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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요카를 가게 될 줄 몰랐다. 사실 어디에 있는 곳인지도 몰랐다. ICOMOS라고 세계문화유산과 관련된 국제기구가 있다. 그 산하에 위원회 성격의 ICTC가 있는데 매년 미팅과 스터디투어가 있다. 이번에는 마르요카에서 개최된다기에 신청하여 참가하게 되었다. 시장의 환영만찬이 있을 정도로 공식적이지만, 극히 저렴한 비용만 부담하면 되니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2년전 도시설계학회가 주관하는 스페인 북부 답사를 다녀왔고 이번에 추가 일정으로 남부지역 도시답사를 하면 스페인을 완료지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 생각했다.
다만 문제는 비행거리가 길다는 점이다. 이스탄불까지 11시간 반에다 다시 마드리드까지 4시간 반. 그리고 마요르카까지 1시간 비행. 이런저런 대기시간까지 포함하니 거의 24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마드리드에 도착하기 전에 가지고 온 책 1권을 벌써 읽어냈다.
터키항공은 승객을 많이 불편하게 한다. 일단 식사 주문을 받을 때 주문서에 이름도 적고 토마토주스 등등에 체크를 해서 주문한다. 잠시 후 토마토 주스에 라임과 얼음을 넣을지를 묻는다. 곧 셰프복장을 갖춘 이가 나타나 또 주문을 확인한다. 음식이 짜지 않으면 최고인데...
기내에 와인 리스트 소개책자가 있었다. 현지 와인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했다. 첫번째 터키와인은 에게와인이었는데 무겁고 강렬하다. 두번째 터키와인은 블렌딩 와인인데 달콤하고 부드럽다. 1~2잔에 벌써 졸립다.
마드리드에서 드디어 마르요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런데 재미있는 광경을 많이 목격한다. 왼편, 오른편 각각 3개의 좌석으로 이루어진 소형비행기이다. 비지니스석은 이코노미석과 폭, 넓이가 똑같은데 대신 가운데 좌석 하나를 비워 두는게 차이인 듯하다. 음료와 스낵을 준다는 점도 차이이긴하지만. 게다가 승객과 승무원이 너무 친하다. 교대를 위해 이동하는 몇몇 조종사가 먼저 탑승해 있었는데, 이들은 탑승하는 승객들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아마 지역주민들이 비행기편을 자주 이용하다보니 친밀해진 듯하다. 우리네 시골버스 운전수와 동네 할머니들이 가까운 것 처럼 말이다.
1시간만에 마요르카의 Palma에 안착한다. 팔마공항은 규모가 상당히 크고 독일인들의 휴양지로 널리 알려진대로 독일인들이 많이 보인다. 안내판에 스페인어 다음으로 독일어가 쓰여 있을 정도이다. 공항에 마중나온 관계자의 안내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해변 산책에 나섰다.
노천카페에 들어가 요기를 하고 이 동네와인과 치킨바베큐를 사서는 호텔로 돌아와 첫날의 만찬을 즐긴다. 마르요카 와인이 나쁘지 않다.
다만 관광객을 주로 상대해서 그런지 음식맛은 최악이다. ICTC 스페인 관계자인 Bartomeu- 일주일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던 기분 좋은 친구였다- 도 차라리 호텔내 식당을 이용하라고 권유를 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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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식당에서 커피 한잔으로 잠을 깨우려는데 아예 커피와 밀크 포트를 가져다 준다. 커피 인심이 후하다.
20여명의 답사팀들은 버스로 구시가지까지 이동하고 거기서 팔마 구시가지를 걷기 시작한다. 현장 스페인 안내자는 먼저 Cathedral de malloca로 안내한다.
성당 주변에는 칼더의 작품과 호안 미로 기념석이 있다.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웅장한 장미스테인드 글라스에 햇살이 비추면서 영롱하고 신비한 향연을 연출한다. 특히 가우디가 만들었다는 성당내부 집기는 유리로 만든 조명, 철로 된 펜던트 등이 예사롭지 않은 자태를 뽑낸다.
구시가지는 과거 좁은 길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성벽과 성문이 주택을 가로지르며 공존하고 있다. 좁은 길의 가각부는 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깍아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인근의 마르요카 전통주택으로 이동하여 설명을 듣는다. 3가지 특성이 있는데 내부에 중정을 두고 기둥, 아치로서 구성되어 있단다. 내부를 관통해서 후원으로 나갈 수도 있다.
