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은 현재 인구 27만8천명으로, 바다에 접하면서 금강과 만경강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고려시대부터 조창이 자리 잡을 정도로 지역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게다가 개항초의 근대문화유사산이 온전한 형태로 잘 보전되고 있어 이를 활용하면서 최근 개발되고 있는 새만금까지 엮어 국제관광 기업 문화도시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새벽을 달려 군산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것이 아침 9시에 조금 미치지 못한 시간. 시티투어버스를 기다린다. 일요일마다 진행되는 군산시의 근대문화 시티투어를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마음속으로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답사이다.
9시 30분 터미널을 출발한 투어버스는 10시에 군산역에서 탑승하는 예약 손님이 합류하면 본격적인 투어에 나서게 된다. 군산역은 과거에 익산역과 연결된 군산선의 기점이었으나, 2008년에 장항선에 편입되면서 시 외곽에 신역사로 새로 건설되었다. 신역사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그런지 평양처럼 건물은 반듯한데 이용객들은 많지 않아 한가하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군산선의 임피역이다. 현재 역사로 이용되지 않고 있는 임피역은 역사 자체가 잘 보전, 복원되어 있어 2005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역사 주변에 거꾸로 가는 시계, 창고 등도 복원 설치되어 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발산초등학교 뒤편의 유적지이다. 일제 강점기에 시마타니 일본인 농장주가 살았던 가옥 인근에 고려 5층 석탑, 통일신라시대 석등과 같은 보물급들이 산재하고 있었다. 아마도 일본인 농장주가 수집했다가 일본에 가져가지 못하고 그냥 둔 채 귀국한 것으로 짐작된다. 더 인상적인 것은 ‘시마타니금고’라고 불리는 금고건물이다. 3층 규모의 금고건물은 안채와 연결된 흔적이 아직 남아 있고, 콘크리트 외벽에 창문과 창살이 철제로 마감되어 있어 위용을 더한다. 아마 규모와 시설에 걸 맞는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들이 한을 품고 짙은 어둠속에 갇혀 있었으리라. 그런가 하면 한국전쟁 중에는 우익인사를 감금했던 곳이기도 하여 근현대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산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지근거리의 이영춘 가옥을 방문한다. 이영춘 가옥은 군산간호대학, 요양원, 영아원, 요양병원, 개정중앙병원 등의 의료복지시설이 밀집한 지역의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군산간호대학의 설립자이기도 한 이영춘 박사는 일제 강점기에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하고 구마모토 농장의 진료소장으로 부임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다. 해방이후에는 초등학교에 양호교사제도를 최초로 도입하였고 주변에서 곡식을 모아다가 배를 곯는 아이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학교급식의 효시가 되었다. 그는 해방이후 구마모토의 별장으로 쓰이던 이곳에 거주하면서 농촌 의료봉사에 몸을 바쳤다 한다. 현재는 기념 전시관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청판석의 지붕, 벽난로, 샹들리에, 그리고 영국제 스테인드 그라스 등 당시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었다.
가이드가 안내해 준 흰찰쌀보리 향토음식관 아리랑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짬을 내어 주변을 둘러보는데 장미동(藏米洞)이 눈에 띈다. 쌀을 보관했던 창고였는데 현재는 다목적 공연장, 갤러리로 개조하여 지역주민들에게 문화공간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다시 공식 일정으로 근대역사박물관에 들렸다가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 동국사를 찾는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스님에 의해 조성된 이 절은 현재는 조계종에 속해 있지만, 지붕이 긴 대웅전, 요사채와 건물로 연결된 회랑, 높게 매달려 있는 종 등 일본식 건물의 특징이 그대로 남아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동국사 가는 길’이다. 창작문화공간 역할을 하고 있는 ‘여인숙’, 갤러리, 소극장, 찻집 등의 복합문화공간 ‘산들’이 자리 잡고 있어 동국사 가는 길에 볼거리가 있고 재미가 더 한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고우당게스트하우스이다. 다수의 일본식 주택을 매입하여 게스트하우스로 재활용하고 중앙에는 중정형태의 분수정원이 자리 잡고 있어 숙박하려는 관광객들로부터 인기가 높단다. 그런데 방문관광객이 많아 소음으로 인해 숙박객들은 오히려 불편해 할 것 같다.
역시 지근거리의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일본인 상인이 살았던 곳이 잘 보전하고 있었다. 이 가옥은 측면에서 진입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안도 다다오의 설계가 이런 전통성을 담고 있었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찾은 채만식문학관은 입지적으로나 내용면에서 아쉬움이 많다. 기차출발시간이 남아 찾은 간장게장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맛본 간장게장은 입맛에 맞았다. 그러나 밑반찬에서는 전라도음식에서 느낄 수 있었던 특유의 정성과 맛이 퇴색되어 가는듯해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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