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와 휴식을 겸해 인니 발리로 출발한다. 삼성동 공항터미날에서 출국수속을 마치면 인천공항에서 승무원출입구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점. 그동안 신경도 쓰지 않던 카드사의 인천공항 마티나 무료이용권으로 부페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것에 기특해 하며 발리행 비행기에 오른다. 인도네시아 방문은 처음인데, 이렇게 더운 날에 인니를 찾는 것은 이때가 건기여서 관광에 유리하고, 가성비가 좋아 은퇴관광지로 적합하다기에 미리 답사를 해보고자 하는 심사였다.
이코노미석 7시간은 참으로 길었다. 하지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을 거쳐 발리로 간다는 영문학도 '샘'은 책을 꺼내놓고 한 장도 못볼 정도로 지쳐 있는 모습에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밤 12시가 넘었지만 공항 입국장은 사람으로 넘쳤다. 환전까지 마치고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로부터 무작정 벗어나 주차장 외곽에 서너대 줄지어 있는 푸른색 택시에 오른다. 호텔 주소를 알려주고 얼마냐 물어보니 '투한드레드' 대답이 왔다. 20원? 도대체 얼마라는 것일까. 나중에 알았다. 이곳에서는 주로 뒤 세자리 숫자를 빼고 이야기한다는 것을. 그리고 택시는 'bluebird'만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새벽녘 창밖에서 들리는 술 취한 여성들의 고성에 뒤척이다 아침식사를 위해 방을 나선다. 현대적인 디자인 분위기에다 가볍지만 풍부한 조찬이라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식사 후에는 미처 챙겨오지 못한 휴대폰 충전기를 구입하기 위해 큰 슈퍼마켓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제 가게들도 문을 열고 있고 Spa앞에서는 벌써 호객이 이루어지고 있다. 각 건물마다 옆에 자리잡고 있는 가족절 입구에는 향이 꽂혀 있고 거리에는 우리의 '고시래'가 널려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물건을 구입하고 비치로 향한다. 거리에는 렌트 바이크가 특히 많다. 관광객들도 많이 이용하는 듯하다. 대중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이 곳에서 유리할 것 같다. 비취의 모래사장은 크고 길고 완만해서 오히려 수영을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산책하거나 파라솔에서 휴식을 취하고 일부에서는 서핑강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큰 호텔에서는 일부 비취구간을 임대하여 투숙객들이 전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듯하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아침에 봐두었던 카페를 찾아 '나시고렝' 인도네시아 전통음식을 즐긴다. 오믈렛과 소고기 꼬치가 함께 하는 나시고렝은 맵거나 강하지 않아 그저그만이다. 커피맛도 우리의 대형브랜드 보다 훨씬 낫다.
호텔 수영장에서 휴식을 취하고는 일몰 감상을 위해 'Kudeta'로 향한다. 'Potato head'가 등장하기 전에는 가장 핫한 곳이었단다. 비치와 수영장, 그리고 카페가 어우러진 이 곳은 일몰감상으로 유명한 곳이자 연인작업 장소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투수없는 홈런타자는 무슨 소용있으랴. 어둑어둑해지자 바로 호텔로 돌아와 잠을 청하기로 했다. 한데 한밤중에 방문 노크소리와 여성 목소리에 눈을 떴는데 막상 문을 열었을 때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래도 방을 잘못 찾은 듯. 하지만 선잠을 깬 나는 새벽까지 또 뒤척일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한국말을 잘 하는 인니인이 하는 여행사를 통해 하루관광에 나섰다. 처음에는 Batic마을의 손으로 짜는 의류, Celuk마을의 금은세공, Mas지역의 목공예를 들렸는데 하나같이 입구에 생산과정을 보여주고 건물내에서는 판매가 이루어지는 형태이다. 또 동종업종이 집단적으로 마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시큰둥한 반응에 발리의 전통가옥과 미술품 가게를 추가로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는 커피농장에 들렸는데 안내하는 젊은 녀석의 영어가 얼마나 유려한 지 유일하게 느왁커피 기념품를 구입했다. 10수년전에 실제 화산이 폭발했다는 kintamani지역의 Mt. Batur와 호수를 멀리서 조망해보고, 물의 신 시바를 모신 Sebatu사원도 방문해서 살롱을 걸치고 입장한다. 계단식 농경지, 전통시장과 Barong댄스 공연을 보고 우붇까지 들려다가 자동차 구경만 잔뜩하고 호텔로 향한다. 운전자도 지치고 나도 지쳤다. 힌두교도인 운전자는 영어와 한국어가 모두 서툴렀지만 한국에 가 본적이 없다는 그의 이력을 감안하면 대단해 보인다. 여하튼 그를 통해 많은 궁금증을 해결했다. 웃는 얼굴에 성실하고 선한 모습이다.
