 아빠가 살아계실 때 제가 그 사랑의 마음에 비해 표현도 많이 못하고, 걱정만 시켜드리고, 불효만 드린 것 같아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쓰라리고...죄책감도 많이 듭니다.
아빠는 제게 있어서 큰 하늘이고 땅이었습니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제게 정말 큰 믿음이었습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밑으로 떨어지고 아플 때면, 항상 제 뒤에서 떨어지지 않게 잡아주시고, 아프지 않게 보듬어주시고, ‘너가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도 항상 아빠가 곁에 있어줄테니까 걱정하지마’ 라고 말해주면서 안아주셨어요...그 아빠 품 속에 지금 너무 안기고 싶습니다..
저번주에 아빠에게 안겨 있을 때, ‘아빠..많이 힘들죠? 제가 빨리 아빠한테 든든하게 보탬이 되줄테니까, 힘내세요, 사랑해요~’라고 속으로만 말하고 생각한게.. 백번이고 천번이고 후회가 밀려옵니다.
옆에서 어머니도 많이 힘들어하시구,,어머니가 저보다 더 힘드실텐데 제가 딱히 뭔가 해드릴 수 없는게 힘드네요... 어머니가 잠도 제대로 못주무시고, 눈을 감나 뜨나 계속 아버지 생각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세요..그 모습을 볼 때면 자꾸 마음이 미어지고,,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고 무기력해지네요...제가 이런데 아버지는 어떠셨을까요..
엄마랑 제가 힘들고 다칠까봐..편하게 아무 걱정없이 웃으면서 살게 해주고 싶어서 ...아버지가 그 많고 무거운 짐을 계속 이고 계셨던거같아요..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몇백배로 너무나 많은 무거운 짐이였단 걸 이번에 알게 되고,, 너무 큰 충격과 죄책감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아빠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고 아파하셨을지 ....엄마랑 제게 내색 한 번 제대로 하지도 못하시고..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을지... 이제야 깨달아요..올해는 더 이상 쓸쓸하지 않고 외롭지 않게 잘해드려야겠단 맘을 먹었는데.,,....
너무 늦게 마음을 먹은거 같습니다.... 아빠가 평생 끝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엄마랑 저를 책임진다고 하셨는데,,,그 말 ...의심치 않고 믿었었는데...
아빠가 이젠 그 무거운 짐 벗어버리면서 훨훨 가벼워지셨을까요? 조금은..편해지셨을까요.? 이제는 제가 어머니의 등대가, 아버지의 빛이 되어드릴 차례네요.. 아빠가 모든 짐을 털어버리면서 제가 의지할 수 있는 많은 아버지들을 주시고 가셨네요..
정말 진심으로 너무 감사드립니다..엄마와 제게 정말 큰 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떠나실 때 외롭지 않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 해동고 모임을 갔다 오시면 항상 오렛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번주에도 친구들보고 오시면서 그날따라 유난히 즐거워하시던 모습이..눈 앞에 선하네요.. 다른 누구도 아닌 제 아버지의 벗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부터 아빠를 위한 다짐을 더 굳건히 잡아서 잘 헤쳐나가겠습니다.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열심히 노력해서 잘 살아가는 모습, 굳건하고 강한 모습, 보여드릴게요! 아직은 헤쳐나갈 세상의 바다에 대해 무섭고 두렵지만, 많은 아버지들이 등 뒤에서 응원해주시고 기운을 붇돋아 주셔서 더욱 더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012.01.08.
고 피귀동의 자
피 O O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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