구시가지의 Townhall 인근에는 가우디가 내부 설계를 하고 그 후계자가 외부를 완성했다는 건물도 보인다. 여전히 상가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벽화가 그려진 어떤 동네의 전기줄에 신발이 걸려 있다. 마약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란다. 우루과이에서 온 Adrian, 호주 Ian은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그런 뜻을 가진 표식으로 통했단다. 세계 공통어란 뜻이겠다.
일행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발레아릭스제도대학 Balearics Islands University로 이동한다. 이어 이 대학의 특성학과라고 할 수 있는 관광학과 교수의 특강을 듣는다. 그리고 진지한 질문 답변이 이어졌다.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진지한 토론은 힘들기만 한다. 교내 식당에서 식사와 커피도 마시고 교내시설도 둘러본다. 강의실에서는 수강이 이루어지고 교내 식당이나 학교 소유의 식당에서 실습을 하게 된단다. 수업은 독일어와 영어로 진행된단다. 독일관광객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고 스페인어는 어차피 현지 언어로 배우기 때문인것 같다. 80%가 독일관광객인 이 곳 휴양지가 마치 독일령 같은 듯하다.
하지만 시차로 인해 머리가 아플 정도로 피곤해 결국 저녁에 미술관 가는 일정에 대한 욕심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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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같이 생기지도 않은 오래된 역에 도착했다. 호안 미로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역 구내에 자리잡고 있어 더 이채롭다. 추상미술가 호안미로는 바르셀로나 출신이지만이 곳 마요르카에서 말년 20여년을 보내다 1983년 크리스마스에 숨졌다. 관광용 구식 열차를 타고 Soller로 향한다. 1929년에 만들어진 트램형태인데 제법 속도도 있다.
Bartomeu는 가는 중에도 설명을 쉬지 않는다. 동편 마르요카에는 포도나무밭이 넓게 분포하고 있고 북서쪽은 산악지대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Soller는 북쪽으로 1시간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Soller역의 벽면이 호안 미로 그림으로 도배되어 있다. 읍만한 도시에 관광용트램도 있지만 노천카페로 인해 한가한 분위기이다.
Soller성당은 지역규모에 비해 큰 성당인데, 입구는 아르누보, 내부는 고딕 양식에 가깝다. 인근 주택의 철망이 가우디 설계라는 설명에 스페인에서 가우디와 호안 미로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이어 MODERNIST MUSEUM CAN PRUNERA(CAN은 스페인어에는 없고 마요르카말로 집이란 뜻)에서 작가 Anna Nicholas 초대의 시간을 갖는다. 그녀 경력 소개인 듯한 특강을 마친 후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녀가 10여년전에 기네스기록 심판원으로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공개해 놀라게 한다. 설명 중에 자세히 보니 기와건물은 우리처럼 암기와와 수기와로 구성되고 있었다.
다음은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Bartomeu의 집이기도 한 올리브오일공장(OIL MILL CAN DET)은 옛날 제조시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견학을 마친 후에는 식사제공도 있었다. Fugus위원장은 내가 산업유산에 관심있다고 했던 말을 용케 기억하고는 이것도 산업유산이라며 말을 건넨다. 다시 HOUSE MUSEUM WRITER ROBERT GRAVES(작가 로버트 그레이버스가 말년을 보낸 집)을 방문하고 SON MARROIG MIRADOR AND SON MORAGUES VALLDEMOSSA(SON은 property개념으로 VALLDEMOSSA에 있는 저택과 올리브농장)를 찾아가 설명을 듣는다. 올리브농장 주인은 이 곳을 빙자하는 원산지 문제로 고민이 많다고 실토하고 그것이 바로 논쟁거리가 되면서 갖가지 아이디어가 쏱아진다.
저녁 8시부터는 시청사에서 THE PRESIDENT OF THE MALLORCA REGIONAL GOVERNMENT이 제공하는 공식만찬에 참여하고 9시반이 되어 호텔로 돌아온다. 배만 고프다. 강행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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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지답게 연속 'lovely weather'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낯모르는 외국인이 인사말로 던진 말이다. 오늘은 아예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옮긴다는 공지가 있었다.
