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네현(島根縣)은 우리와 악연이 깊은 동네이다. 바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행정구역이다. 이런 적진에 우리가 배워야 할 사례가 있다. 아다치(足立)미술관과 이와미긴잔(石見銀山) 세계문화유산이다. 최근 도시재생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이 지방중소도시이다. 노령화, 기반산업 부족, 인구 감소등으로 도시 소멸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일본도 이런 지역을 과소지역이라고 규정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성공한 지방중소도시들은 결국 주민이 얼마만큼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공통적이다.
에어서울을 타고 요나고(米子)공항에 도착한 것이 11시경. 출구를 나오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워 놀랐다. 출구앞에 일렬로 서서 한국관광객을 환영하는 행사를 벌이는 것이다. 각종 관광지 소개자료와 메모지을 넣은 기념품도 안겨준다. 그런 소란에 착각을 하여 JR 요나고역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더니 비용이 2배 정도 더 든다. 요나고역에서 5천엔 4일패스를 구입하고 야스기(安來)역으로 이동한다. 아다치미술관까지 가는 무료셔틀버스 편수가 많기 때문이다.
70대로 보이는 노인이 운전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아다치미술관에 도착한다. 야스기 시내는 점심시간인데도 죽은 도시처럼 사람을 볼 수 없다. 날씨 탓인지, 쇠락해가는 지방중소도시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다만 아침 저녁식사 제공에 하루 숙빅비가 2,580엔이라는 호텔광고가 저간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여권을 보여주고 외국인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미술관 입장료 50%할인받을 수 있어 1,150엔으로 입장한다. 전시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일본식정원이 미국 정원전문지에서 2003년 이래 일본 최고의 정원으로 계속 선정될 정도로 대단하여 유명한 미술관이다. 전시실을 이동하는 중간중간에 볼 수 있도록 배치한 정원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정숙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들어갈 수도 없고 때 마침 바람마저 없으니 마치 죽은 자의 저 세계 처럼 처연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애니메이션풍의 일본 그림에 식상해 있던 나는 근대 일본화와 도예관에서의 도예 작품에서 깊은 감명을 느낀다. Kitaoji Rosanjin, Kawai Kanjiro의 1930년대 도예작품에서 조형미와 풍부한 색상이 놀라울 뿐이다.
남은 시간은 미술관 지근거리의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하지만 야스기시엔(來苑苑)이라는 예쁜 이름과 달리 일본 료관 특징을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시설은 낡았고 깨끗하게 잘 관리되지도 못하고 있었다. 식당과 겸업하는 료관인데 점심때 이미 형편없는 맛을 본 지라 저녁은 주변지역의 식당에서 해결하려고 마음먹었을 정도이다. 그런데 명색이 사기노유 온천지구인데 제대로 된 식당이 없다. 딱 한 군데 불이 켜져 있는 식당이 있었는데 예약손님만 받기 때문에 안된단다. 자전거를 빌려 주는 젊은 식당주인의 호의에 힘입어 1킬로 떨어진 편의점에서 벤또를 사가지고 와 요기를 한다. 어쩌구니 없게도 편의점 벤또로 이국에서의 첫날 저녁만찬을 즐기게 되었다. 도심내 역 인근에 숙소를 구해야 한다는 값 비싼 교훈을 얻는다.
