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루소만큼 여행에 관해 많은 말을 남긴 사람도 없다. 그 자신도 젊은 시절에 어떤 목적이나 목표를 기약하지 않고 떠나기를 반복한다. 그 자유로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글을 쓰는 것도 거부했을 정도이다. [사회계약론] 등을 출간한 이후에는 개신교와 카톨릭계 모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고난의 여행길에도 오른다. 이 때 배신당한 구원자와 동일시하면서 신세한탄을 하기도 한다. 그의 지론은, 혼자하는 도보여행이야 말로 철학자의 눈으로 대지가 주는 풍요로움을 공부하는 기회라는 것이다.
새벽 비행기로 비도 내리고 바람까지 부는 스산한 날씨에 Provence Cote d'Azur의 핵심도시, 니스에 도착한다. 프로방스는 프랑스 남동부일대를 가르키는 말이다. 이 지역에 대한 정보라고는 중고 관광안내책자 몇 쪽이 내가 가진 전부이다. 그런데 이미 처음부터 틀렸다. 국제선과 국내선 출구가 같은 건물에 있다 보니 Sortie를 따라가면 입국심사줄에 서게 될 수도 있다, 나처럼. 또 시내까지 98번 버스를 타라고 안내되어 있는데 그 버스는 없어지고 트램이 운행되고 있다. 묻기도 하고 구글로 확인해가며 호텔에 도착한다. 호텔에 가방을 맡기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발코니형식의 건물이 가장 눈에 띈다. 남부프랑스의 건축물 특징이기도 하다.
니스 Nice는 샤갈, 마티스, 르누아르, 장콕트 등이 오랫동안 거주한 곳이자 포비즘의 두 거두의 미술관이 이 곳에 있다. 가장 언덕 높은 곳에 있는 마티스미술관부터 찾았다. 특징적인 색상의 미술관 건물사진이 많이 돌아다니지만 사실은 지하가 미술관이다. 전시공간에는 초창기 작품부터 시력을 잃고 기력이 쇠하면서 도전했던 색종이 작품도 폭넓게 전시되고 있다. 미술관 앞에는 로마시대의 유적으로 원형 경기장이 자리잡고 있다.
언덕을 조금 더 내려오면 샤갈미술관이 있다. 샤갈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 그에 걸맞게 여행을 통해 성서의 분위기를 체득하고 남녀의 사랑같은 인간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했다. 전시작품은 보기 어려운 100호 이상의 큰 그림도 많고 자유로운 인간을 원색에 충실하게 담고 있음을 느낀다.
국립샤갈미술관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니스 도시정부가 토지를 제공하고 중앙정부가 건축비를 부담하되 샤갈 유족들은 그림을 임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설명들이 모두 불어로 되어 있어 아쉬웠는데 시간될 때 읽으려고 아예 영어 책자를 구입한다.
2.
어제부터 오던 비가 아침에도 추적추적 그치지 않는다. 그래도 움직이는 것이 좋겠다 싶어 거리로 나선다. 마세나광장을 거쳐 3.5km에 달한다는 바닷가로 나와서 일별하고 니스역 Nice Ville로 향한다.
새로 건축 중인 부분 역사의 설계가 재미있다는 생각도 잠깐, 지난 밤의 비와 광풍으로 기차운행이 중단되었단다. 그럴 정도로 심한 날씨였나 싶어 고개가 갸우뚱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이때 앙티브 Antibes에 있는 피카소미술관을 생각했다. 공항까지 가면 위치상 더 근접하는 셈이고 공항에서는 버스도 있을 것 같아 일단 공항행 2번 트램에 올랐다. 다행히 공항에서 250번 버스가 거기로 간다는 팻말을 발견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늦게 도착한 젊은 프랑스 사람이 나에게 250번을 여기서 기다리면 되느냐고 물어본다. 결국 의지하며 같이 기다리게 되었다. 코르시카에서 비행기로 왔고 앙티브 인근도시에 사는 여자친구 만나러 간단다.
