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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600394의 diary
길에서 길을 묻다

길에서 길을 묻다 21: 제주에 취하다

by k600394 2014. 6. 1.

 

첫날

김포공항에는 항공사 마다 제주행편이 가장 많다. 그 덕분인지 우리 비행기도 출발부터 늦어지더니 제주공항도착은 30분이나 늦었다. 그렇지만 어렵게 마련한 이 여행에 문제가 될 게 무엇이겠는가! 제주공항에 도착하자 예약한 렌트카 회사부터 찾았다. 렌트카는 스파크라는 대우경차인데 이용료가 하루에 2만천원에 불과했다. 경사가 심한 도로에서는 탱크소리 같은 굉음이 나기도 했지만, 종일 다녀도 기름 눈금 하나 없어지지 않는 듯하다. 괜히 기름을 만당으로 채운 것 같다.

서귀포시에 있는 ‘이중섭미술관’부터 향했다. 가는 중간에 자리 물회로 배까지 채우고 나니 한결 여유가 생겼다. 화가 이중섭이 1951년 전쟁 통에 약 1년간 머물렀던 구옥을 복원하고 그 주변지역을 공원으로 조성하였는데, 서귀포 앞바다가 내려 보이는 가장 뒤편 언덕배기에 미술관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미술관에는 이중섭의 은지화 몇 점과 일본에 있던 아내에게 보낸 서신 몇 점 정도가 전부였다. 초라하기 그지없고 무색한 지경이다. 부산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신옥진씨가 중광, 장욱진, 남관의 작품 등 30여점을 기증하면서 기획전이 마련되어 있어 그나마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아쉬움을 달래면서 10분 거리에 있는 서귀포시립기당미술관을 찾았다. 일본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제주에 정착하여 ‘황토빛 제주화’라는 독창적인 화풍을 만든 화가 변시지의 상설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황토색과 검은색만으로 제주를 거칠게 형상화하고 있었는데, 중소 크기의 작품이 훨씬 더 안정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그 한 켠에는 ‘시대초상-인물화’라는 주제로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었지만 인물관련 그림을 모아 빈곳을 채워 놓은 듯 빈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지막으로 찾은 성산읍의 김영갑 사진갤러리 ‘두모악’. 김영갑 사진작가는 불치의 루게릭병으로 이미 이 세상 사람은 아니지만 생전 제주도에서 의욕적인 작업을 펼쳤던 작가로 소개되고 있었다. 주로 용오름과 같은 제주 자연을 사진에 담고 있다. 사진은 잘 모르지만 폐교를 활용한 갤러리가 아기자기하게 예쁘게 꾸며져 있어 특히 중년여성의 방문이 많았다.  

 

 

김영갑 사진작품

 

너무 늦어서 내일 다시 오겠노라고 약속하고 미리 예약해 놓은 ‘레프트핸더’라는 게스트하우스를 향한다. 게스트하우스는 미술관에서 가깝고 내일 출발예정인 19번 올레길 출발지와 가까운 구좌읍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1번 올레길을 안내하는 자원봉사자로서 활동하고 있기도 했다. 아내의 갑상선암 수술 후 건강회복을 위해 제주도로 이주해 왔단다. 부인은 완쾌했지만 게스트하우스 운영만으로는 생활에 어려움이 많은 듯한 뉘앙스이다. 3명이나 되는 스태프는 주로 숙식을 해결해 주는 조건으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었다. 하룻밤에 2만원하는 이층침대방을 숙소로 정하고 저녁까지 주문해서 먹는다. 맵지 않게 해달라는 주문에도 불구하고 오징어덮밥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식후 바닷가로 산책길을 나서보지만 영업이 잘 되지 않은 카페와 작은 가게가 눈에 띌 뿐 이곳은 벌써 밤이 깊은 것 같다.

 

둘째날

간단한 조식 후 둘레길 19코스 출발지인 조천만세동산에 도착한다. 박윤희. 오늘 우리를 안내할 올레길 자원봉사자이다. 고등학교 교사를 남편으로 둔 그녀는 차분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갖가지 식생들을 소개해주지만 나는 정작 서민들의 생활 모습, 마을, 생산현장에 더 눈길이 간다. 마을마다 오수와 우수를 분리 관리하는 분리관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해수 수질 관리가 가능하리라. 또 돌담으로 둘러싸인 밭에는 농수로가 없고 대신 관정을 이용한 고무 호스가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그 외에도 해녀들이 물일 후 불로 몸을 녹이는 불턱, 바다에 설치하는 액막이 방사탑 등도 관광지만을 찾았을 때에는 알 수 없었던 제주도 특유의 시설들이다.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도 ‘남좌여우(남자는 무덤의 왼쪽 여자는 오른쪽)’ 원칙이 적용된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너븐숭이 4.3기념비

 

그리고 도착한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과 기념비. 기념관을 둘러 볼 수는 없었지만 고진석작가가 설치한 기념비는 기억에 남는다. 대개 화강암 일색의 추모비가 많은데, 그는 현무암에 글씨를 새긴 비석들을 여기저기 나딩굴게 하고 있어 애잔함을 더한다.

