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k600394의 diary
좋아하는 구절

수첩

by k600394 2017. 1. 19.



수첩

                                                        김경미

 

도장을 어디다 두었는지 계약서를 어디다 두었는지

 

구름을 어디다 띄웠는지 유리창을 어디다 달았는지


적어놓지 않으면 다 잊어버린다


손바닥에 적기를 잊어버려

연인도 바다고 다 그냥 지나쳤다

 발꿈치에라도 적었어야 했는데 새 구두가

약국도 그냥 지나쳤다


시간도 적는 걸 잊자 한 달 내내

양파가 짓물렀다

토끼똥이 한가득씩 어깨로 쏟아졌다


때론 살아 있다는 것도 깜박 잊어버려

살지 않기도 한다


다만 슬픔만은 어디에 적어두지 않아도

목공소 같은 몇만 번의 저녁과

갓 낳은 계란 같은

눈물 자국을

어디에고 남기고 또 남긴다

 

'좋아하는 구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라보다리  (0) 2018.02.12
나에게 주는 시  (0) 2017.01.19
첫눈  (0) 2016.03.3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0) 2015.02.23
스피커  (0) 2014.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