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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시간 도쿄 나리타공항에 내려 스카이라이너를 이용해서 우에노에 도착한다. 참고로 KKday 앱을 이용하면 스카이라이너 왕복, 72시간 메트로 이용권을 합쳐 저가에 구입할 수 있다. 호텔은 우에노 아메요코시장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데, 아메요코시장은 지상철 하부공간에 형성된 위락, 쇼핑 중심의 전통시장이다.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듯하다. 하지만 이곳 시장에서 거칠은 품질의 패딩이 50만원할 정도로 물가는 터무니없다.
우에노를 숙박지로 잡은 이유는 나리타에서 접근도 용이하지만 우에노공원내 많은 문화시설이 입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박물관, 국립서양박물관, 도쿄도립미술관, 일본예술대학 미술관, 우에노 모리미술관 등. 그리고 뜬금없이 동물원도 있다: 우에노동물원. 그러나 낯설은 현상은 아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등 커다란 미술관이 있는 곳에 동물원도 함께 있다.
그런데 우에노공원에 많은 문화예술시설이 자리잡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일본의 음양오행설이라고 할 수 있는 온묘도사상에는 북동방향이 길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곳에 절을 짓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에노 지역에 절이 지어졌으며 1924년에 천황이 이 영지를 도쿄시에 하사하여 설치되었다. 그래서 공원의 공식 명칭은 우에노은사공원(上野恩賜公園)으로 "천황이 선물한 우에노의 공원"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세계만국박람회 참가를 계기 삼아 국내박람회가 개최되었고 박물관 같은 문화시설이 들어선 것이다.
일본이 만국박람회에 공식적으로 참가한 첫 박람회는 1873년 빈 만국박람회이다. 하지만 일본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855년부터 1900년까지 11년마다 한 번씩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였다. 만국박람회를 통해 일본을 알린 것은 주로 칠기 도자기와 우키요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키요에는 일본의 풍속을 담은 채색 목판화라고 할 수 있는데, 도자기 포장지로 사용되다 우연히 알려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고흐도 모작을 그릴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우키요에의 대표적인 작가는 <후지산 36경> 시리즈로 유명한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齊)이다.
참고로 근대적 의미에서 최초 엑스포는 1851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가 꼽힌다. 엑스포는 인류 문명 발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는데 1889년 파리 엑스포를 위해 건설된 에펠탑을 비롯해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를 통해 소개된 벨의 전화가 유명하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한국이 본격적으로 참여한 박람회였다.
점심 식사 후에는 72시간 지하철 이용권으로 신주쿠 도쿄도청에 도착해서 옛 기억을 더듬어 2층 간행물코너를 찾았다. 하지만 구입하고자 했던 도쿄의 산업관련 통계집이나 자료집은 발견치 못하고 전망대 구경만 한다. 많은 건물 중에 고치모양의 건물이 단연 눈에 띈다. 패션 전문의 모드학원 코쿤건물이라고 하는데, 건축가 단게 겐조(丹下健三, 1913-2005)의 설계회사에서 설계하였다고 한다.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런던의 거킨빌딩(Gherkin Building), 장 누벨이 설계한 바르셀로나의 아그바빌딩과 많이 닮았다. 겨울이라 하루가 짧기만 하다.
2.
긴자의 G six(긴자식스)를 찾았다. 과거 관동대지진 이후 긴자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들어섰던 백화점건물을 새롭게 복합상가몰로 재탄생시켰다.
내부는 화려하다. 이 건물의 6층에 인문학과 문화예술 중심의 큰 츠타야서점이 있는데 작정을 하고 넉넉하게 둘러본다. 줄이고 줄여서 8권의 책을 구입했다. 하여튼 책 욕심은...
그리곤 오다이바로 이동했다. 여전했지만 오래된 흔적이 느껴지고 활력도 떨어지는 듯하다. 다만 과거 미완성 상태의 공원이 제법 자리를 잡았다.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린 곳은 공원내의 거대한 로보트모형 앞이다. 중국 관광객이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3.
오전에 넉넉하게 쉬고 오후에 인근 우에노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르꼬르비제 설계 건물로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국립서양박물관, 르네상스양식과 일본식이 절충된 국립박물관은 여전하다. 도쿄 예술대학 미술관도 찾아보았지만 늦은 시간이라 외관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도쿄예술대학 미술관은 꼭 가보고 싶었던 미술관 중 하나이다.
일본 정부가 만든 첫 미술학교는 고부(工部)대학 미술학교이다. 초대 공부장관이 이토 히로부미였고 그 때 이 학교가 설립된다. 이 학교는 주로 서양미술을 철저하게 학습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국가에서 만든 두 번째 미술학교는 도쿄 미술학교인데, 보다 일본적인 것에 집중했다. 1887년에 이 학교를 만든 이가 어니스트 페놀로사와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이다. 오카쿠라 덴신은 일본미술원을 만든 장본인이다. 1896년 서양화부가 만들어지고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 등의 유학파를 중심으로 교수진이 형성된다. 이 학교는 1949년 도쿄 음악대학과 합병된 뒤 도쿄 예술대학이 된다.
호수 불인지(不忍池)도 산책한다.
4.
출국을 앞두고 시간 여유가 있어 황궁과 마루노우치를 찾았다. 많은 현대 오피스건물사이에 전통건물을 잘 보존하고 조화로운 설계를 통해 안정적인 모습을 여전히 연출하고 있었다. 과연 한옥과 현대 오피스건물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보존된 전통건물을 주로 미술관으로 활용하고
거리 곳곳에 조각품이 설치되어 있다. 언제든 이곳에 오면 이들이 부러웠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을 우에노공원에 있는 도쿄도립미술관에서 보낸다. 입구에 ' the Future is Art'라는 글귀가 반긴다. Vilhelm Hammershoi(1864-1916) and Danish painting of the 19th century exhibition.
수 년 전에 국립서양미술관에서 그를 처음 접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그의 작품을 이렇게 한꺼번 감상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이코모스 회원권을 꺼내들었더니 잘 모르는 눈치라 기꺼이 돈을 지불하였다.
설명에 의하면 19세기 덴마크 미술을 3가지 시기로 나눌 수 있단다.
먼저 Skagen파 시대이다. 북부 바닷가 Skagen 지역을 중심으로 거친 대지에 나가 삶의 현장과 역동성을 힘있게 담아낸다. 몇몇 어부가 힘을 합해 어선을 해변가로 끌어내는 그림들이다. Oscar Bjorck (1860 -1929)이 대표적이다.
다음이 19세기말 국제화와 실내화 융성시기이다. Johan Rohde, Viggo Johansen, Carl Holsoe가 대표적 화가이다.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무심하게 감정이 퇴색된 형태로 인물이 없는 실내나 인물을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Vilhelm Hammershoi(1864-1916) 시기에 이르면 아예 뒷 모습이나 표정없는 자화상에 집중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수도와 정숙의 가운데에서" "계절이 없다. 다만 멜란콜라만 있는데 먼 과거 다른 영역이다" 라고 평가받고 있다. 1시간여의 짧은 시간이어서 아쉬움이 많지만 그와의 만남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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