다행히 예상이 틀리지 않아 Antibes에 잘 도착하였고 아쉬운 이별을 했다. 착해 보인다는 것이 이런 모습이구나 할 정도로 단정해보이는 친구였다.
해변가에 자리잡은 피카소미술관은 주변과 잘 어우러진 자태가 매력적이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가는 길에 눈여겨 보았던 식당을 찾아갔는데 미쉐린 별 하나의 수준급 식당 Figuier St Esprit 이다. 다행히 예약없이도 근사한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기야 식사비가 100유로가 넘었으니 근사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피카소미술관에는 그의 삶과 관련된 사진과 스케치 작품과 원작 몇 점 정도가 전부이고 관람객도 소수에 불과하다. 내심 직원 인건비가 걱정될 정도였다.
돌아올 때는 니스 시내까지 바로 오는 200번 버스를 탔는데 1.5유로였다. 갈 때 11유로였던 것과 비교하며 의아해 하는데 그 차이는 곧 드러났다. 250번 버스는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논스탑으로 가는 직행시외버스였던 반면 200번 버스은 그냥 시내버스였던 것이다. 덕분에 버스에서 길게 잤다.
3.
세계는 우위에 서기 위해 서로 충돌하는 내부의 힘을 가진 원자들로 이루어지는데 이에는 투쟁, 공격 등이 있다고 니체는 주장한다. 이것들이 행복을 포기하더라도 자신의 생존만을, 힘만을 추구하다는 것이다. 니체를 쇼펜하우어, 프로이드와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그의 염세주의는 체념이 아닌 역동적인 원리이다.
니체도 사랑에 있어서는 실패자였다. 연인 루 살로메는 릴케, 프로이드, 그리고 니체 곁을 떠돌다 니체의 친구 레에와 떠난다. 그리고 바그너의 아내 코지마와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를 완성한다. 누구든 초인에 이를 수 있다. 나를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희망이라고 이름붙여진 것들이다. 희망은 도달할 수 없는 과도한 목표이니까. 그러니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운명을 사랑해라. 끝없는 지겨움까지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다시 말해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그는 그 방법론을 제시한다. 많은 나약함, 무기력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가면을 벗기면 원래의 무엇, 힘에의 의지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숭고한 이상이 아니라 과거로부터의 해방, 무단 결석 등과 같은 가벼운 요소가 중요하다. 성취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Vallauris의 피카소 도자박물관, 니스의 근현대미술관에 대한 아쉬움은 아예 접고 쉽게 접근이 가능한 모나코 공국부터 들리기로 했다. 20분 정도 거리의 모나코는 독립국가이지만 외교와 국방을 프랑스에 위탁하는 나라이다. 인구규모도 4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서둘러 아침 8시에 니스 역에 도착하니 철도는 정상화되었고 바로 연결이 된다. 출근하는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우리의 러시아워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스럽다.
모나코는 도시 전체가 급경사지에 위치하고 있다. 해변에는 4,5층 정도의 전통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지만 산쪽으로는 현대식 고층아파트가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봐야 10~15층 내외이지만. 해변 저층 상점에는 그레이스 켈리 탄생 90주년을 추모하는 사진이 놓여있기도 하다.
역사에서 내리면 해변으로 내려가든지, 아니면 암벽속에 감추어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참을 올라와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야한다. 전자를 선택했다. 일단 해변으로 내려오면 요트천국이다. 먼저 왕궁으로 가기로 했다.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왕궁. 월요일 오전 관광객도 없는 이른 시간이라 왕궁의 보초병도 지루한 듯 마냥 오고가기를 반복한다. 아예 도박에는 관심이 없으니 카지노 갈 일도 없고 더구나 요트도 없으니 니스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다시 검색을 통해서 화요일에 휴관하는 르누아르 미술관을 찾기로 했다. 르누아르의 말년을 보낸 곳이기에 생생함이 살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휴관한단다. 어제 피카소미술관에서의 해퍼닝이 이해가 된다. 12시 넘어서 도착했더니 문이 닫혀 있었고 점심 식사이후에 갔더니 개방되어 있었던 것이다. 포기하게 되니 긴 점심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곤 SNCF로 예약한 마르세유행 기차에 오르면서 또 긴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Antibes, Cannes, Tuolon, 그리고 종착지 Marseille Saint-Charles에 도착한다. 마르세유역에는 시내외버스, 공항버스, 메트로가 함께 모여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여행과 이동을 위한 중심지인 셈이다.
