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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길다와 함께 하는 해외답사 첫날인지라 어수선하다. 요나고 도착 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모두 마쓰에(松江)로 향한다. 그리고 일단 마쓰에역 도착 이후 각자 흩어졌다. 나는 홀로 마쓰에포겔파크로 정했다.
Vogel park는 꽃과 새들의 세계이다. 마쓰에역에서 7번 순환버스를 타면 마쓰에신지호온센역(松江宀六道湖溫泉驛)에 도착할 수 있다. 거기서 다시 신지호변을 달리는 전차로 갈아 타면 마쓰에보겔파크에 이른다. 외국인 할인을 받으면 1,050엔을 내고 입장이 가능하다. 입구에서부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면 4층 높이의 전망대가 나타난다. 신지호(宀六道湖)가 한 눈에 들어온다.
홍학과 같은 순한 새들의 우리를 지나면 독수리, 솔개와 같은 맹금류를 가둔 대형우리가 있고 최종적으로는 올배미와 잘 관리된 수많은 꽃들이 조화를 이루는 우리가 대미를 장식한다. 곳곳에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공연광장이 마련되어 있고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새들의 모습에 빠져 마치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다시 마쓰에신지호온센역에 돌아와서는 역사 앞에 있는 작은 족탕에 짧게 발을 담구고 시마네(島根)현립미술관을 향한다. 소장 중인 작품전시회와 기획전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일본 여류작가 '오구라유끼(小倉遊龜, 1895-2000)와 일본 근현대작가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회의 첫 작품 요코야마 다이칸(橫山大觀,1868-1958)의 석영(夕盈)이 숨을 멈추게 한다.
어스럼이 내려앉은 석양 속에 진한 회한을 새긴듯이 보일까 말까한 새 몇마리에 가슴이 아려온다. 이게 1920년대 작품이란말인가? 1898년 일본미술원은 독보적인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에 의해 창립되었다. 그는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에 이어 히시다 슌소(菱田春草, 1874-1911)와 함께 일본미술의 실질적인 1세대를 형성하는 작가이다. 그 외에도 시모무라 칸잔(下村觀山), 키타노 네도미(北野恒富,1880-1947)가 있다. 작품으로 볼때 키타노 네도미의 거울 앞(1915), 安田靭彦의 왕인(王仁)이 인상적이다. 왕인은 마치 신선처럼 그려져 있어 이들의 인식을 알 수 있다. 2기에는 우시타 게이엔(牛田雄村, 1890-1976), 小林古俓(1883-1957)이 뒤를 잇는다.
이번 전시회는 오구라유끼의 작품이 많이 선보이고 있다. 그녀는 1920년대에 스푸마토기법이 연상되는 전형적인 일본화에 머물다, 1950년대 들어서는 오늘날 작품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획기적 변화를 보인다. 작가의 창작 열정과 간단없는 시도가 대단하다 싶다.
미술관 소장품 전시관에는 고갱, 시슬리, 라울뒤피, 쿠르베의 회화에다 로댕의 조각품도 전시공간을 채우고 있어 이들의 열정과 노력이 가상하다. 이들 작품에 빠져 있다보니 일품이라는 미술관에서의 석양 감상은 놓치고 마지막에 작게 걸려 있는 석양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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톳도리(鳥取)는 우리에게 사구, 모래박물관 등이 있는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톳도리현도 있고 톳도리시도 있다. 요나고역에서 약 1시간을 달리면 구라요시(倉吉)를 만나게 되고 다시 30분을 더 가면 톳도리에 도착하게 된다. 금번에는 구라요시를 목적지로 정했다. 구라요시역에서 내려 관광안내소의 도움으로 30분거리의 시라카베도조군(白壁土藏群)으로 출발한다. 붉은 기와와 흰 벽으로 된 일본전통건축물이 집단으로 들어선 지구이다. 마을 중심에는 조그마한 실개천이 흐르고 있는데 워낙 잘 관리되고 있다보니 팔뚝만한 민물고기들이 여유롭게 노닐고 있다.
