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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반 비행기편으로 마드리드로 돌아온다. 그러니 잠도, 속을 채우는 것도 부족하다. 그래도 영어공포증에서 반쯤 해방된 느낌이어서 편안하다. 도대체 스페인영어는 말도 빠르고 특유의 억양으로 알아듣기 어렵다.
예약한 한국인 민박을 쉽게 바로 찾을 수 있어서 오전 시간이 한가해졌다. 여하튼 지금부터는 온전히 내가 해결사이다.
바로 소피아왕비예술센터로 정했다 . 토요일 오전 9시경에 Retiro공원을 가로질러 오는데 온통 개와 사람이다. 그것도 목줄 매지 않은 대형견과 조깅하는 사람들. 우리의 이름으로 소피아 왕비 예술 센터인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는 게르니카를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오늘 10월 12일은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날짜로 공휴일이면서 입장료가 무료이다.
2층에 전시중인 게르니카 앞에서는 역시 숙연해진다. 고백컨데 지금까지 흑백의 작품인 줄도 몰랐고 이 정도의 대작인 줄도 몰랐다. 그런 문외한에게도 감동적이다.
피카소, 달리의 많은 작품외에 Messon, 흑백의 거친 선의 Saura, 마치 돌, 철판 오브제 효과를 연출하는 Tapies, 그리고 Feito는 흑백의 덧칠로 강렬함으로 구성한다. Dali의 뒷 모습 정물화, Mark Rothko, Motherwell의 추상과 표현주의 미술을 감상할 수 있고 의외로 그래피티 작품도 다수이다. 미술관 전면을 장식하는 Aberto의 설치 작품, 마르요카 미술관에 설치되어 있던 Oteiza의 철 설치 작품도 좋다.
중간중간 의자에 앉아 졸음을 씻어가며 완주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3시간 동안은 사망했었다.
겨우 눈을 뜨니 6시. 그래도 마드리드의 명동, 솔 광장은 둘러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틀어진 신발 때문에 신발 새로 하나 사고, 찢어진 허리띠 때문에 허리띠도 새로 하나 산다.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에 들어간 식당의 음식에 크게 만족하며 오늘 편안하게 즐기기로 한다. 곁들인 글라스 와인명이 '마드리드'. 쉬라 등의 블렌딩 와인인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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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개관한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을 찾는다. 3층은 르네상스 이전부터 르네상스, 2층은 네덜란드 화파와 인상파 그리고 1층은 20세기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고전주의 작가 작품 앞에서 나아가기가 싶지 않다.
엘그레코, 내가 좋아하는 밝고 건강한 베네치아 화파의 카날레토를 충분히 감상하고, Conrad Felixmuller, 바실리 칸딘스키의 유화, 샤갈, 그리고 Edward Hopper, 마크 로스코, 자코메티, 리차드 에스터스, 리히텐스타인까지 감상에 젖는다. 플래시없는 촬영은 제한이 없다니 이게 행복이 아니겠는가.
민박집에서 싸준 김밥으로 요기하고 욕심을 부려 왕립 산 페르난도 미술 아카데미 Real Academia de Bellas Artes de San Fernando로 달려간다. 그런데 오후 3시에 문을 닫는단다. 현재 2시15분. 그래도 돌진했다. 그런데 이코모스 회원은 공짜라니 망설일게 무엇이 있겠는가.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 고야 <정어리의 매장>, 지오바니 벨리니 <the saviour>,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하느님의 어린 양>, 주세페 아킴볼도의 <봄> 등을 스치듯 볼 수 밖에 없었으나, 그러나 감동은 챙긴다. 특이한 것은 초창기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도시계획도도 전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몇 장 찍어왔다.
3시까지 채우고서 솔 광장, 마르요 광장을 어슬렁거리다 플라멩코 공연티켓 매장을 찾았다. 42유로에 음료 1잔 서비스. 대개 9시부터 공연인데 6시에 공연이 있다기에 선뜻 예약했다. 솔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페루, 베네수엘라 등 외국 음식점이 밀집한 지역이 있고 그 가운데에 Cardamomo 공연장이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5시부터 7시30분까지 식당준비시간이라 요기할 수 있는 식당이 없어 주린 배를 앉고 관람할 수 밖에 없었다.
공연은 감동적이다. 기타2 드럼1 싱어2 이 오케스트라처럼 앉아서 음악을 연주하고 그 음악에 댄서들이 돌아가며 춤을 춘다. 탭댄스처럼 신발 뒷축과 바닥으로 강약과 리듬을 조절하는데 환상적이다. 누가 플라맹코를 여자춤이라 했던가. 단연코 남자댄서의 탁월한 춤솜씨와 강렬한 무대매너에 반했다. 올레~
이제 리스본에서의 파두 특히 코임브라 파두 공연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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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비행기로 가는 리스본행을 결정했다. 저가 아침비행기, 아파트, 택시까지 예약하고 공항에 도착한다.
