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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600394의 diary
길에서 길을 묻다

길에서 길을 묻다 18: 성북동 문학기행

by k600394 2014. 4. 14.

 

오늘 길길다 모임에서 ‘성북동 문학기행’을 하기로 했다. 부동산을 단순히 부가가치 창출의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저간의 행태에 불만스러워 마련한 자리였지만, 참여가 저조하여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겠다 싶다. 대신 호텔관광경영학부와 함께 한 행사이기도 한데, 호텔관광경영학부 젊은 학생들의 열정과 의욕이 내내 답사를 활발하게 했다.

길잡이로 모신 유진숙 작가는 교직생활을 그만두고는 많은 문학기행을 기획하여 진행한 경험이 풍부한 문학기행 안내자로서,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을 출간한 저자이기도 하다. 그녀의 구수한 입담과 열정 넘치는 안내로 길상사에서 출발하였다.

길상사는 과거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던 곳으로, 그 주인이었던 김영한(자야)이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스님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받고 헌납한 절이다. 대원각 주인 자야는 월북 시인 백석과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월북 시인으로 치부되는 백석이지만 북한에서는 진작 낭만주의적 시풍으로 인해 사상적으로 혹사당하고 노동자로서 생을 마감하였던 비운의 시인이기도 하다. 시인 신경림이 서슴없이 자신 시의 스승으로 대기도 할 정도이면서, 이동순이 정리한 ‘백석시전집’에는 아름답고 낭만적이며 회화적인 시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로 시작하는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라는 시는 특히 유명하다.

역시 월북작가 이태준이 기거했던 ‘수연산방’도 일부 훼손되기는 했으나 그 아름다운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은 찻집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대개의 월북작가와 마찬가지로 그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도 결국 북한에서 극단적인 비운을 맛보게 된다. 글 잘 쓰기로 유명한 이태준은 ‘오몽녀’, ‘파초’ 로 유명한데, 길잡이 유작가는 그가 쓴 ‘문장강화’가 당대에 글쓰기의 전형이 될 정도로 좋은 책이라며 일독을 권한다.

다음에 찾아간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의 옛 이름이다. 일제 때 간송 전형필이 가진 재산을 모두 털어 문화재를 되찾아 와서는 보화각에 보관하였으며 오늘날 간송미술관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그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는 ‘간송 전형필’에 전해져 온다고 하고, 지금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선 DDP에서는 간송미술관 특별전이 열리고 있단다. 읽어야 할 책과 답사해야 할 곳이 또 하나 더 생겼다.

이재준 가옥으로 알려진 이종석 별장은 덕수교회 뒤편에 자리 잡고 있어 도로에서 쉽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 교회수양관으로 사용되고 있다는데, 보인학원 설립자인 이종석이 여름 별장으로 지은 곳으로 날렵한 기와지붕선, 장독대, 그리고 소담스러운 조경과 그 마당이 한없이 편안하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심우장으로서 한용운이 거주하던 곳이다. 현재 그 주변일대는 한옥 50여 채를 복원하고 테라스하우스 등 4층 이하의 저층주택으로 재개발계획이 확정된 상태이기도 하다. 그의 정신과 문학이 구조물, 공간으로서는 어떻게 재탄생될 지 궁금하다. 간단한 요기 후 단절된 서울성곽을 따라 혜화문으로 향한다. 학교, 빌라단지의 담벼락으로 이용되고 있는 서울성곽 잔존물을 보면서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다.

 

 

                                                          심우장에서 문학기행 참가자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