마을 한켠에 붕어빵 가게가 자리잡고 있는데, 붕어 전체에 팥이 들어있고 달지 않아 제법 먹을만하다. 자동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길들이 잘 정비되고 관리되고 있어 거닐어 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박제화되거나 보여주기 위한 관광상품으로서의 도시재생이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공간으로서 도시재생이 일본 도시재생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미긴잔과 오모리지구도 이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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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구라시키(倉敷)의 미관지구(美觀地區) 방문시 때 마침 월요일이라 출입이 어려웠던 오하라(大原)미술관을 목표로 장도에 오른다. 그런데 출발이 심상찮다. 잘못 탑승해서 갈아타고 보니 자유석이 만석이다. 요나고에서 오카야마(岡山)까지 급행열차로 2시간을 화장실 옆에서 서서 가게 되었다. 게다가 산길이다 보니 심하게 흔들린다. 도착할 때 즈음 멀미에 어지럽기까지 하다. 간신히 가라앉히고 미관지구로 출발. 역에서 10분여의 가까운 거리에 미관지구가 자리잡고 있다. '일본 제일의 상점 거리경관'으로 선정되었단다. 300여년전 에도막부의 직할지로 번성을 누렸는데 개국 후 메이지-다이쇼시대까지의 거리 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
미관지구 중간지점에 자리잡고 있는 오하라미술관은 일본 최초의 사립미술관으로 유명하다. 이오니아양식의 기둥으로 된 미술관에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선다. 로댕의 '갈레의 시민'을 뒤로 하고 본관으로 진입한다. 엘 크레코의 '수태고지', 모네의 '수련', 모딜리아니의 '목이 긴 여인', 샤갈의 '여인'등의 서양명화가 다수 전시되어 있다. 또 샘 프란시스, 진 포트리에르, 부르댕, 그리고 새로이 감동을 준 페르디노두 홀더, 칼 아펄, 미래주의 De Chirico도 좋다. 분관으로 가면 오카야마 출신으로 기업인 오하라와 손을 잡고 미술관 개원에 일조한 작가 코지마 토라지로(鹿島 虎次郞)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파리 유학을 다녀 온 그의 작품은 화려한 색채로 인해 르노와르를 연상케한다. 또 우리나라 이우환, 마크 로스코 등의 작품, 헨리 무어의 '누워있는 여자' 조각품, 시마네현립미술관에서 감동을 안겨주었던 토야시게오(戶谷成雄)의 조각품도 자리를 잡고 있다.
미관지구내에는 구라시키 아이비 스퀘어(倉敷 Ivy Square)가 있다. 옛 구라시키방적의 공장부지 재생작업을 벌여 기념관, 호텔, 아이비공관, 아이비학관, 고지마 도라지로 기념관 등이 재생시설로 새롭게 자리잡고 있다.
올때는 여유있게 졸면서 앉아 올 수 있었다. 저녁 이후에는 'Snack 히로세'에서 90분간 마지막 밤을 짧게 불태우고, 그리고 남은 여력은 몇몇 학우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밤늦게까지 듣는데 소진한다.
참조로 일본의 역사를 개괄해보고자 한다.
일본은 미약한 청동기시대를 거쳐 도래인에 의해 철기와 벼농사가 가능해지는 야요이 시대를 맞는다. 기원전 1 – 기원 후 3세기에 최초 국가가 등장하며 4세기 중엽에 이르러면 최초의 통일국가인 야마토국이 등장한다. 6세기 쇼토쿠태자는 수나라와 교류하며 개혁에 앞장선다. 그리고 7세기 후반에 '천황', '일본'을 사용한다.
헤이안시대를 맞아 수도로 나라(710-794), 쿄토(794-1192)를 사용한다.
이 시대의 특징은 셋칸정치, 원정 등으로 천황과 권력자와의 갈등이 계속된다. 그런 중에도 국풍이 융성하게 되고 가나문자는 8세기 말경에 등장한다. 당풍으로부터 벗어난 일본 고유의 관복을 갖추게 되고 720년 일본서기가 완성된다.
그리고 바쿠후시대(1185 - )가 개막된다. 막부(최고통치자 쇼군)가 징세를 위해 지방관을 보내는 권한을 위임받고 그 구실은 천황 보호를 내세웠다. 1274년, 1281년에 여원연합군의 침략이라는 위기를 맞지만 가미카제(신풍)로 극복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1590년에 짧은 통일를 맞고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이 승리하면서 260년간의 에도시대를 개막한다. 막번체제로 안정적인 정치를 운영하면서, 산업이 발전하고 화폐를 사용하고 해외 교류도 활발해진다.
1854년에 일미화친조약이 성립하고 마지막 쇼군 요시노부는 천황에게 정권의 반납하면서 1867년에 천황제가 부활한다. 1868년 메이지 천황은 개혁을 단행하고 1889년 천황은 헌법 공포한다.
메이지 유신에 등장하는 인물이 쇼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 1859)이다. 존왕파 사상가인데 쇼카손주쿠(松下村塾)을 설립하여 이토우 히로부미와 같은 침탈주역을 길러낸다. 조선을 공격하여 인질과 공물을 바치게 하고 만주와 대만을 정복하는 정한론과 대동아공영권 사상 기반을 제공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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