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안에서도 열리지만 밖에서도 열린다.' <문래공감>에서 나오는 첫 귀절이다. 문래동은 거품같았던 외부의 관심에서 삶과 예술의 공존공간으로 자리잡아 가는 과정에 있는 동네이다. 그 초창기에 해당하는 2009년에 이곳을 찾아 들어와 이제는 그 구성원이 된 이록현작가가 정말 귀한 시간을 내어 안내를 맡아 주었다.
최근 일어났던 일부터 소개를 시작했다. 지근 거리에 있는 문래근린공원은 원래 6관구 부지였는데, 최근 이 공원의 주차장 부지에 예술공간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시도하다 상가주민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작가와 지역주민이 만날 수 있는 공유공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짙한 아쉬움을 토해내는 것을 보며 이 문래동작가가 지향하는 속내가 다소나마 이해되는 듯하다.
ASSEM B01에서 전시회 관람도 하고, 최두수 유니온아트페어 대표 이름도 듣고, 과거 신풍장 여관이 문래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한 현장도 확인한다. 골목에 깊이 숨어 있던 대안공간 이포가 큰 길가로 나와 있었다. 수년 전 전시회를 보기 위해 이포를 찾았다가 무지 고생했던 기억이 새롭다.
주말에만 상영한다는 주말극장, 팬토마임를 한다는 일본인 작가의 스튜디오도 눈길을 끈다. 그런 중에 거친 매너에 대해 조심을 당부하는 곳곳의 팻말이 계속 나를 부끄럽게 한다.
문래고가도로가 상징처럼 자리잡고 있있던 문래동사거리 주변에도 변화가 있었다. 거인체육관이 있던 건물에는 고구려북소리 전수공간, 수 개월씩 코워킹할 수 있는 작업공간과 전시공간이 들어서 있다. 상징건물이 된 문래동우체국을 지나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작가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2층건물이 보인다. 현재는 수제맥주 제조공장과 시음장으로 바뀌었지만, 건물의 2층은 작가의 초창기 문래동시절의 작업공간이었고 화재로 작품에 큰 손실을 입었던 아픈 기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화재로 삶의 터전을 잃어 버려 망연자실했던 공장 사람을 더 안쓰러워 하는 작가의 따뜻함이 가슴깊게 느껴진다. 그 건물 1층에 있던 희다방은 맞은 편으로 옮겨 쌍화차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단다.
김홍빈작가는 '헤어진 옷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일전에 이 곳 유일의 출판사 <청색종이>에서 그를 만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그릴 수 밖에 없는> 에세이집을 구매하면서 그의 사인까지 받아 놓았지만 정작 서로를 몰라봤다. 30여명의 갑작스런 방문에도 흔쾌하게 그의 작업실을 개방해주어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또 <Old mullae>는 최복숙대목이 공장을 개조해서 운영하는 식당인데 바쁜 와중에도 반갑게 맞아준다.
한편 문래동4가는 일제때 군수업체 종사자가 거주하던 지역이어서 필지규모도 작지만 최근에는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다시 델타지역으로 넘어오면 젠트리파게이션이 첨예화된 현장을 보게된다. 집주인의 요구로 작업공간을 잃게 된 작가의 예술가적인 호소는 더 애잔한 마음이 든다. 숙제처럼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드카집은 나에게 술집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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