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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600394의 diary
길에서 길을 묻다

길에서 길을 묻다 22: 나오시마와 구라시키

by k600394 2014. 7. 10.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최근 일본 나오시마를 다녀온 친구 방문기를 읽고 나오시마(直島)행을 결심하였다. 크고 작은 27개 섬으로 이루어진 나오시마쵸의 중심인 나오시마는 가가와현 다카마츠(高松)시에서 북쪽 13Km, 오카야마(岡山)현 다마노(玉野)시 우노에서 남쪽 3Km정도에 위치하며, 면적7.81㎢, 인구 3,400여명인 작은 섬이다. 나오시마 주변은 예부터 해상교통의 요지였으며 어업과 양식업, 그리고 일부 귀금속 제련업이 성행하였다. 최근에는 섬 남부지역에 미술관 등이 정비되어 현대아트의 성지로써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2010년에 이곳에 "세토우치 국제예술제"가 개최되었는데, 평범한 어촌에서 현대 예술의 성지로 거듭난 나오시마를 중심으로 산업폐기물이 불법 매립됐던 데시마, 한센병 요양소로 인해 오랜 세월동안 격리됐던 오시마, 산업화가 진행되며 서서히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은 이누지마, 메기지마, 오기지마, 쇼도시마의 아름다운 풍광과 어우러져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예술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자료에 의하면 기타가와 후라무 예술감독은 “예술제가 열리는 섬 대부분이 고령화 됐으며 일부는 불법 매립된 산업폐기물 때문에 황폐화 되거나 한센병 환자들의 섬으로 소외받은 지역”이라며 “예술을 통해 이들 섬과 바다에 새로운 가능성을 불어넣고 낙후된 어촌과 농촌을 회생시키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이었다고 하였다. 이 대목이 나의 집중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 행사에 우리나라 작가들도 참여하였다. 나오시마에는 유럽과 일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추상화가 이우환씨의 미술관이 개관기념전을 열었며, 지금도 아직 그 미술관과 작품이 남아있다. 쇼도시마(小豆島)에서는 설치미술가 서도호씨 - 그의 작품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LACMA에서도 볼 수 있었고, 근년에 리움미술관에서 ‘집속의 집’이라는 주제로 그의 개인전이 열렸었다 - 의 작품이 전시되었지만 올해는 최정화 작품이 전시되고 있단다.

그런데 서울에서 나오시마로 가는 교통편은 썩 여의치 않다. 다카마츠시까지는 아시아나항공에서, 오카야마시까지는 대한항공에서 독점 운행하는데, 요일에 따라 차이가 많고 시간대도 주로 저녁시간이어서 시간손실이 많았다. 결심을 하고 검색해보니 다카마츠행은 이미 좌석이 동나서 결국 도착지를 오카야마로 정할 수 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18시 40분 출발하고, 올 때는 오카야마에서 오전 10시 출발이어서 3박4일 일정이지만 결국 온전히 허용되는 것은 단 이틀뿐이었다.

 

첫날

저녁 6시 40분에 출발하는 오카야마행 비행기는 연발했으니 결국 연착할 수 밖에 없었다. 리무진(740엔)으로 갈아타고 오카야마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9시를 넘었고, 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고라쿠엔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피곤이 엄습한다.

 

둘째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온다. 뉴스에서는 태풍까지 온다고 하니 일단 배편을 이용해야 하는 나오시마를 먼저 다녀오기로 했다. 호텔에서는 조식이 지원되지 않아 인근에 24시간 영업하는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고기덮밥으로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쳤다. 그리고는 물어 물어 우노에 도착하여 나오시마행 페리를 이용하려는데, 매표소직원이 월요일에는 대부분의 박물관이 휴관이라고 알려준다. 아뿔사!!! 언젠가 파리에서도 오르세미술관을 월요일에 찾았다가 휴관하는 바람에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는데 또 이렇게 멍청한 짓을 저지르다니... 하는 수 없이 내일 오기로 하고 구라시키로 향한다.

구라시키(倉敷)는 미관지구(美觀地區)로 유명하다. 우리로 치면 인사동 같은 분위기이다. 이곳에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와 같은 명화를 전시하고 있는 오하라(大原)미술관이 유명하지만, 이 역시 월요일이 휴관일이라 마음 편히 포기하기로 했다. 미관지구는 구라시키역에서 약 500m 정도 떨어져 위치하고 있는데, 간선도로를 사이에 두고 2개의 보행자중심의 도로가 만들어져 있다. 서측에 위치한 일번가는 주로 먹거리 중심의 식당가인 반면 동측에 위치한 아케이드는 상점가이다. 미관지구로 걸어오는 동안에도 나름대로의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있어 재미가 있다. 우리는 일번가를 선택했지만 거리의 식당들은 월요일이라 대부분 문을 닫고 있었다. 때 마침 영업을 하는 일본 전통식당을 발견하고 들어가 본다. 정식세트메뉴를 시켰는데, 회, 고기, 샐러드가 잘 어우러진 느낌이다.

 

 

 

이윽고 미관지구에 도착했다. 미관지구 가운데로 구라시키강이 흐르고 양편으로 보행자전용도로가 마련되어 있다. 강이라고 하지만 폭이 10미터 정도의 소하천에 불과하다. 평소라면 이곳에서 노 젓는 배를 타고 경치를 즐길 수도 있으려만 이것마저 월요일도 이라 운행되지 않고 있다. 대신 인력거를 끄는 젊은 친구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지만, 산책하는 듯 가벼운 기분으로 걸으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특산물 가게도 둘러보고 주위경관과 잘 어우러진 옛날 오하라주택 외관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한다.

