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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600394의 diary
길에서 길을 묻다

길에서 길을 묻다 17: 대전 이응노미술관

by k600394 2014. 2. 12.

 

 

첫날

방학인데 참 어찌 그리 바쁜지... 마음이 바쁜 탓이리라. 여유가 없는 탓이리라.

큰 마음먹고 점심식사를 마치자 마자 서울을 출발했다. 일정도 목적지도 없었다. 딱 한 곳, 대전의 이응노 미술관 한 곳만은 정해졌다. 그동안 이응노 화백을 동백림사건과 관련 있었던 재불화가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덕수궁 석조전이 현대미술관 서울분원으로 개조하여 개관되었는데, 그 기념으로  ‘한국근현대미술 100인작가전’이 열렸다. 전시회를 관람하다가 간결하고 실험적인 그의 작품에 매료당했다. 전시회에는 마침 그의 작품이 몇 점되지 않아 본격적인 그의 작품 감상을 위해 대전행을 결정한 것이다.

대전 정부종합청사, 대전시립미술관 인근에 자리 잡고 있는 이응노미술관은 현재 그의 미망인이 명예관장으로 있으면서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때마침 미술관에는  ‘조용한 행동주의’라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상시로 전시되고 있는 그의 작품 외에 대전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실험적 문화행위를 펼치고 있는 4개의 문화예술 주체들 - 산호여인숙, 대전아트시네마, 카페 비돌, 월간 토마토 - 의 성과와 활동상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이들은 이응노 화백의 행동주의적, 실천적 예술행위와의 접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림이란 벽에 거는 장식품만으로 만 그쳐서는 안돼요. 사회의 모순, 순수한 인간에 대한 애정.... 이런 피 끓는 발언이 없어서는 안 되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그림에 생명이 깃들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한 마디가 사회학도로서 잊어왔던 나의 젊은시절 본성을 꿈틀거리게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작가의 변신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작품수가 많지 않아 아쉬움은 컸다.

다만 연작의 자화상에 눈이 많이 갔다. 1967년부터 동백림사건으로 2년 반의 옥고를 치르는 동안 그는 포기할 수 없었던 창작열정으로 몇 점의 자화상을 완성시켰다. 자신을 웅크린 바위모양으로 형상화한 자화상들의 하단부에 ‘춥고 배고프다’는 서글픈 메모가 남겨져 있다. 마치 지금의 내 자신을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오늘 묵을 곳을 고민하다 문화예술활동 공간이라는 ‘산호여인숙’이 생각났다. 정말 숙박업소가 맞는 것인가? 일단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예약을 하고 대전역 맞은 편 구도심에 해당하는 대흥동 골목에 자리잡은 ‘산호여인숙’으로 찾아 갔다. 1층은 작품활동공간, 2층은 게스트하우스로 이용되고 있었다. 남자용 방은 2층 침대 3개로 마련된 6인용이었다. 1박에 1만5천원하는 여인숙 가격에다 시설은 형편없었다. 이불은 봄가을용이었고 외풍이 심하고 추워서 침대에서 내려와 아예 방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가까운 거리에 대전의 명소로 알려진 성심당 빵집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잊을 수 없는 맛 - 빵 맛이 거기서 거기까지 일거라는 상식을 깨는 - 의 몇 가지 빵을 사서 맛도 보고 일부는 포장해두었다가 운전 중 비상용으로 잘 먹었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막걸리와 두부두루치기를 사가지고 와서는 ‘산호여인숙’을 아지트로 삼아 활동하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했다. 주인장은 30대의 부부이었고 음악하는 사람, 문학하는 사람, 화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구성원이었다. 그들은 참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경영측면에서, 관광차원에서, 그리고 건축디자인 측면에서 개선의 여지가 많을 것 같았다. 이런 사업은 공공기관으로부터 지원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활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전문가적’ 의견을 슬쩍 꺼냈더니 엉뚱한 답이 되돌아온다. 공공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면 그들이 간섭하려고 들고 감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그런 공공지원을 받기 보다는 그냥 이런 문화활동을 즐기고 싶다는 것이다. 여인숙을 찾는 사람도 이런 환경을 좋아하고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랬구나. 우리는 당연히 낙후된 시설이 있으면 빨리 개선, 개량하고, 그래서 수익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런 기업가정신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계속 거기에 갇혀 있었구나 싶다. 젊은 친구들로부터 한 수 배웠다.

10시 넘어서 룸메이트가 들어 왔다. 잠도 쉽게 오지 않아 남은 막걸리도 마저 비울 겸 그 젊은 친구를 꼬드겼다. 신소재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인데 열심히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여행 중이란다. 건강해보이고 참 바르게 보였다.

