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역은 인천의 역사를 간직한 중심이다. 신포시장, 송현시장 등 시장으로 둘러쌓여 있고 일제 이후 곳곳에 근대화의 유산과 이야기을 간직하고 있다. 1899년 경인선(제물포-노량진) 개통 때에 축현역이었다.
동인천역에서 내리면 인천 미림극장은 도보권이다. 미림극장은 1957년 평화극장이라는 천막극장으로 시작했다. 2013년 다시 재개관하여 실버극장 형태에 머물다 이제 지역 문화의 거점으로 지평을 확대해가고 있다. 특히 청소년, 젊은 세대가 함께 할 수 있도록 문화거점으로 노력하고 있다.
인천 사회적기업협의회가 위탁운영하고 있으나 경영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각종 공모사업, 어린이들의 교육프로그램, 단체 관람유도, 요코하마 잭앤베티 영화교류전, 대학생 서포터즈 운영, 독립영화 상영 등 다양한 사업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단다.
인근에는 국내 최초 영화관인 애관극장이 있다. 5개 멀티플렉스로 재탄생했으나 여기도 경영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이다. 시민단체와 지자체가 합심해서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3층 283석 규모에 2개층 관람이 가능하다. 그런데 사실 이 극장도 현재 개인 소유란다. 최근에 20억원에 매각되어 상가로서 변신을 꾀하고자 한단다. 지근거리에 2500세대 아파트가 들어서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영향을 미쳤다.
월 200만원 급여를 주는 상근직원의 급여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2회 근무 형태로 바꾸었단다. 관람객수가 평균 183명/일이 이제 30명/일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란다. 관람객은 90%가 남성이고 그 90%가 혼자란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의 운신이 기대된다. 그동안의 행보를 볼때 비극으로 막을 내리지 않을 것 같다.
기념촬영 이후 800미터 떨어진 인천도시산업선교회로 옮긴다. 1960년대 산업화 시대의 선교활동, 노동자의 요람 역할을 했던 교회이면서 mission community이다.
최근 화수화평 재개발사업으로 없어지게 되는 위기에 처해지게 되어 목사님들이 157일 순회단식농성 중이다.
노동과 산업유산의 의의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동일방직 여공들이 당시 불온세력으로 치부되면서 생존을 위해 학습하고 투쟁했던 뜨거운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 목회자도 노동자와의 눈높이를 위해 여성 목회자는 6개월, 남성목회자는 1년동안 취업하였단다. 소위 위장취업이라 불리는 것을 했다는 것이다.
선교회를 출발하여 '노동자의 길'따라 걷는다. 김도진목사님이 앞장서 주셨다. 일제때 부평 조병창을 지원하는 조선기계제작소와 같은 군수공장이 이곳에 있었고 이 곳에 일했던 기술자들의 사택이나 주거지가 많이 남아 있었다. 지붕 하나에 여러 채의 주택이 함께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제때 화수진이 군사전략기지였으며, 간척지를 확보하여 공장부지로 이용하게 되었다. 그 기술자들이 주거했던 곳이다. 양초공장, 양조장도 많았단다.
또 인근에는 해방 이후 판자촌이었던 괭이부리마을도 있다. 김중미의 소설에 등장하는 마을이다. 지금일부 임대주택으로 편입되었지만 여전히 그 모습이 남아 있다.
마지막은 동일방적이다. 현재는 폐업상태이며 베트남 등지로 기계를 옮겼단다. 산업 및 근대화 시기에 여성과 노동문제가 집적된 현장이다. 동일방적이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이 모두가 동인천역 근처인데, 여기에 세숫대야 냉면으로 유명한 화평동 냉면거리가 있다. 그러니 늦은 점심은 당연히 세숫대야 냉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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