아다치미술관의 정원
아다치미술관 내 정원
다음 날 아침식사 시간에 호텔을 바꾸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9시 20분 셔틀버스 첫차를 타고 야스기역을 거쳐 요나고역에 도착하여 호텔부터 찾는다. 더운 날씨에 5개 호텔을 전전하여 겨우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일단 짐을 맡기고 오다시(大田市)역으로 출발. 1시간여 걸려서 도착하고 오모리행 버스를 타고 30분을 가면 200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와미긴잔(石見銀山) 은광과 오모리(大林))지구에 다다른다. 세계문화유산 지정구역은 은광산 뿐만 아니라 은수송에 사용된 길, 항구, 마을, 온천가 등 범위가 넓다. 은을 채굴한 횡혈식 갱도를 마부(間步)라고 부르는데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다. 1526년 발견된 이래 약 400년에 걸쳐 채굴된 세계유수의 광산 유적인 이와미긴잔 은광. 이와미긴잔 세계유산센터로 가면 당시 은 광산에서 은광을 캐고 제련했던 과정이 자세히 소개되고 보여주고 있다. 특히 3D로 복원하여 설명하는 장면과 제련기술 회취법이 조선으로부터 넘어왔고 당시 은 생산량이 세계 은 생산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고 이를 통한 외국과의 거래가 외국과의 교류 계기가 되었다고 밝히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또 주민들의 각오를 담은 주민헌장도 눈길을 끈다.
이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오모리 마을은 수 십년 전부터 마츠바 토미부부가 전통적인 수법과 내용으로 마을을 정비해 명소가 되었다. 특히 군겐도(群言堂)이라는 가게는 전통기법을 되살려 만들어진 의류, 생활용품, 차집을 운영하는데 도쿄에 지점이 있을 정도로 활발하다. 대부분 여성의류 뿐인 옷 가게에 들어가서 남성의류를 찾았더니 적지 않게 당황한 표정이다. 문화나 예술관련한 명소만들기가 주민간 갈등, 주민과 관광객의 갈등이 비일비재한 우리 현실에 견주어 배워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저녁에 식당에 들렸다가 의문 하나가 풀렸다. 트라이애슬런대회가 내일 있다는 것이다. 호텔에 방이 없는 것도 자전거를 타거나 정비하는 사람이 많았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오모리마을내 군겐도 본점
오모리마을
서울로 출발하는 당일 아침에 서둘러 마쓰에(松江)로 간다. 시내 관광버스를 이용하여 마쓰에성 주변을 둘러 보고자 했다. 먼저 시오미나와테(塩見繩手)에 내려서 무사의저택과 아름다운 산책길로 유명하다는 시오미나와테거리를 산책하고자 했다. 하지만 무사의 저택은 공사로 폐쇄되었고 산책길은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그저그랬다. 마쓰에성 해자를 이용한 유람선은 모터를 이용하고 있어서 야나가와에서 뱃사공이 직접 노를 젓던 모습에 비하면 운치가 덜하다. 두번째 목적지 가라코로공방은 일본은행 지점건물을 개조하여 공방으로 조성하고 뒷편에 이와 연결된 스튜디오까지 설치하여 재미가 배가되었다. 길 건너의 교미세(京店)상점가도 재미있어 보이는데 일요일이라 대부분 문을 닫아 아쉽다.
마츠에성 인근의 무사의저택 등
마쓰에의 가라코로공방
마쓰에의 시내 관광버스. 요금은 1회에 200엔 하루에 500엔
요나고의 상징 미즈키 시게루(水木시게루) 로드로 간다. 하지만 미즈타 시게루 거리는 행정구역상 사카이미나토(境港)에 속한다. 요나고역에서 사카이선(境線)을 타고 가면 종점이다. 사카이선은 단선인데다 검표를 기차차장에 의하고 있어 내리는 문도 하나이다. 반대편 기차를 피하다 보니 속도도 느릴 수 밖에 없다. 1시간의 배차간격이라 1시간의 여유가 주어졌다. 기차도 역사도 의자도 거리도 온통 만화를 이미지화한 것으로 채워졌다. 귀신과 관련된 모든 것이 상품화되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휴일이어서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역사 인근 회전초밥집에서 마지막날 생선을 초밥으로 맛본다. 사흘 전 기대를 갖고 입국했던 공항에 와서 다시 출국수속을 받은다. 다시 한번 더 와보고 싶냐고 마음속으로 물었더니 '예' 라는 답이 나왔다.
사카이미나토역사 앞의 시게루 조형물
요나고역에서 사카이미나토역까지 운행되는 테마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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