여기를 거점으로 Avignon, Aix-en- Provence, Arles를 다녀올 예정이다.
4.
지난 밤에 숙소를 찾아가는 길이 심상찮았다. 일찍 일어나 아침 시내구경을 나갔더니 항구 뒷편의 슬럼가 형국으로 스산하다. 싼 가격에 역과 가깝고 도심이라해서 좋아했더니 값어치를 하는가 싶다. 마르세유가 종전에 악명이 있었던 도시라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스페인에서는 모로코와 연락 배편이 많은 듯하더니 여기는 알제리와의 연결편이 많은 듯하다.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많은 초기 정착지여서 그런가 싶다. 하지만 돌이켜 본들 무엇하랴.
오목한 항구의 양쪽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성채를 둘러보고, 임시 가판이 형성된 어시장도 기웃거려 본다. 마치 공중에 대형평면거울을 설치해 놓은 듯한 해변광장의 노만 포스터 L'ombriere는 인상적이다. 누가 봐도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했겠다 싶은데 자료를 찾아보니 루디 리치오티 Rudy Ricciotti가 설계했다는 지중해문명미술관 Mucem은 화요일이라 휴관이다. 그 옆에 자리잡고 있는 캔틸레버 형식의 카페가 조화롭다.
아쉬움에 들린 Musee Regards de Provence에서는 소장전, 인상주의와 동시대 작가인 Henri Person, La Provence de Gioni 등 3가지 전시회를 볼 수 있었다. 한 번 비용으로 3가지 전시회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가성비 좋은지를 기분좋게 설명하는 할머니직원한테 홀라당 넘어갔다.
점심식사로 케밥을 먹다가 아를 Arles행 기차시간이 좋은 듯해서 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를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배경지 아닌가. 역사의 전면에 흐르는 론 Rhone강을 따라 걷다가 마을중심지로 들어와서는 구글앱에 의지한다. 고흐카페로 알려진 카페는 여간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막상 도착했더니 영업 시작 전이라 인근 카페에서 차 한잔을 주문한다. 고흐에게 아를시기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지만, 오베르에 비하면 노란집도 사라지고 그의 추억거리도 남아 있질 않아 아쉽다. 사실 아를은 아비뇽갈 때 거쳐서 가는 곳이므로 당일 일정으로 함께 잡는 것이 좋겠다 싶다.
5.
프랑스는 로마시대에 Gallia(또는 Gaul)이라고 불리던 지역이다. 아비뇽이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아비뇽 유수'이다. 프랑크왕국의 필리페 4세가 십자군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성직자에게도 세금을 부과하자 교황이 반발하게 된다. 이에 왕은 프랑스인 클레망 5세를 새로이 교황으로 임명하고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겨 68년간을 지속시킨다.
Chateau Pape Clement 2014의 와이너리는 13세기에 식재되었고 1305년에 보르도 대주교의 소유가 되었다. 대주교는 아비뇽 첫 교황인 클레망 5세 이름을 따 '교황 클레망' 이름을 붙여 와인을 생산했다. 지난 밤에 도심의 어둠을 뚫고 사가지고 온 와인이 그 와인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비뇽이다.
아비뇽에는 2개의 역이 있다: 아비뇽 TGV과 아비뇽 Centre. 도심에 있는 Centre역까지 어떻게 가느냐가 관건이다. TGV를 이용하여 마르세유에서 TGV역까지, 그리고 환승해서 Centre역까지 가는데 전체적으로 1시간 남짓 걸린다. TGV역에서 버스를 탈 수도 있다. 환승을 위해 내린 Avignon TGV역은 마치 유리온실같은 독특한 외양이다.
