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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600394의 diary
길에서 길을 묻다

길에서 길을 묻다 5: 담양

by k600394 2009. 7. 4.

다섯 번째 길에서 길을 묻는다

일시: 2009. 6. 12 - 13

장소: 전라남도 담양

 

 

6/12

호남선을 이용하기 위해 용산역으로 향하는 마음에는 벌써 여유가 넘친다. 사실은 요 며칠사이 공중에 붕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기말고사 후 학생들의 질의와 답변, 다음 주에 있을 국제 워크샾 준비, 출간을 위한 원고 취합, 과제를 위한 설문조사 등... 그래서 떠날 형편이 아니지만 이럴 때 과감하게 떨치고 떠나자고 했던 나의 결심이 아니었던가. 몇 가지 일들을 미루어 두는 것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2박3일동안은 다 잊어 버릴 작정이다.

메모수첩과 책 한권을 배낭 속에 집어넣고 운동할 때 사용하는 MP3의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용산역에 도착한 시간은 채 9시도 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담양을 목적지로 정했지만 어떻게 가야할 지는 아직 몰랐다. 역무원에게 문의를 해보고 내린 결론은 KTX를 타고 광주에 들렸다가 거기서 담양행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좋을 듯했다. 그런데 광주행은 KTX 배차간격이 너무 길어서 맞지 않는 반면 광주 송정리로 가는 목표행 KTX가 오히려 시간이 맞았다. 광주 송정리에서 광주시내까지는 40분 정도의 거리라는 역무원의 말에 일단 송정리행 KTX에 몸을 실었다.

약 3시간 만에 광주 송정리에 도착했다. 광주지하철1호선을 이용하여 화정으로 이동하였고 거기서 걸어서 20분 거리의 광주종합터미널에 도착했다. 광주지하철은 처음 이용해 보았는데 서울의 지하철보다 폭이 좁았고 차량길이도 짧아 보였다. 도착한 광주종합터미널은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로 에워 쌓여 있었다. 어려운 경제사정을 반영한 것도 있겠지만 터미널은 일본이나 홍콩에서처럼 입체화된 형태로 이용되어야 할 것 같은데, 시골버스터미널이나 대도시버스터미널이나 전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담양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버스가 있었다. 이천원 요금을 내고 담양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외버스는 광주역 후문(아 여기가 광주역이었구나!!) - 서방시장(폭력조직 서방파의 본거지는 여기였나?) - 말바우시장(말바우가 무슨 뜻일까?) - 무등도서관을 지나고 있었다. 재래시장 주변지역에서는 도로가 이미 장사하시는 분으로 넘쳤고 차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아마 장날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거쳐 가는데 대도시 근교 고속도로임에도 불구하고 차량이 한산했다. 함양까지 97Km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영호남이 서울보다 짧은 거리에 살면서도 마음은 서로 많이 멀어져 있구나 싶다.

담양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광주광역시담양군통합추진위원회’간판이다. 버스로 소요된 시간이 30분도 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 담양군의 실제 생활권이 광주에 속하는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죽향의 고향답게 대나무 가로수도 보였는데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