일행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여기서 헤어졌다. 끝까지 완주하자면 시간이 많이 늦어지기도 하고 후반부는 산길이라 중간에 버스 타기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다시 출발지로 돌아와서 렌트카를 타고 이동하였다. 어제 미처 다 보지 못한 김영갑 사진갤러리를 마저 보고는 ‘키친애월’로 출발. 키친애월은 후배 송영필이 운영하는 카페이다. 그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8년 전에 때려치우고 제주도로 내려야 카페주인이 되었다. 그와 함께 제주대학교 황경수교수와 만나기 위해 ‘바다와 해녀’라는 횟집으로 향한다. 우리들은 대학원 선후배사이이다. 이 횟집은 해녀들이 구성한 어촌계에서 직영하는 회집이다. 그래도 맛으로나 양으로나 가격이 만만치 않았을텐데 황교수가 회값을 지불하고 말았다.

식사 후 황교수는 차에서 악기를 꺼내왔다. 저녁놀이 깔리는 해변가 주차장에서 그는 팝송과 가곡을 가리지 않고 몇 곡을 작은 튜바, 트럼펫을 번갈아 가며 들려 준다. 한동안 깊은 감동에 빠져 들었다. 지나가던 몇몇 이들도 박수치면서 함께 한다. ‘떠나가는 배’를 굵은 바리톤으로 마무리. 은퇴 후 악기를 차에 싣고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쳐주면서 사는 것이 꿈이라는 사람. 아내 몰래 지인과 제자들에게 중고악기를 선물하면서 기쁨을 같이 한다는 사람. 얼마 전 수술한 디스크가 완쾌되길 바란다. 꼭 서울에서 한번 보자고 청했다.

 

 

송영필, 황경수 교수와 함께

 

 

송영필과 그의 가게로 돌아왔다. 두 사람만의 작은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가게 조도도 낮춘다. 너무 밝으면 지나가던 사람이 장사하는 줄 알고 들어오게 되면 골치 아프다면서... 가게 전체를 전세 낸 셈이다. 이 가게에는 재미있는 시설이 하나 있다. 원래 회집이었기 수족관이 있었는데, 이를 해수 족욕하는 시설로 개조한 것이다. 그와 함께 시원한 해수에 발을 담그고 한껏 음악을 틀어놓고 지난 10년을 이야기했다. 제주도에 와서 처음에는 제법 돈을 벌기도 하였지만 처음 운영하던 카페가 팔리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고전중인 모양이다. 그래서 주변에는 이런 이유로 다시 서울로 가는 사람도 많지만 그는 여유가 있었다. 곡절 많은 그에게도 더 많은 기쁨이 있었으면 싶다.

 

마지막날

아직 남아 있는 술기운을 성게국 한 그릇으로 해장하고 길을 나섰다. 제주현대미술관을 찾았다. 교통안내판이 전혀 보이지 않아 내비게이션이 없었더라면 찾지 못할 뻔 했다. 하지만 툴툴거리며 입구에 도착했을 때부터 감탄이 쏟아졌다. 미술관 주변이 큰 하나의 자연공원이었다. 공원입구는 일부 폐철목을 깔았을 뿐 나머지는 흙길 그대로였다. 이름 모를 새소리부터 나를 반기는 듯하다. 새공원을 찾은 듯하다. 공원안에는 작가촌이 형성되어 있었고 여러 갤러리도 포진하고 있었다. 오지 않았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 했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현대미술관

 

미술관에서는 김흥수 화백전시회가 있었다. 특유의 비구상계열이 아닌 요염한 나부 작품들이 선을 보인다. 70년대부터 2천년대 작품까지 푸짐하다. ‘Two Passages'라는 볼만한 기획전시도 있었다. 작품은 많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마음을 이 미술관에 빼앗겨 버렸다. 아쉬운 발걸음으로 제주시내에 있는 제주도립미술관에 들렸다. ’백수의 화폭‘이라는 주제로 화가 장리석의 백수를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둔탁한 터치를 특징으로 한 그의 작품에는 별로 매료되지 못했지만, 올해에도 미술작품을 그려내는 그의 예술열정에는 크게 고개가 숙여진다. 더불어 세 작가가 돌이라는 주제로 기획전시를 하고 있었다. 이창배의 한지에 담아낸 돌담, 문창배의 사실적 갯가 묘사, 김방희의 돌 조각 하나 하나가 인상적이다.

이제는 서울행이다. 제주에 흠뻑 취했었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도 나쁘지 않다. 아마 제주를 자주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본격적인 제주여행을 위한 사전답사였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