 

이응노 화백의 자화상 앞에서 

 

2일째

8시에 눈을 떴다. 룸메이트는 아직 꿈나라중이다. 가볍게 샤워하고 출발. 그러나 방향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곧 전라도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잠깐이라도 졸업생 지완군을 만나자 싶었다. 학교다닐 때는 부동산답사반 모임에 열심히 참석했었고 추운 날씨에도 얇은 셔츠를 즐겨 입는 멋쟁이었지만 지금은 군산에서 아버지 공장일을 돕고 있다. 많이 답답해 할 것 같았다. 작은 격려라도 해주고 싶었다. 아버지 공장 사무실에서 만난 지완군의 얼굴은 많이 그을려 있었다. 게다가 일거리를 주던 군산 GM대우가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공장 사정도 여의치 않아 직원들이 많이 술렁인다고 걱정도 많다. 빨리 좋은 상황이 되길 기대한다. 서울에서 하는 답사모임에 함께 하지 못해 내내 아쉬웠는데 이렇게라도 차 한 잔하면서 소식을 나누니 반갑기 그지 없다. 30분 정도 짧은 시간을 함께 하고 점심을 같이 하자는 권유를 애써 뿌리치고 길을 나섰다. 그래도 너무 서둘렀나? 출발하고 보니 사진 한 장도 못 남겼다.

미리 약속했던 고창군 마하사 정혜스님을 찾았다. 정혜스님은 미국 덴버에 있을 때 몇 번 뵌 적이 있었던 비구니인데, 최근 20여년의 미국에서의 종교활동을 접고 아예 귀국해서 전북 고창에서 새로 절을 짓고 있었다. 스님이 기다려 준 덕분에 늦은 점심도 같이 하고 궁금했던 그동안의 근황소식도 듣고는 오후 늦게 다시 길을 나선다. 방향은 경남 의령에 있는 선산으로 잡았다. 그런데 이미 해는 기울고 해서 남원시에서 하루 밤을 머물기로 했다. 한번은 가보고 싶었던 도시였기에 이번 참에 들려보기로 했던 것이다. 일단 광한루 인근에 있는 유명 추어탕집 ‘새집추어탕’에서 추어탕을 먹었는데, 서울에서 늘 먹던 남원추어탕 맛이 아니었다. 텁텁하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은 깔끔한 맛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깨끗하고 싼 모텔을 잡았는데 오늘은 성공한 듯하다.

 

 

3일째

춘향테마파크까지 둘러 보았지만 아침식사 할 곳을 찾지 못했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그냥 광한루에 입장했다. 9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라 관람객이 아예 없었다. 넓지 않은 면적이라 둘러보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춘향관에서 춘향이 남겼다는 시의 한 구절에 눈이 갔다. ‘昨已冬節又動秋(엊그제 겨울이더니 이제 또 가을이 깊었네)’. 새삼 아련하다. 때 마침 사진작가 모습을 한 유일한 관람객이 눈에 띄기에 인증사진 한 장을 부탁을 했는데, 스마트폰에 찍힌 사진은 기대 이하이다.

88고속도로로 접어 들었다. 왕복2차로의 고속도로는 굴곡이 많은데 추월할 때는 속도를 많이 내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특히 지리산 인근지역에는 눈이 쌓이기도 했서 서둘러 고개를 넘는다. 함양군 시내에 들러 비워두었던 속을 해장국으로 채우고 아버님 묘소에 놓을 흰 국화도 샀다. 그리고 국민학교 2학년을 다녔던 기억을 더듬어 함양국민학교를 찾았다. 건물구조는 변하지 않았지만 운동장에는 인조잔디가 깔리고 목조건물은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의령에 있는 선산 주변에 진입했을 때 하늘은 환히 열리고 있었다. 마치 아버님이 장남 오는 길을 반겨 주는 것 같다. 살아계셨던 말년에 아버지와의 냉랭했던 관계를 생각하면 아버지 묘비 앞에서 편안하고 그리워지는 것이 이상하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유달리 엄격하셨기에 할아버지께 특별히 남아 있는 정이 없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산소를 찾을 때마다 눈물을 보이기도 하셨고 아예 할아버지 산소 아래에 자리를 잡으셨다. 그 애증의 심정, 반은 이해가 간다.

어머니와 동생들이 있는 부산으로 가기로 정했지만 통영시로 둘러 가기로 했다. 일전에 통영시 동피랑을 답사하면서 맛을 본 회와 충무김밥을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중앙전통시장에서 자연산 쥐치, 세꼬시, 감성돔에다 해삼까지 구입하고, 가장 손님이 넘치는 가게에서 충무김밥도 포장해서는 부산으로 향한다. 의령에서 구입한 의령칡소고기까지 함께 하면 오늘 저녁 어머니와 동생네들 마냥 행복할 것 같아 뿌듯한 마음으로 길을 재촉한다.

이렇게 떠나면 될 것인데... 그동안에 세상은 아무런 일이 잘 돌아가는데...   

 

 

 광한루 앞에서 사진작가가 찍어 준 인증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