다음 날 아침 불루버드 택시를 불러 Katamama호텔로 향한다. '포테이토 헤드'가 위치한 유명호텔이다. 젊은 택시운전수가 헤매는 척하며 목적지를 지나치려는 것을 구글지도을 보여주며 차를 돌리게 한다. 믿을 놈이 없다 싶다. 그리고 택시가 국가의 이미지와 바로 직결된다 싶어 우리 현실과도 견주게도 된다. 포테이토 헤드 앞은 오전 10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미리 예약한 덕분에 해변가 연접한 데이 베드로 안내받는다. 설계 개념은 쿠데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얼마만큼 즐길 수 있는가가 중요하겠지. 호텔 입구에서 경비원들이 몸 수색을 하더니 포테이토 헤드에서는 아예 총을 맨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 그리 삼엄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지난 밤 무슨 일이 있은 듯하다.
우붇의 호텔에서 보내준 차량편으로 우붇으로 출발. 여전히 복잡한 몽키포리스트와 전통시장 앞을 지나 우붇궁전 옆 주차장에 도착하자 스쿠터 몇 대가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짐도 나눠 싣고 뒷좌석에 태우고 700미터 정도의 좁은 농로를 달려 도착한 곳이 논 한가운데 있는 오늘의 숙소 'luxe villas'이다. 쉽게 경험해 볼 수 없는 색다른 현장이다. 그런데도 가격은 만만치 않다.
짐 정리를 간단히 하고 다시 스쿠터 뒤를 타고 시내로 나와 전통시장 분위기도 익히고 캐나다 출신의 빌라 주인이 소개해준 식당 hujan locale에서 저녁도 즐긴다. 그리고 호텔에서 나눠 준 지역전화로 연락하면 다시 스쿠터가 달려 나오고 뒷좌석에 앉아 돌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스쿠터는 밤12시 까지 운행된다. 상상하기 어려운 양상이지만 나름 은근히 재미도 있다. 그런데 새벽에 잠을 깰 수 밖에 없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개구리들의 합창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잠을 설치게 될 줄이야...
다음날 아침 조식 후 이번에는 걸어서 우붇시내로 간다. 도착하자 말자 전통예술미술관(museum puri lukisan)을 찾았다. 전시시설은 형편없었지만 전시 작품들이 그 전통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I Gusti Nyoman Lempad와 같은 걸출한 작가가 등장했기에 가능했는데 그는 세밀한 묘사가 특징이다. 그나마도 네덜란드인 Rudolf Bonnet이 발리 미술의 진정성을 믿고 지원했으며 이 곳 작가 Sukawati와 힘을 합쳐 미술관을 짓고 작품도 기증했기에 가능했다. 발리전통음악 CD와 에코백 정도를 기념으로 구입하고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걸어서 돌아왔다. 무덥지근하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와인 한 잔이 곁들어진 저녁식사와 음악에 마지막 발리의 밤은 깊어간다.
빌라 주인 Paul의 배려로 늦은 체크아웃이 가능해져 어제 보지 못한 미술관을 순례하고자 나섰다. 어제부터의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아 택시를 이용해야 했다. 길에서 택시를 외치는 기사에게 대략 4시간 기준으로 제안했더니 '400'. 결국 흥정끝에 '300'을 낙찰되었다. 3만원정도이다. 먼저 10분 거리에 있는 Neka미술관을 찾았다. 교사출신의 네카가 소명의식을 가지고 설립한 현대 및 전통미술관이다. 남쪽 Arma미술관은 훨씬 현대미술관에 가깝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에 미술감상은 실로 제격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귀가길에 슈퍼마켓에서 기념품도 구입하고 몽키포리스트에서 짧게 겉핡기식의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이미 오후도 한참 지났다. 늦은 체크아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저녁을 주문해서 먹고는 예약된 차량으로 공항을 향해 출발, 귀국길에 오른다.
발리의 은퇴이민 대상지로서 가능성을 탐색해보면, 발리는 국제적인 관광지이다 보나 영어 사용에 불편이 없고 개방적이다. 날씨 역시 짧은 기간의 경험이지만 폭력적이지 않았다. 또 일부 미꾸라지들을 제외하고는 주민들이 순박하고 친절하다. 경제 수준이 떨어지다 보니 생활비가 적게 들고 카르푸, 골프장과 같은 편익시설도 갖추어져 있어 집적경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조금만 외곽으로 가면 바로 자연을 즐길 수 있어 즐거움이 두배이리. 단 하나 장기 거주를 위해서는 스쿠터 운전은 꼭 배워서 가야할 듯하다. 여기에서는 스쿠터가 발이니까. '쑥쓰모어'
Tijili Seminyak Hotel 내부. 조식포함 1박에 7만원이지만 만족도가 높다. 특히 직원들이 친절하다
발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절. 아침에는 우리의 '고시레'가 절과 가게 앞에 놓여 있다.
Mount. Batur와 호수의 원경.
Barong Dance, 다른 말로 Fire Dance라고 하는 전통춤이다.
논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Luxe Villas. 귀족 고급주택을 개조한 고급 풀빌라.
우붇에 있는 전통예술미술관(museum puri lukisan) 내부 조경
전통예술미술관(museum puri lukisan) 내의 판매용 작품. 100만원대 작품이다.
Neka Museum 입구
Neka Museum 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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