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호남 KTX를 이용해서 ‘보물섬’ 남해를 다녀오는 1박2일의 패키지여행을 떠난다. 전체 인원 30명이 용산역에서 출발해서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광주송정역에 도착한 것이 되어 오전 10시. 역사 주차장에 기다리고 있던 관광버스에 오르자 투박한 전라도 말씨 장년의 가이드가 안내를 시작한다. 그는 여천에서 30여년 직장생활 마치고 우연찮게 지인의 소개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힘들기는 하겠지만 노년에 세상구경도 하고 벌이도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행운의 사나이이다.
“이런 계절에는 볼 만한 경관이 많지 않어요. 볼 만한 게 없다고 불평하신 분들도 있는데, 이해가 필요합니다.” 미리 양해를 구하는 자세도 좋다. 중간 중간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어색함을 달래기도 한다.
“지난 번 팀에 어떤 중년의 부부가 있었어요. 부인이 화장실을 갔다 오는데 관광버스가 모르고 출발을 해버린 겁니다. 가이드도 놓치고 남편도 놓쳤던 것이지요. 남편은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 일로 부부는 대판 싸우고 여행기간 내내 말도 않더라고요. 부부가 같이 오신 분들은, 특히 남편은 이번 기회에 싸우지 말고 제발 점수 좀 따세요.”
“오늘 아주머니들 많은데, 아주머니들은 여행 와서도 내내 집에 전화해서 냉장고 안에 뭐가 있으니 챙겨서 먹으라고 걱정들 해요. 집에서는 다들 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또 이번 기회에 어머니 빈자리가 크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도 좋지요. 그러니 제발 집에 전화하지 말고 여행을 즐기셨으면 좋겠네요.”
생각보다 전라도에는 차량은 많지 않은데 도로망이 잘 정비되어 있는 듯하다. 광양에서 간단한 한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섬진강을 건너니 경남 하동. 그리고 왕복2차로의 남해대교를 건너 도착한 곳이 남해의 금산 보리암. 금산 보리암은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3대 기도도량이란다. 금산은 이성계가 100일 동안 기도를 하고 정권을 잡은 후 산 전체를 비단으로 감싸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대신 산 이름에도 비단 금(錦)을 하사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산 입구에서 셔틀버스를 탄다.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초로의 운전사가 운전을 하는데 교통문제도 해결하고 노인일자리 문제도 해결하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10분 정도 지나 산 정상부근 주차장에 내려 다시 급경사지를 걸어 20분 정도를 가면 금산 정상으로 가는 길과 보리암으로 가는 길이 나타난다. 먼저 금산 정상 방향으로 향하면 10여분 만에 남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정상에 이른다. 봉수대 흔적도 보인다. 걸어 내려와 보리암으로 향하면 극락전, 해수관음상, 그리고 남해 작은 섬과 어우러진 빛의 향연을 차례로 볼 수 있다.
다시 남쪽으로 달려 가천다랭이마을에 도착한다. 이 추운 날씨에도 도로를 온통 자동차가 차지할 정도로 관광객이 많다. 다랭이라고 불리는 계단식 논에는 시금치와 고사리가 재배되고 있었으며 특징적인 카페, 다양한 먹거리 식당이 지천이다. 워낙 많은 관광객이 붐비다 보니 박원숙 카페가 있는 자리는 평당 150만원까지 한단다. 정말일까?
삼천포대교를 건너 사천에서 회정식 저녁을 먹고 다시 삼천포대교를 건너 남해로 와서 모텔에서 숙박한다. 이상한 동선이지만 시간소비에는 그저 그만이다. 저녁식사 시간에 옆 좌석에 앉은 중년의 부부는 짧은 식사시간에 주거니 받거니 소주 2병을 순식간에 해치운다. 그러고도 부부는 정답다. 참 잘 맞다 싶다.
남해군 전도
금산 보리암 인근에서 바라본 남해
금산 정상에서
보리암에서 바라 본 남해 다도해
보리암 해수관음상
보리암으로 운행하는 셔틀버스
가천다랭이마을 표지석
다랭이마을 진입도로는 자동차로 덮혔다.
다랭이마을내 카페와 맛집
다랭이마을내 암수바위
2일째
아침을 간단한 뷔페로 해결하고 남해 바래길 7코스 출발지로 출발. 약 2시간 정도 소요되는 일부 구간만 걸었는데 고사리밭길이 특징이다. 도착한 마을이 적량해비치마을이다. 임진왜란때 우리 수군의 식량을 보관했던 지역이라 ‘적량’이라 하고, 남해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다고 해서 ‘해비치’라고 한단다. 참 한적하고 여유 있는 곳인데 요트계류장이 있을 정도로 외지인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혹 귀어귀촌을 한다면 우선 찾아볼 수 있을 지역이 되겠다 싶다.
가까운 거리에 독일마을이 있다. 1960년대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로 갔다가 독일인과 결혼한 분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정착한 마을로, 2000년에서부터 2006년까지 조성된 곳이다. 붉은 지붕과 하얀 벽을 간직한 독일 전통적 주택을 옮겨다 놓은 듯 아름답게 조성된 마을이다. 그런데 호기심으로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일년 내내 길은 막히고 시끄러워 많은 주민들이 집을 팔고 이주해버렸단다. 대신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더욱 상업화되어 간다고 아쉬워한다. 우리의 숙제이다.
인근 원예예술촌은 20여명의 원예인들이 집과 정원을 조성하여 이룬 마을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도 관광 상품화되었다. 이곳에도 박원숙 카페가 있었는데, 카푸치노가 5500원이다. 스타벅스 커피 값도 비싼 가격이지만 커피 맛은 떨어지지 않는다.
이윽고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었던 점심을 위해 멸치쌈밥집으로 향한다. 기대했던 대로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멸치쌈밥을 접한다는 분들도 있었지만 평가는 긍정적이다. 냉동멸치가 아닌 듯해서 좋고 주인의 상냥함에 맛이 더한다. 떠날 때는 주인여자가 일부러 버스에 올라 고마움을 전한다. 음식장사란 무릇 이 정도는 되어야지...
관음포 부근에 있는 이락사(李落祠)를 찾았다. 임진왜란 때 돌아가신 이순신장군의 주검을 가장 먼저 배에서 내려 모신 곳에 조성된 사당이란다. 입구에는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戰方急 愼勿言我死)’는 한자어 비석이 자리 잡고 있다.
갈 때 생략했던 장도박물관을 거쳐 순천역에서 출발한 귀경 KTX를 타고 용산에 도착하니 밤 10시. 날씨마저 추워지면서 피곤도 깊어진다.
남해에서 해돋이
남해에서 사천시를 잇는 다리의 하나인 창천대교
적량마을
독일마을 내부풍경
이락사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는 팻말석
관음포에서 본 남해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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