Avignon Centre역에서 직진하면 볼만한 시설들은 다 있다: Angladon미술관, 구교황청, 베네제다리. 하지만 구교황청과 베네제다리는 역사만 남아 있었다. 오후 1시부터 개방하는 Angladon미술관에는 시슬리, 드가, Jean louis Forain, 도미에, 세잔, 모네 그림에다 생활사를 담은 방과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된 18세기 일본그림이 아무래도 신뢰가 가지 않아 물어보았더니 관계자도 확신하지 못하는 눈치이다.
올 때는 SNCF 직접노선을 선택해서 마르세유로 돌아온다.
6.
엑상프로방스 Aix-en-Provence는 폴 세잔이 태어났고 그림을 그렸고 그리고 죽은 도시이다. 세잔은 3차원을 2차원의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화가로 잘 알려져있다.
단연 가장 염두에 둔 방문지는 세잔 아틀리에이다. 그런데 지도를 보고 찾아갔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고 인터폰을 했는데 기척이 없다. 안내문에는 분명히 9시 30분부터 개방한다고 되어 있는데 말이다. 외부창문도 닫혀있는 걸 봐서 개방하지 않는 듯하다. 무슨 이런 일이 있나 싶다. 그러고 보니 나하고는 이 동네가 영 궁합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여기가 그렇고, 영어 안내투어는 오후 4시부터 있어서 활용할 수 없었고, Granet 미술관은 정오부터 개방한다고 해서 헛걸음했다. 여행을 하면서 용인해야 할 항목이지만 참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도 Granet 미술관에 시간에 맞추어 다시 왔더니 실망시키지 않는다. Pierre Jacob, stoel이 좋다. 지코메티는 조각도 좋지만 회화도 좋다. 또 세잔의 작품 10여점이 많은 것을 보상해 준다.
그런데 알려진 미라보길, 로톤도분수 보다는 도심의 넓은 보도가, 그리고 소형전동자동차로 3개의 관광코스에 따라 안내를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자동으로 개폐되는 볼라드를 설치해서 허용된 차량만 진출입하는 것도 우리 현실에 활용도가 높을 것 같다. 다른 도시보다 각종 소규모 아틀리에와 상점, 카페와 식당들이 상당히 활력이 넘치는 것은 이런 시스템에 기인하는 것이리라.
이 정도에서 아쉬움을 접고 돌아와 마르세유 도심 일대를 다시 둘러보고자 했다.
먼저 파니에지구다. 과거의 슬럼 지역 일대를 그래피티로 도시환경을 바꾸고 여기에 새롭게 타투, 미술가들이 자리잡으면서 도시재생이 실제하는 곳이다. 낮시간이어서 그런지 환경은 깨끗했고 주민보다 관광객들이 주로 목격될 뿐이다.
거기서 그대로 직진해서 넘어오면 대성당, 생진요새 fort Saint-Jean, 그리고 유럽지중해문명미술관 MuCEM이 있다. 이들은 2인이 교행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공중철교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인근에 장 누벨 Jean neouvel 이 설계한 135미터 라 마르세이라이즈 (La Marseillaise)라는 건물이 2018년에 준공되어 사용되고 있다. 또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다는 CMA CGM 건물이 상업지구에 들어서 있다. 하지만 건축 문외한의 눈으로는 건축물과 건축가가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은 르꼬르뷔제가 설계한 세계 최초의 공동주택이다. 1947 ~ 1952년에 이루어졌으니 60년이 지난 건축물인데 적어도 외견상 안전진단에 전혀 문제가 없는 듯하다. 필로티 형식, 직사각형 벽면 등 그의 설계 전형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허겁지겁 하루를 마치고 또 이제 귀국까지 앞두고 보니 허전한 마음이 앞선다. 소확행 만찬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호텔에서 해산물 식당을 소개해 주었다. 일단 입구에서 해산물 세트(새우, 고동, 굴, 홍합등)를 고르면 식당안으로 배달을 해주고 회처럼 먹을 수 있게 하는 식당이다. 여기에 화이트와인 한 잔이 더해지니 소확행 만찬으로는 충분하다 싶다. 이제 숙소로 가서 짐 싸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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