CALVIA MUNICIPALITY에 있는 올리브농장이다. 필리핀의 계단식 논 같이 계단식으로 올리브가 식재되어 있고 농장건물에는 올리브유를 제조하는 공정시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공공의 권유로 농장을 개방하고 관광객이 둘러 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망고로 손실을 보전한다고 한다. 어제 들렸던 Soller와 사뭇 다르다.
그리곤 비취에 면한 호텔, 사진찍기 좋은 포인트를 둘러본다. 고급호텔이 1박에 120유로에서 300유로라니 턱없이 비싼 가격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점심을 먹기 시작한 시간이 4시반이다. 지친 상태에서 식사는 오히려 더 지치게 하는 듯하다. 그리고 HOTEL REY DON JAIME IN SANTA PONSA에 도착했다. 도심에서 보다 서쪽으로 밀려났고 어제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는 오래된 호텔이다. 단체관광객을 위한 호텔인 듯하다.
7시 리셉션, 7시반 자체 토론회, 8시 저녁식사로 숨가픈 하루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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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에 로비에 모인다. 오늘은 문화투어리즘으로 나달 스포츠아카데미, 미식투어리즘으로 와이너리(ESTATE CAN FELIU)가 있다. 사뭇 기대된다.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인 라파엘 나달은 마요르카의 MANACOR출신이다. 그런데 팔마에서 동쪽으로 45km 떨어진 Manacor 입구는 문을 닫은 곳이 많고 썰렁한 도시이다. 다만 스포츠센터는 테니스 뿐 아니라 다양한 입체적인 영상, 체험프로그램으로 관심을 끈다.
와이너리 체험을 위해 가게되는 Porreras도 당연히 동쪽이지만 다소 남쪽이다. ESTATE CAN FELIU는 중형버스의 접근이 어려워 1km를 걸어간다. 1999년에 오픈한 어린 와이너리이지만, 에코, biodynamic quality를 지향하는 청정와이너리를 자랑한다.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며 수출을 주로하고 일부 내수도 담당한단다. Bullfish, Ale등의 브랜드로 출시되었고 브뤼셀와인 품평회에서 수상도 했다. 로제보다는 화이트, 레드가 좋다. 도수는 14.5도로 높다.
게다가 마지막에 농장주가 흥이 나서 '구라파'를 꺼내 왔는데 도수 43도에 이르는 포도찌꺼기로 만든 술이란다. 그 한 잔에 다들 목소리가 높아진다. 역시 술은 많이 마시거나 높은 도수 술을 한 잔해야 분위기가 업되는 것 같다.
다시 ITINEREM FOUNDATION, Santa Maria를 방문한다. 'Possession'을 이 곳 전통의 장원(주택과 주변 와인밭)이라고 하는데 이 곳을 활용하여 유산으로 지정하고 숙박 등으로 활용하겠다는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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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구시가지에 있는 CAN BALAGUER PALAST를 둘러 본다. 전형적인 마르요카주택을 복원하여 관광자료로 이용하고 중정은 카페로 이용하고 있다. 현장 안내자는 그 건물에 있는 피아노가 안익태(Iktai Ahn)가 연주하던 것이라며 그를 기억한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스페인통역사에 이어 벌써 두번째이다. 그의 20여년의 마르요카생활을 짐작해본다.
그리곤 잠깐 자유시간을 이용하여 첫날 밤 답사를 같이 못했던 현대미술관을 찾아 나섰다. MUSEUM ES BALUART는 성을 현대화한 현대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설계가 놀랍다. 시간이 부족해 전시를 보지 못했지만 미술관을 둘러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구시가지의 골목길은 항상 범죄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는데 여기에 갤러리와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범죄가 줄어들고 도시재생 시범으로 재탄생했다. 대표적인 갤러리가 GERHARD BRAUN GALLERY IN PALMA이다.
마지막 날이라 제법 형식을 갖추어 기념식수하고 2007년에 새롭게 복원한 RAIXA PALACE AND GARDENS를 둘러본다. 설명에는 4가지 언어로 되어 있다: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그리고 마르요키(마르요카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마르요카 서로 해석은 된다고 하는데 이렇게 언어 자체가 다른 줄은 몰랐다. 그리고 여기서 음악까지 곁들인 근사한 FAREWELL DINNER도 즐긴다.
그러면서도 전문가가 세계문화유산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을 등에 업고 즐기는 세속적인 향유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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