가방무게를 재더니 60유로를 추가로 내야 된단다. 탑승시 EU국가 국민은 따로 줄서고 먼저, 여타국가 국민은 마지막으로 탑승한다. 스페인에서 EU내로 이동할 때는 일반적으로 겪게 되는 현상이다
1시간여 비행끝에 리스본에 도착하고 알파마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푼다. 그리고 동네 구경에 나섰다.
알파마지구는 Borough of Santa Maria Maior와 사진작가 Camilla Watson의 공동 프로젝트로 현재의 모습을 갖춘 도시재생사업지구이다. 주민의 일상생활-과거와 현재와 지역의 역사-이 그 안에 녹아 있다. 파두공연식당, 기념품가게 등이 주로 자리잡고 있지만 주민들의 빨래가 여전히 휘날리고 있다. 정어리 Sardin를 굽는 노천카페를 지나칠 수 없어 일단 주문에 들어간다. 강한 단 맛에 도수 높은 포르투와인이 목 넘김을 좋게 하더니, 성격이 지랄맞아 보이는 노인이 굽어주는 정어리로 다독여 주니 묘한 앙상불이다.
파두는 fate에서 유래되었고 그리움으로 표현되는 Saudade가 서려 있는 음악이다. 우리의 판소리나 정선아리랑을 연상케 해서 마음을 끈다.
저녁 7시를 넘겨 숙소에서 소개한 조그만 파두 공연식당 A Bauica를 찾았다. 식당입구에서 브라질에서 왔다는 건장한 체구의 중년남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곳도 젠트리피케이션 양상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런데 나중에 공연때 보니 그가 기타리스트여서 깜짝 놀랐다.
좁은 식당 안에서 기타 3대가 울려퍼지고, 가수가 노래에 혼을 담아낸다. 때로 기타리스트가 가수가 되어 노래하고, 주인과 주방할머니가 노래를 거들고 나서기도 한다. 감동적이다. 암스테르담에서 왔다는 옆 좌석의 젊은 여성 둘은 신혼여행 중이란다. 저녁식사비를 대신 내어 주면서 신혼여행을 축하해 주었다.
4.
늦잠을 자고 아침은 배달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오후 즈음에 나왔다. 주중인데도 거리에는 관광객이 넘친다. 카테드랄(대성당)앞에서 언덕길을 다니는 28번트램을 기다리는데, 올 때마다 만원이다. 포기하고 도심을 거쳐 바닷가의 코메르시우광장까지 걸어내려갔다.
거기에서 20유로로 운행하는 관광용트램에 오른다. 이어폰을 앞좌석에 붙은 잭에 연결하면 설명이 제공되는데 한국어로 안내하는 채널은 없다. 트램길을 자동차와 공유하고 길도 좁다보니 잼이 발생하고 서로 대치하기도 한다. 그것도 관광객들은 재미있는가 보다.
한바퀴 더 돌아 산타루지아 전망대에서 내려 알파마 일대를 조망하고 아쉬운 하루를 접는다.
'Smile You are in Lisbon.' 어느 식당 앞에 놓인 간판에서 본 글이다. 저녁에는 생선찜과 탕 형태의 생선카타플라나 Cataplana를 알게 되는 즐거움이 있었다.
내일 이 곳을 떠나지만 좋은 숙소는 이름을 기억해놓는 것이 좋겠다. 레지던스 개념의 Lisbon Best Choice Apart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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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서 스페인 남부도시로 가는 비행기편이 거의 없다. 그래서 예약한 비행편이 7시 45분에 말라가로 가는 프로펠러비행기. 30년전 강릉에서 서울로 갈때 이용해 본 적이 있는 비행기. 그래도 자동차로 8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1시간 반만에 주파했다. 치즈, 과일 몇 조각과 커피도 제공한다.
커피에 프림을 2개나 줘서 의아해 했는데, 한 개만 넣었더니 담배가루 마시는 기분이다.
말라가에서 도착한 아파트는 별도 사무실을 두고 3곳의 아파트를 운영하는 곳이다. 제대로 된 서비스 받기 쉽지 않겠다 싶다. 하지만 로마시대의 노천극장이 그대로 남아 있는 유적지 주변이어서 도보로 둘러보기 유리한 입지이긴 하다.
