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생소한 경북 '군위군'에 사유원이 있다. 사유원은 자연과 건축이 조화를 이룬 사색의 공간이다. 정영선, 승효상, 알바로 시저의 이름이 함께 하는 사유(思惟)지이다. 서울에서 멀기도 하거니와 예약도 여의치 않아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날잡고 나섰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동군위 IC에서 빠져 나와 처음 들린 곳은 군위군 화산에 자리 잡은 바람의 언덕이다. 화산 일대는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600미터이상의 고지이고 오지였다. 화산으로 올라가는 급경사 도로를 따라 20여분을 가면 풍차전망대에 도착한다. 풍차 모양의 관광안내소와 액자 모양의 포토 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기서 내려다 보는 군위호의 전경이 대단하다.
호국산성으로 알려진 화산산성은 현재 공사중이라 차량접근이 제한되어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마을체험관에 들렸지만 문이 굳게 잠겨 있어 그나마 요기할 수 있는 기회도 얻지 못했다.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 돌아와 조금 더 올라가면 하늘전망대에 다다른다. 올라가는 길에 카페도 보이지만 급한 경사지라 들어가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부 구간은 도로가 심하게 패여 있어 승용차 이용자들은 낭패를 당할 수 있을 것 같다. 더욱 정확하고 정교한 안내판을 설치하고 도로도 다시 잘 정비해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체계적인 관리와 정비에서 계획성이 가미되어야 할 것 같다.
다시 내려와 갈림길에서 2.3킬로 더 들어가면 육군3사관학교 화산유격장이 있다. 군의관, 학사장교, 석사장교 후보생들 유격 교육을 담당했던 부대이다. 이 유격장에서 빨간 모자를 쓰고 유격조교로 군 생활을 했었다. 기억을 더듬어 막상 부대 앞에 도착해 보니 부대의 정문도 열려 있고 부대원도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 부대가 이동했거나 없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40여년전 내 청춘을 받쳤던 이 곳에 이제 아무도 알 수 없는 추억만 남겨졌을 뿐이다.
내려오는 길은 훨씬 쉬웠다. 아는 길은 언제나 쉽다. 그리곤 인각사로 향한다. 642년 의상대사 또는 원효대사가 설립한 절의 이름이 `기린의 뿔`이라니 참 묘한 기분이다.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1200년대에 삼국유사를 저술한 곳으로 알려진 인각사(麟角寺)는 과거에는 고로면에 속했지만 2021년 1월 삼국유사면으로 변경되었다. 대웅전 등은 소실되고 지금은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저술했던 곳으로 알려진 극락전만 남아 있다. 발굴작업도 새로 한 듯하고 명부전, 요사채도 새로 조성하고 있어 경내가 어수선하다.
거기서 차량으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삼국유사테마공원으로 향한다. 서울 어린이대공원 크기만한 1만 km2 부지에 어린이놀이시설, 승마장, 글램핑장, 삼국유사주제관이 들어서 있다. 군위군에서 운영하고 있다는데 재정이 걱정이 될 정도로 시설이용객은 적다. 평일이라 그런가.
숙소로 향하면서 화본역에 들린다. 하루 몇 번 운행하지 않는 역사를 예쁘게 조성하여 관광객을 맞는다. 승무원 관사는 재생하여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다방, 치안센터 등도 새롭게 가다듬어 화본마을은 소소하게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사유원 정문 앞에 도착하면 창평지라는 큰 저수지를 맞딱뜨리게 된다. 둘레 1.8 km를 둘레길로 만들어 놓아 산책하기에 참 좋다. 9시가 되자 안내자가 간단한 안내인사와 함께 GPS, 안내 팜플레, 생수를 내놓는다. 내방객은 지도를 보고 알아서 코스를 정해야 했다. 일단 가장 꼭대기에 있는 카페를 목적지로 정해 놓고 오르기로 했다. 마닐라삼 매트가 주변 풀과 잘 어울려서 정동공원에서 보았던 엉망의 모습과 비교가 된다.
소백세심대를 거쳐 도착한 카페 이름은 가가빈빈. 건축가 최욱의 작품인데, 팔공산 비로봉을 조망할 수도, 넉넉한 수변공간도 내려볼 수 있어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발을 담글 수 있도록 마련된 행구단도 인상적인데 이 역시 최욱의 작품이다.
카페에서 더위를 식히고 찾은 건축가 승효상의 '명정'. 작가는 건너편 붉은 피안의 세계를 생각해보라지만 건축작품에 빠져 이해하고 해석하기에 바쁘다.
그리고 알바로 시자의 '안심낙원'은 작은 공소같지만, 그의 건축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비비례 사선과 빛, 도형적인 감각이 그대로 담겨 있다.
승효상이 설계한 '사담'에서의 점심 성찬은 기대 이상이다. 6만원의 가격이 과하지 않다 싶다. 그리곤 길을 떠나 다음 작품들을 재촉한다.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오당 와사는 다섯개의 연못 위에 철 재질의 통로를 씌워 넉넉한 사유의 시간으로 이끌고, 현암은 승효상의 이 곳 첫 작품으로 조망공간이다.
또 다른 알바로 시자의 작품인 ㄷ자 형태의 피사의 사탑, 소대는 사소한 공간 조작으로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의 나약함과 공간의 위력을 실감한다.
세번 째 시자의 작품 소요헌은 ㅅ자 형태의 전시공간이자 카페, 미팅 공간이다. 입구는 사람을 빨아들이듯 물결치고 있고 카페, 미팅공간을 지나면 ㅅ자의 통로가 등장한다. 그 사이는 중정 형태의 개방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사유원은 더운 날씨에 급한 경사지가 많아 마치 유격훈련을 치른 기분이다.
서둘러 안동으로 이동하여 한옥 구르메에서 하룻밤을 쉰다. 구르메는 한옥을 집단화하여(한옥을 이건하여) 야외결혼식장, 북카페, 기념품점, 식당, 그리고 한옥숙소를 조성한 시설이다.
경북도청이 들어선 신시가지 명칭은 따로 없다. '경북도청신도시'라 한다. 권위적인 한옥 건물로 채워진 경북도청 건물,
아직도 채 채우지 못한 다양한 도시기능 공간을 일별하고 부용대로 향한다. 안동하회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부용대이다. 여기로 접근하는 도로가 만족스럽지 않지만 새롭게 정비한 곳이 많아 나름 편안하다. 그리곤 영주 무섬마을로 향했다. 과거 마을이 섬처럼 되었다가 작은 다리가 놓이면서 외부로 연결되었던 마을이다. 시인 조지훈의 처가도 이 마을에 있었다. 과거에는 수도리(수도마을)였지만 뭍과 연결되면서 물, 섬이 연결되어 무+섬마을이 되었단다.
6시를 넘겨 서울에 도착하니 '동네음악회'는 이미 끝났지만 와인 함께 하는 동네 친구들과의 흥겨운 자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슬쩍 말석에 끼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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