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6일(금)
오래 전에 백담사 템플스테이 체험형을 신청하였다. 2박3일에 20만원이라는 적지 않는 돈이 들기는 하지만, 내 자신도 둘러보고 생채기 난 마음도 다져보고자 떠나보기로 했다.
오전 12시. 점심이 애매했지만 동서울터미널에서 속초·백담사행 시외버스에 오른다. 여름 휴가철이라 사람이 많기도 하지만 서울의 관문으로서 동서울터미널은 시설 개보수와 종사자의 친절 개선이 정말 시급해 보인다. 시외버스는 경춘고속도로를 거쳐 인제·원통을 경유하여 2시간 30분 만에 백담사 입구에 도착했다. 이틀 뒤의 돌아가는 차표를 미리 예매하려고 했더니 속초에서 출발하는 버스에서 남는 자리 수가 확인되어야 구매할 수 있다면서 예약은 어렵다고 한다. 지극히 불편한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맞는 말 같기도 한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인근 식당에서 황태해장국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백담사행 버스매표소로 향한다. 마을향토기업이 운영하는 25인승 버스가 수시로 백담사를 오고가는데, 불과 15분 거리이지만 요금은 편도 2300원이다. 차 한 대가 오고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무선 교신을 해가면서 곡예 하듯이 다니는데 다른 일체의 차량을 제한하고 있어 오히려 이편이 낫다 싶다.
절 입구에 도착했는데 아무런 안내도 못 받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만해연수관이라는 진행장소에 도착했다. 이번 기수는 36명.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다. 진불화 법명의 프로그램 운영자가 살갑게 대해준다. 개인 귀중품과 휴대폰을 거두는데 나중에 번거러울 것 같아 나는 휴대폰을 꺼놓은 상태로 지내기로 했다. 이어 108배의 효용, 백담사 안내 동영상을 시청하고 이른 저녁공양까지 마치고 자기 소개시간을 갖는다. 각자의 다양한 신청사연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자신에게 철저하고 최선을 다해왔기에 이제는 내려놓고 싶다는 ‘베짱이’예명이 기억난다. 충북 단양에서 초등학교 교사인 이 분은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도 같은 버스를 이용하게 되어 짧은 이야기를 더 나누었었다.
그리고는 주지스님의 설득력 있는 강의가 인상 깊었던 108배 절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108배하는 동안에 속이 메스껍고 현기증도 나면서 중도에 그만 두기에 이르렀다. 이 몹쓸 건강으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구나 싶어 참 한심한 기분이다. 10시에 메스꺼운 속을 참으며 잠을 청한다. 무엇을 내려놓고 갈지, 아니면 무언가를 새로이 얻어 갈지 내일이 기대된다.
9월 17일(토)
새벽 5시에 기상하여 108배 돌입하였다. 속이 어지간히 메스꺼웠지만 오늘은 꾹 참고 해보기로 했다. 결국은 해냈지만 오전 내내 그 메스꺼움이 가셔지지 않는다. 6시 아침공양을 마치고 오전 프로그램으로 2인1조가 되어 교대로 한사람은 눈을 가린 채 다른 한 사람의 안내를 받아 경내를 벗어나 계곡을 향한다. 동료를 믿고 가는 길이라 힘들지 않다. 계곡에서는 돌탑 쌓기도 하고 바위에서 참선을 하는 등의 시간을 갖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경내로 돌아온다. 점심공양을 하고 잠시 경내를 둘러보는데 등산복차림의 등산객 일행이 아는 체를 한다. 대략 11학번으로 기억하는 김순금 학우 등 4명의 졸업생이다. 수련복을 입고 있어 얼른 알아보기 힘들었을 텐데 용케 알아보았다. 마치 군대에 있을 때 면회와준 사람 마냥 반갑다. 가벼운 덕담도 나누고 기념사진도 찍고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점심시간에는 미국 Connecticut에서 온 고3여학생과 함께 짧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소개시간에 진로에 고민이 많은 고3이라고 소개했던 기억이 나서 마음이 더 갔다.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재미교포인데, 자신은 미술을 가장 하고 싶은데 그 외에도 역사, 문학, 음악 등 더 많은 욕심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고 했다. 욕심이니까 가장 하고 싶은 것부터 차분히 시작해보라고 도움말을 주긴 했지만 얼마만큼 도움이 되었을지 알 길은 없다.
저녁시간이후에는 여섯 사람이 하나 조를 구성해서 그 조의 조원들이 지명당한 한 사람에게 칭찬을 하고 삼배를 하고 안아주는 힐링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들 가상의 자기 자신에게 삼배를 올린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마음으로 외치면서... 가슴이 뭉클하다. 그래 참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돌아보니 혼자이구나 싶다. 2박3일 템플스테이 시차에 적용하느라 애를 먹고 있지만 나의 인생에 있어서 여전히 큰 시차가 있었던 것 아닐까.
9월 18일(일)
어느덧 회향 아침. 역시 아침 108배를 마치니 가벼운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다. 차훈명상이라 하여 뜨거운 물로 발효차인 오룡차를 만들어 얼굴에 쏘이면서 명상을 하는 프로그램이 다. 오룡차와 보이차가 발효차라서 녹차가 몸에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를 수 있다는 귀한 정보도 얻는다. 피부에 좋기 까지 하다니 여자들의 관심이 높은 것 같다. 그리고는 시심즉불이라 하여 시로서 간단한 소회를 적는 시간을 마치고 헤어짐의 아쉬움을 참석자 전원이 허그하는 것으로 전하면서 막을 내린다. 이윽고 점심공양 후 각자의 길로 떠났다. 주로 서울로 오는 분들이 많아 버스승강장에서 다들 만났고 몇몇 분들은 동서울터미널까지 함께 하고 헤어졌다. 연휴 마지막 날이라 돌아오는 시간이 차량이 많이 밀렸다. 버스는 우회로를 많이 활용하여 그래도 많은 시간을 단축하여 도착할 수 있었다. 그동안 닫아 놓았던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쿰쿰한 냄새가 진동한다.
문득 드는 생각. 또 다른 삶의 시차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란 버리는 걸까? 찾아야 하는 것일까? 찾아지기나 할 수 있는 것일까?
견우
첫 닭이 울기 전 이른 시간
온 몸을 땀으로 적시는 108배.
온통 땀으로 뒤범벅되어 갈구하여도
한곳으로 마음을 모아 코끝을 내려 보고
바람소리에 귀 기울여도
여전히 잡념가닥을 안고 있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덕목에 집착해서
치열하게 살아 온, 이 나이까지의 삶.
돌아보니 혼자였고
마음 한 구석은 늘 비어 있었다.
오십 중반에도
이순, 지천명은 어디가고
아직 때늦은 번민과 회한으로
언제쯤 삶의 시차에 적응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머물러야
얼마나 마음자락을 다잡아야
견우(見牛)라도 할 수 있을 런지.
다시 이른 회향에 나선다.
절해고도의 도시로...
소망의 돌탑쌓기를 마치고 도반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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