물어서 물어서 간 모텔에다 배낭을 풀고 다시 시내로 나왔다. 지도를 보고 찾아간 곳은 담양의 메타세과이어길이다. 국도변 6.5Km에 걸쳐 메타세과이어길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일부는 자동차통행을 막고 도보나 자전거만 이용할 수 있도록 관리되고 있었다. 수령이 불과 4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늘까지 꽉 채우고 있었다. 서울 건대앞 스타시티를 메타세과이어 중심으로 조경을 하였는데 비용도 많이 들지 않고 조경효과가 컸었다는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끝 지점에서 관방제림으로 방향을 틀었다. 담양천변에 높이 3m 정도의 제방을 쌓고 거기에 팽나무, 느티나무를 심어 형성된 것이 관방제림이다. 수목에도 그 역사가 베여있는 것 같다. 중간 중간에 통일되지 않은 다양한 모습의 목제의자도 있고 평상도 있어서 편안한 느낌이다. 그리고 관방제림의 지근거리에 죽녹원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메타세과이어-관방제림-죽녹원을 도보로 둘러볼 수 있는 시내관광루트였다. 죽녹원은 울창한 대나무밀집지역인데 지친 다리 때문에 대충 둘러보고 저녁 먹을 궁리만 한다. 역시 가까운 거리에 승일식당이 있었다. 숯불돼지갈비 전문인데, 유명하다고 해도 돼지갈비가 그 맛이겠지 싶었는데, 맛이 색다르다. 식당 안 한 켠에 아주머니들이 쪼그려 앉아 돼지갈비를 굽고 있다. 이렇게 구워진 돼지갈비를 상에 내놓는 것이다. 전문가가 구우니까 적당하게 잘 구워진데다 굽은 과정에서 생기는 냄새 걱정을 할 필요도 없어 술안주로 제격이다 싶다.

저녁 식사 후 힘을 내어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 일정을 생각해보다 군청에서 발행한 안내책자에 소개된 하루일정 소쇄원관광투어를 이용하기로 했다. 1만7천원이면 비싸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침 예약이 취소된 것이 있어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광주역 광장에서 투어출발이 시작되어 담양시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소쇄원으로 이동하는 코스였다. 하는 수 없이 광주역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광주역으로 가는 것이 오히려 시간과 교통비가 동시에 절감되었기 때문이다.

 

6/13

광주역 광장에 도착했더니 이미 관광버스가 와 있었다. 중년 여성의 문화관광해설사가 가이드역할을 겸하고 있었는데, 설명이나 안내가 사실 매끄러운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법, 열심히 알려주려는 모습이 진지하다.

설명은 무등산에서 시작했다. 무등산은 1187m로 담양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산이란다. 광주의존적인 담양은 점차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통합되어야 절실한 사정에 와 있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가장 먼저 도착한 가사박물관에서는 많은 공부를 했다. 가사(歌辭)라는 것은 말을 노래처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가사박물관의 안내자가 시범을 보인 가사 한 구절에서 전율을 느꼈다. 판소리를 개념으로만 이해하다가 창극 공연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대학원시절이 생각난다.

다음에 도착한 소쇄원은 4,060m2규모로 크지 않다. 광고나 관광책자에 워낙 많은 내용이 알려져 있고 기대가 커서 그런지 다소 실망스럽기는 하였다. 다만 이 정원을 관람할 때는 대충 밖에서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처럼 실제 정자에 앉아서 밖을 관조해야 그 느낌을 느낄 수 있다는 하는 일행 중 한사람의 설명은 기억에 남는다.

대통밥으로 점심을 하고 느림의 철학에 따른 슬로시티(cittaslow)마을을 방문하였다. 옛날 꼬불꼬불한 마을길을 그대로 복원하고 메주와 같이 전통적인 방식에 의한 재래산업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과거 현청터에 자리 잡은 달팽이시장에서는 지역주민의 직접 재배한 특산물이 많이 있었다. 나도 9천원을 주고 미숫가루 한 봉투를 샀다.

메타세과이어-죽녹원은 이미 어제 둘러보았기에 차 한잔 마시는 것으로 대신했다. 담양한과에 들러 한과 만드는 시범을 보고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하였다. 제사상을 차려준다는 홍보문도 눈에 띈다. 얼론 전화번호를 적었다. 061-383-8283. 처음에 시큰둥했던 사람들도 점차 관심이 높아졌다. 일본의 어느 유리공장을 방문하여 제조과정을 둘러보고 인근 판매장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했던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광주역 광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6시30분. 그런데 서울로 가는 KTX가 6시 40분에 있단다. 마음 시키는대로 KTX에 얼른 몸을 실었다. 앞으로 3시간동안 편안한 귀경길이 되겠다. 차장 밖은 아직도 한낮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