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그늘만 찾게 되는 뜨거운 날씨였다. 성북동 길상사는 녹음이 더욱 짙게 드리워져 있다. 서늘한 기운 덕분에 사찰산책이 여유로워졌다.
길상사는 백석 시인과 자야와의 인연, 요정 대원각 기부, 법정 스님의 입적 등 이야기 거리가 넘치는 곳이다. H자 대웅전, 법정 스님 진영각, 최종태 작가의 보살상 등 눈요기 거리도 많다.
옛 추억을 더듬어 금왕돈까스를 찾아 나섰다. 자연스레 동네산책이 되었다. 회원제 단독주택관리회사의 간판도 눈길을 끌고, 넥타이박물관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수연산방에서 커피 한 잔하려던 계획은 넘치는 대기손님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다. 현대문학 선구자들 모임이었던 구인회의 문학 사랑방이었던 수연산방은 월북소설가 이태준의 고택이다. 그의 소설은 잘 모르지만, 그는 천재시인 이상을 중앙일보에 추천하여 오감도를 싣게 했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성북구립미술관을 거쳐 도착한 금왕돈까스는 여전히 옛 맛을 간직하고 있었다. 크림수프, 덩치 큰 돈까스와 소스가 그대로이다. 그런데 사실은 어릴 때 부터 돈까스를 좋아 하지 않아 30년만에 먹게 되는 추억의 돈까스에도 별 감흥은 없다. 많은 양을 남기고 일어섰다.
인터넷으로 예약했던 3시에 맞추어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도착한다. 간송미술관은 전형필 선생이 1938년에 완공한 국내 최초 사설미술관이다. 이 미술관 보화각에서 '보화수보'를 주제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보배같은 문화재를 수리보수하여 그 과정과 성과를 소개하는 자리이다. 장승업, 김홍도 작품 등이 여하히 수보되었는지를 안내하고 있었는데, 작품 수가 많지 않고 협소한 전시공간이라 아쉽다. 오래되고 낡은 이 미술관이 다시 재개관하여 문화애호 시민들과 계속 함께 하길 기대한다.
성북동에는 또 선잠단지와 선잠박물관이 있다. 조선시대에 의류의 소재는 무명 또는 삼베, 비단에 국한되었다. 그러다 보니 누에고치 농사는 한해를 따뜻하게 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관건이 되었다. 그래서 각별한 정성으로 하늘에 누에고치 농사의 풍년을 기원했던 것 같다. 그 제사를 지내던 선잠단은 그냥 말뚝 경계의 땅만 남아 있고, 지근거리에 구립 선잠박물관을 만들어 의의를 알려주고 있다.
최순우 옛집이 있는 곳도 성북동이다. 국립현대박물관장을 역임했던 최순우가 살았던 집이다. ㄱ자 본채와 ㄴ자 아랫채가 마주 보고 있는 구조다. 그 사이의 작은 중정은 우물이 소담스럽고, 뒷뜰은 툇마루에 앉아 햇살 즐기기 딱 좋은 듯하다. 권진규 아틀리에와 함께 시민단체 한국 내셔날트러스트가 관리하는 근대 한옥이다.
오늘은 지나쳐 왔지만 심우장, 서울 성곽도 성북동에 있다. 이렇듯 성북동은 근현대의 역사 현장이면서 아직도 그 역사가 숨쉬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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