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길다 3회
일시: 2008. 10. 2 - 3
장소: 변산반도
10/2
9시 55분 용산역에서 김제를 향하는 새마을호에 몸을 실었다. 오후 1시 10분에 도착예정이니 3시간 15분이 소요되는 셈이다. 원래는 장날이 있는 정읍으로 갈 작정이었으나 변산반도에서 낙조를 볼려면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 같아서 변산반도 접근이 용이한 김제로 정했다. 열차 안은 한가했다. 호남선을 이용하는 이용객이 많지 않기도 하거니와 빈자리가 많은 것을 보면서 철도공사의 적자를 괜히 걱정하게 된다.
김제역을 나서면서 기대치 않은 행운을 만났다. 올해 10회를 맞는 김제의 지평선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4년 연속 대한민국최우수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역에서 행사장인 벽골제까지 15분 간격으로 셔틀버스가 무료로 운행되고 있어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셔틀버스는 꽤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 그러자 뒤줄에 서 있던 초로의 아저씨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러니까 안되는 거여. 일본놈들을 욕하지만 아직 우리가 일본놈 따라 잡으려면 한참 남았어” “시간표가 있으면 시간표를 지켜야지 지키지 않을 시간표는 무슨 소용이여” 틀리지 않는 말이었다. 중년아주머니도 거들었다. “왜 이리 버스가 자주 오질 않는거여, 빨랑빨랑와야지” 우리나라 남자들이란, 문제가 있다 싶으면 국가관과 역사까지 넘나들며 구조주의적인 식견을 마구 토해내지만 역시 여자들에게는 간단한 개인적인 불만에 불과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이윽고 셔틀버스가 왔다. 이때 역 광장에서 도시락을 먹어가면서 안내하던 아주머니 도우미의 활동이 대단하다. 행사장에서 다녀오시는 분들은 주로 노인들이었는데 한분한분에게 말들을 건넨다. “송해 보셨어요?” “왜 끝까지 안보고 오셨어요?” “덮지요? 그래도 운동은 되셨을거예요” 행사장에서는 전국노래자랑대회가 열리는데 그 구경갔다가 오는 노인들에게 한마디씩을 건네는 것이었다. 유니폼으로 무장한 젊은 여자도우미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정겨움이었다. 아르바이생들의 surface acting과 자원봉사자들의 deep acting과의 비교가 될 수 있겠다.
셔틀버스를 타고 벽골제에 자리잡은 행사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지역축제라는 것이 경로잔치이상인가에 대해 의구심이 가셔지지 않는다. 축제의 참석자가 대부분 지역 촌로들인데다가 주로 먹거리장터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몰려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나도 행사보다는 식당을 찾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그곳에 동이나 면에서 직영하는 식당이 있었는데, 어느 동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3천원짜리 시래기된장백반이었는데, 쌀이 좋아서 먹을만했다.
그런데 행사장에서 나오는 일이 문제였다. 셔틀버스도, 택시도, 시내버스도 보이지 않았다. 행사장으로 나오는 승용차를 막무가내로 세울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중년남자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얻어 탈 수 있었고 친절하게도 터미널까지 데려다 주었다.
터미널에서는 부안행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격포행 버스는 무려 2시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부안을 거쳐 격포로 들어가기로 했던 것이다. 2시간을 걸려서 도착한 격포항. 사실 낙조를 보고 싶어 서둘러 왔다. 그동안 수차례 서해안의 낙조를 찾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마침내 회센터에서 전어회를 함께 하며 낙조를 보는 행운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거대한 붉은 기운이 저편 섬사이로 사라졌다. 오랫동안 하늘은 붉게 남아 있었다.
10/3
서두르지 않고 넉넉하게 일어나 내소사로 떠났다. 2시간간격으로 있는 버스를 놓쳤기에 택시비로 3,40분거리에 왕복 30,000원을 부담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나와 같은 처지에 처한 여행객을 만나 택시비를 나누어 낼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해야 했다.
능가산 내소사는 국립공원 변산반도내 자리잡고 있는데, 소정방이 왔다갔다는데서 절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 temple stay 안내(063-583-3035) 플랙카드가 관심을 끈다. 평일도 가능하지만 주로 토요일과 일요일 1박2일로 진행되며 트레킹과 발우공양 중심으로 진행된단다. 언젠가 한번 꼭 찾고 싶다.
경내에 도착했다. 경내 한가운데에 전나무 1000년 보호수가 자리잡고 있다.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무설당(無說堂), 요사 등 자리잡고 있지만, 정연한 배치가 아니다. 대웅보전은 원래 단청이 없었던 것인지, 색이 바랜 것인지 구분이 어렵다. 숲 해설사가 한 무리의 관광객을 모아놓고 설명을 하고 있어 귀동냥을 하려했지만 관광객들의 소음에 잘 알아들을 수 없다. 종각계단에 앉아 그냥 즐기기로 했다. 하늘도 쳐다보고...
택시기사가 소개해준 식당에서 요기를 하고 다시 격포로 돌아왔다. 택시기사는 뽕나무가 많아 여름철에 들리면 좋은 오디를 가져갈 수 있다고 자랑한다. 동승한 여행객은 얼마 전 선운사의 청보리축제에 다녀왔는데, 인상이 깊었다며 다음 한번 참여해보라고 권한다. 오는 길에 폐교된 운호초등학교에 미술관펜션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콘도에서 제공하는 관광버스를 예약해서 서울로 돌아 왔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도로주변이 온통 방음벽 차지가 되어버린 것이 눈에 거슬린다. 도시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도로경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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