다시 오카야마로 돌아와서 일본의 3대정원의 하나라고 하는 고라쿠엔(後樂園)을 찾았다. 오카야마역에서 걸어서는 30분, 노면전차를 이용하면 3번째 역에서 내리면 된다. 고라쿠엔은 오카야마성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정원이라고 하는데 아사히강(旭川)을 건너야 들어갈 수 있다. 강에는 정문과 후문 앞에 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조성된 지 25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연륜을 짐작하게 한다. 물과 식물들이 인공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흐르는 물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정자가 마련되어 있어 잠시 쉴 수 있었다. 흐르는 물에 술잔을 돌리려고 했던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니 묘한 대조를 이룬다.

 

 

세째날

아침 7시에 역내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쳤다. 일본 대부분 역이 입체화, 복합화하여 개발된 것이 부럽기 그지 없다. 버스, 택시, 지하철, 철도가 복합환승센터화 되어 있어 이용하기 편하고 동선도 아주 짧다. 각종 상점, 식당, 찻집, 호텔 등의 편의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어 모든 것이 해결이 된다. 지하를 이용하여 입체적으로 개발되어 가능한 일이다. 여유 있게 스타벅스 커피까지 한잔 한다. 한국에는 없는 스몰사이즈가 320엔, 벤티는 450엔이어서 한국보다 커피값이 싸다. 우리는 왜 이리 커피가격이 비싼 것일까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8시24분에 다카마츠(高松)행 급행열차를 타고 차야마치(茶屋町)에서 우노(宇野)행으로 갈아타면 여유 있게 9시22분발 나오시마행 페리를 탈 수 있다. 어제 한번 다녀온 길이기에 여유가 있기도 했지만, 기차시간과 배편시간을 유기적으로 조절해 놓은 듯 기다리는 시간이 거의 없다.

우노에서 배로 나오시마까지 20분이 채 소요되지 않는다. 항구에는 쿠사마 야요이의 대형작품이 관광객을 반긴다. 자전거를 이용할까 하다 날씨가 더워서 마을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덥기도 하고 제법 오르막길도 많아서 자전거를 이용했더라면 고생할 뻔 했다. 버스비는 무조건 일회 탑승에 100엔이다. 나오시마는 항구가 있는 미야노우라(宮の浦)지역, 혼무라(本村)지역, 미술관지역으로 크게 나눈다. 항구에서 자동차 5분거리에 있는 혼무라지역에서 주택가에 위치한 안도박물관을 찾는다. 나오시마내 미술관은 대부분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것인데, 이것들의 스케치와 모델 등이 덩그렇게 전시되어 있는 옹색한 형국이다. 510엔의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츠츠지莊 앞에서 무료순환버스로 갈아타라고 한다. 이 무료순환버스가 미술관을 순회하는 것이다. 버스로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이 베네스하우스미술관이다. 역시 안도작품의 특징처럼 진입부는 우회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입장료는 1030엔. Jackson Pollock, Hockney 등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지만 전문미술관에는 미치지 못한다 싶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이우환미술관을 찾았지만 몇 점 되지 않는 작품만 전시되고 있어 아쉬운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지중미술관(Chichu Art Museum)이다. 입장료는 2060엔으로 가장 비쌌지만 내용은 가장 건실했던 것 같다. 공간성을 강조하는 Turrel의 설치작품, Monet의 수련을 대형작품으로 변모시킨 작품, 그리고 구와 여러 형상의 금빛 나무를 조화롭게 배치한 Maria 작품들이 감동적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이곳에는 유달리 한국단체관광객이 많았다. 베네스하우스에는 한국말을 하는 직원을 둘 정도이다. 아마 최근에 한국에서 새로운 단체관광지로 선정된 것이 아닐까 싶다. 또 각 미술관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장 노인들이 있었는데 아마도 지역주민들이 아닐까 싶다. 미술작품을 혹시 있을지 모를 위해로 부터 보호하거나 단순 안내 정도였지만 지역주민과 융화하려는 작은 노력의 일환이었으리라.

역순으로 다시 항구로 돌아왔다. 점심을 해결할 겸 둘러보다 나오시마 배스(bath)라는 목욕탕을 찾았다. 건물이나 입구에 여러 가지를 설치해 놓은 특이한 모습이었지만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인근에 오래된 미국식 식당에서 ‘타코라이스’를 시켜 먹는다. 지난 미국에 머물 때의 기억이 날 정도로 제법 맛이 있다. 그리고 배편시간이 조금 더 남아 007기념관을 둘러보았는데, 참 희안하다 싶다. 붉은 색 대나무를 입구에 설치하고 낡은 내부 한 켠에 007영화를 계속 틀어놓고 벽 전체는 기념포스터를 부쳐 놓았다. 무료로 가져가라는 안내판 밑에는 기념부채가 놓여 져 있었다. 나갈 때까지 사람은 볼 수 없었다.

예상보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욕심을 내어 세토대교(瀨戶大橋)까지 가기로 했다. 세토대교는 일본 혼슈와 시코쿠(四國)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5개 섬을 계속 연결하는 방식인데 총 연장은 13.1km로 도로와 철도가 병용되는 다리로서는 세계 최장이다. 일단 우노에서 시코쿠의 사카이데(坂出)까지 표를 끊어 거기서 다시 오카야마로 돌아오기로 하였다. 철도를 직접 이용하면 사진으로 본 멋진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 감흥은 덜했지만 다녀와 보았다는 것에 위로삼기로 했다. 여하튼 일본은 철도가 거미줄같이 얽혀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