말라가에서는 무엇보다 피카소미술관이다. 말라가가 피카소의 출생지이기 때문이다. 소장전과 칼도-피카소 기획전을 함께 볼 수 있다. 1881년생인 피카소의 초창기 작품들은 특징없는 그림에 불과했지만 1917에서 1924년까지 이탈리아를 여행했던 것과 Olga를 만났던 것이 그림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초현실주의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디어를 많이 수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번에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칼도와 피카소의 기획전은 두 작가가 이렇게 유사한 작품의 지향점을 가지는지 보여주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capturing the void, the void and the volume을 통해 '채우면 주변은 사라진다'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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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도시를 하나씩 본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여기서도 욕심이 앞서서는 되질 않는다는 것을 실감한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 어지러움증이 도지니 먹는 일도, 도시를 둘러 보는 일도 뒷전이다. 그래서 그라나다, 코르도바를 포기하고 세비야Sevilla로 가서 이틀을 보내고 귀국길에 오르기로 변경했다.
과달키비르 강 어귀에 있는 내륙항구도시인 세비야는, 이교도들이 스페인을 지배했을때 서고트의 수도였고 지금도 안달루시아 제1의 도시이다. 712년 무슬림 수중에 들어간 이후 국토회복이 되고 나서는 기독교 중심적인 복원이 진행되었지만 세비야에서는 이슬람과 어우러진 복원이 이루어졌다는 평가이다.
ALSA를 이용하여 세비야에 도착하고 걸어서 호텔에 도착하고는 몸살 기운때문인지 그냥 침대에서 꼼짝 못하고 잠에 취했다. 룸서비스 식사로 겨우 기운을 회복한다.
산책을 겸해 호텔 바로 뒷편 Central Commercial Torre Sevilla를 찾았다. 4층 정도의 건물이며 옥상 녹화가 눈에 띄지만 개방하지는 않는단다. 4,5년 전에 영업을 시작했다는데 성황인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전반적 세비야의 저력이 느껴진다.
세비야 여학생의 도움으로 콜택시를 불러서 카데드랄과 히랄다탑으로 간다. 멀리서 인증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하고 상점가, 특징적인 수목 식재를 둘러본다. 잘 알지도 모르는 작품 전시회도 기웃거려 보다가 Seleka Munoz 작가의 추상화에 마음이 끌렸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명성 있는 작가이다. 카탈루니아에서는 폭력적인 집회가 계속된다는 실시간중계가 있지만 여기 안달루시아는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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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호텔에서 내려다 본 시내 풍경은 온통 흰색과 주황색이다. 벽을 제외하고 옥상마저도 모두 주황색으로 칠해 조화를 이룬다. 세비야 최고의 플라맹코 공연장 Los Gallos 예약을 하고, 천천히 출발한다.
도보로 가능한 세비야미술관. Fedro Millan의 사실적 표현, 시대적인 표현-로마병사의 복장이 이슬람 병사의 복장으로, 목각 종교화 등을 감상하다 cloister형 중정에 잠시 쉰다. 4개의 중정이 있는데 조경이 다 다르다. 귀국을 앞두고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는 감상을 이어간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어떤 표정이었을까. Zubaran은 고개를 숙이고 Murillo는 절규하듯이... 작가의 다양한 표현이 재미있다. Bilbao는 도시 이름이기도 하지만 작가로서도 존재하고 그의 색감이 좋다.
시내투어버스를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어떤 곳은 인증샷, 어떤 곳은 관심을 가지고 본다. 스페인광장은 인증샷, 콰달키비르강 주변의 수변관리에 관심을 가져 본다. 강 접근이 용이하도록 다양한 경사로형태의 시설물을 배치하고 강변을 이용용도별로 구분 관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부 강변은 찻집과 레스토랑으로 이용한다.
저녁에는 예약한 플라맹코 공연을 즐긴다. 가장 앞좌석을 배정받아 공연자 표정 하나하나 볼 수 있어서 감동이 컸다. 오늘의 주인공은 단연 중년 여성춤꾼. 그녀의 절도있는 춤사위에다 이마에 그리고 가슴에 번지는 땀의 열정에 매혹당했다. 사진 한 장을 남기려 기다렸는데 볼 수 없었다. 마지막은 이렇게 접고 내일 아침부터는 귀국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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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택시를 불러달라고 요청해서 역에 도착하다 보니 많은 시간이 남았다. 출발시간 30분을 남겨 놓고 개찰을 시작해서 의아하게 생각했더니 고속철도를 타는데도 화물 및 몸 검색을 한다.
Renfe의 좌석 간격은 여유롭다. 승차감과 소음이 우리보다 월등 낫다는 생각이다. 2시간 반을 달려 마드리드에 도착한다. 다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그리고 이스탄불을 거쳐 서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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