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길다 2회
일시: 2008. 6. 13 - 15
장소: 김천
6/13
서울역에서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3시간 가량 짧지 않은 시간을 가면서 상념에 젖는다. 여유있게, 느리게, 그리고 일상을 잊고 지내자고 다짐한다.
직지사 인근 숙소로 이동하여 쉬다가 청산고을에서 한정식으로 식사한다.
예나 다름없이 음식맛이 진솔하다
저녁시간이 늦어 직지사 야간 산책은 단념하고 인근 공원에서 분수공연을 본다. 예술의 전당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인구 14만의 도시에 이런 시설이 설치되었다는 것이 대견하다. 다만 지역주민이 아닌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시설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6/14
느지막하게 일어나 청암사를 찾아 떠난다.
지례 - 증산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구성면에서는 양파 수확이 한창이다. 부항다목적댐 현장도 보인다. 최근 댐공사로 인한 보상비로 주민들 과잉소비가 구설수에 올랐던 바로 그곳이다.
증산은 계곡이 좋아서 관광객 차림과 캠핑차림의 학생들도 보인다. 5명 정도 일단의 여중생들이 버스를 탔다. 큰링귀거리, 화장한 얼굴, 옷차림이 예사롭지 않다. 1시간남짓동안 계속 어딘가에서 걸려 오는 전화, 기세등등한 끼리의 대화는 둔탁한 시골버스 소리에도 묻혀지지 않았다. 결국 운전사가 한마디했다. “왜 이렇게 시끄럽냐? 저 뒤에 있는 남학생들도 조용한데.. 학교에서 이정도도 배우지 않냐?”고. 그랬더니 일제히 “예”라고 응수한다. 움찔하는 기색도, 미안해하는 표정도 전혀 없다.
승용차로는 청암사 입구까지 갈 수 있지만 버스정류소에서는 입구까지 1.6km나 걸어가야 한다. 햇빛이 강했지만 걷기 시작했다. 그때 할머니가 탄 스쿠터 한 대가 지나간다. 1인용으로 우습게 생겼지만 우습지 않다. 순식간에 이미 저 만큼가고 있다.
청암사입구에서 청암사일주문까지 500m정도되는데 짙은 녹음과 얕은 계곡이 어울어져 정겹다. 여느 관광지와 달이 토요일 오후시간에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적한 산사가 정겹다
일주문을 지나서도 다시 짧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제법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길가의 나무벤치에서 잠시 쉬어간다. 산바람이 금새 땀을 식힌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쏘이면서 승용차로 달려왔으면 느낄 수도 없었던 시원한 산바람이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섰다. 그러나 독경소리를 듣지 못했다.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사찰이어서 녹음테이프가 아닌 비구니들의 낭낭한 염불소리를 들 수 있는 절이어서 이곳으로 방향을 정했는데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자태는 단아했다. 계곡 용소에서는 소용돌이가 일고 조그마한 폭포에서는 소란스러운 탁음이 전해졌고 이름모를 새소리가 더해졌지만 배경에 불과했다. 눈과 귀에 가득 담고 온다.
선방에서 비구니 몇 분들이 경내로 걸어 나왔다. 수행중 잠시 휴식을 위해 선방을 벗어나는 것 같다. 그러나 비구니를 바라보는 내 눈에는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런 산문에 들어왔을까 라는 궁금증이 먼저 떠올랐다. 역시 범인의 눈은 세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청암사 에는 비구니가 수행하느니 만큼 경내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특히 계곡을 가로지르는 작은 철교가 있었는데 철교바닥을 목재로 처리하고 있어 차가워 보이지 않았다. 또 나무로 된 난간을 설치하여 계곡과 보행공간을 분리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려오면서는 염소불고기 집을 찾았다. 22,000원으로 풍성한 점심을 먹었는데, 탕이 짙어 진국이었다. 역시 시골이어서 야채 인심이 풍성하고 향도 진하다. 곰치나물 제대로 먹어봤다.
돌아가는 버스시간을 음식점 주인에게 물어봤다. 버스시간을 모른단다. 자가용을 이용하기 때문에 하루에 네다섯번 운행하는 버스시간을 모른다는 것이다. 전화를 돌려 수소문하더니 1시간뒤쯤 버스가 온다는 것이다. 무작정 내려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무작정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중학생쯤 여학생 한무리가 또 다가왔다. 밀짚모자도 썼고 돗자리를 들고 있었지만 화장을 하지 않았고 귀거리도 하지 않은 것이 전번 그 학생들과 달랐다. 목소리도 한 톤 낮았다. 역시 말은 거칠다. “존나 웃긴다”
6/15
직지사를 찾았다. 일주문에 이르는 길이 역시 흙길이고 짙은 녹음이어서 마음이 편안하다. 대웅전에 앞에 있는 삼층석탑은 단순기단으로 기단이 높고 장식이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직지사 매표소 근처의 찻집은 자동방충망이 설치된 것이 특징이고 아름드리 소나무밑에서 차를 마실 수 있는 까페식이여서 차맛이 더 난다.
그러고 보니 2박3일동안 절만 찾았던 것 같다. 바쁘지 않아 좋았다. 김천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러 김천시청 앞 싱글벙글이라는 복집을 찾았다. 종업원이 불위에 복매운탕그릇을 올려 놓고 나가더니 다시 그릇을 반듯하게 놓는다. 밖에서 보니까 잘못 놓여져 있더라는 것이다. 시계나 그림이 제대로 걸려있는지를 알려면 조금 떨어져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는 것이 진리임에 틀림없다.
'길에서 길을 묻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에서 길을 묻다 6: 충주 (0) | 2010.03.14 |
---|---|
길에서 길을 묻다 5: 담양 (0) | 2009.07.04 |
길에서 길을 묻다 4: 청주gwellcity (0) | 2009.02.26 |
길에서 길을 묻다 3: 변산반도와 내소사 (0) | 2008.10.28 |
길에서 길을 묻다 1: 태안과 진안 (0) | 2008.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