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트남은 인구 91백만명의 큰 국가에 속하며 수도는 하노이이다. 오후 6시 호치민에 도착하는 그날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어두웠다. 우연찮게 난생 처음으로 혼자 찾는 베트남. 설렘을 안고 그 흔한 입국신고서도 없이 입국수속을 받는다. 없는 것은 또 있다. 내국인과 외국인 구분도 없다. 외교관을 제외하고 'all passport'만 있다. 얼마나 머물거냐, 홍콩으로 다시 가느냐 등을 질문하더니 통과란다. 140달러까지 환전하고 드디어 출구를 나섰다. 출구 앞을 가득 채운 마중객은 그냥 건물 바깥이어서 더위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었다.
오늘 묵게 될 호텔 팻말이 보여서 다가가 무료리무진이냐 했더니 아니라며 오히려 택시를 권한다. 인터넷 검색 결과를 믿고 가장 왼편으로 끝없이 갔더니 그린색상의 mailinh택시와 vinasun택시가 보인다.
호텔명을 이야기 했더니 그 어려운 차량과 오토바이 사이를 뚫고 도착한 게 6시30분. 요금은 115천동. 기대보다 적었다. 체크인 후 내일 개인관광 안내를 문의했더니, 8시간 영어안내는 78달러, 차량에다 점심값까지 포함하면 135달러란다. So expensive..
저녁식사 겸 인근지역 답사를 위해 주변을 둘러 본다. 보도는 계속 발이 걸릴 정도로 들쭉날쭉이다. 멀리 갈 수 없어서 인근 저렴하게 보이는 부페를 찾았다. 부가가치세를 포함하여 164천동에다 32천동 사이공맥주까지 주문했더니 모두 20만동(한화 1만원)이다. 이미 저녁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남은 음식도 얼마 없었고 음식은 식어 있었다. 지배인인 듯한 친구가 닭고기 찜에 전 같은 음식을 가져다 주긴 했지만 그냥 수업료냈다가 생각하기로 했다.
2.
천천히 조찬을 마치고 지도 한 장에 의지한 채 시청 방향으로 향한다. 신한은행, 금호아시아나도 보인다. 처음 도착한 곳이 노틀담성당. 화려하지 않고 간소하면서도 성스러운 성당이다. 주변에는 사진을 찍는 신랑신부가 많다. 바로 옆에 우체국 건물이 보인다. 여전히 우체국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한켠에서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기념품 가게, 여행사가 들어서 있다. 금호아시아나 건물 옆에 하드락카페가 있고 저녁 7시부터 공연이 있다는 정보를 여기서 얻는다. 사이공오페라하우스에서도 6시에 라이브공연이 있는데 1시간 공연에 최고 125만동, 창가 측면은 63만동 정보도 얻게 되었는데 저녁시간에 고민을 해야 할 듯하다.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일본자본과 함께하는 호치민지하철공사가 한창이고 인민대회의장앞을 지나면 벤탄시장에 이른다. 그동안 무려 3사람의 오토바이맨이 다가와서 시내관광을 시켜주겠단다. 한사코 거절했는데 결국 마지막 오토바이맨이 몇 마디 더 거들더니 팁을 달란다. 약간의 긴장속에 물러설 수 없어서 '질문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팁이냐?' 본격 따지니까 배고파서 그런다고 꼬리를 내린다. 단호하게 '노'. 그가 사라졌다. 너무 야속했나? 그 이후에도 다가서는 오토바이와 인력거가 계속되었지만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
벤탄시장은 우리 남대문시장격이다. 살 물건도 없고 가격흥정에도 자신이 없어 대충 둘러만 보고 인근의 통일기념관으로 향한다. 과거 월남 대통령궁을 개조한 건물인데 우리도 흡수통일이 되면 어느 한쪽의 대통령궁은 이런 모습이 되겠지 싶다.
목도 마르고 시장기도 있었는데 때 마침 롯데리아가 보인다. 음료랑 치킨라이스가 44천동. 숙소와도 가까운 거리라 끼니때우기가 좋을 듯하다. 오는 도중에 무질서한 그 많은 오토바이들도 차도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감탄한다.
더위도 식힐 겸 수영장을 찾았는데 갑자기 광풍에 폭우다. 실외수영장이니 짐싸서 호텔방으로 직행. 오후를 다 죽이기는 그래서 전쟁박물관을 찾아 나섰다. 오토바이들이 하나같이 추천한 곳이다. 세련된 전시구성은 아니었지만 베트남전쟁 중의 참혹상이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숙연해진다.
그리고 Saigon Opera House를 찾았다. 가장 싼 표를 구매하고 공연 전에 인근 식당에서 식사, 그 인근 Parkson의 여행사에서 990천동으로 내일 메콩강 투어까지 예약했다. 6시부터 시작된 'A O Show'는 베트남의 역사와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수준높은 공연이었다. 주로 대나무로 만든 각종 소품과 기구를 가지고 기예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펼친다. 1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배우들과 기념 촬영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우체국건물 옆에서 책방골목을 발견했다. 서점과 북카페가 들어서 있고 자동차없는 거리가 만들어져 있다. 그런 중에 그 많은 오토바이들이 횡단보도에 걸치지 않는 모습를 보고 우리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론 쉴새없이 눌러 대는 경적소리, 탁한 공기, 전혀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교통상황을 보면 은퇴후보지로서는 결코 추천대상이 아니다.
3.
한밤중 두 번에 걸친 화재경보 때문에 잠을 설쳐 피곤하다. 당장의 전화에는 스모킹때문이라고 둘러댔지만 다음날 시스템 문제라고 인정했다. 메콩강 관광은 미니 버스에 10명의 관광객으로 시작했다. 왕복4차선의 1번 고속도로를 경유해 1시간 40분을 달려 70km떨어진 미토에 도착하고 메콩강가에 이른다. 균형을 잡도록 양쪽으로 균등배분해서 소형크루즈선에 앉히고 10분만에 어떤 섬에 도착했다. 허접한 로랼제리, 열대과일 시식을 마치고 다시 두 여인이 앞뒤로 나뉘어 온전히 팔의 힘만으로 나아가는 4인승 소형보트로 작은 수로를 통과하고 다시 코코넛캔디공장, 마차체험을 거쳐 식당에 이른다. 식당에서는 다양한 음식이 제공되지만 썩 입맛에 맞는 음식은 없다. 말이 힘들어 보여 탈 수도 없을 지경이고 캔디공장의 열악한 시설과 어린 직원들로 불편했고 장사속만 보여주는 주민들로 인해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열대과일 시식중에 곁들인 전통음악 연주가 기억에 남는다. 다시 호치민에 도착해서 마지막 자개기념품점 방문에는 다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분위기이다.
젓가락질을 잘 했던 젊은 서구계 커플, 과학자인데 서울대학과 공동연구를 한 적이 있다며 너스레를 떠는 미국인, 조용했던 중국계 두 부부.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4.
푸미흥 (phu my hung)이 여기 였구나! 서둘러 준비하여 출발. 택시를 타고 30분 정도에 140천동의 요금이 나왔다. 푸미흥은 대만계에서 개발했다는 신시가지인데 구시가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한글 간판도 제법 많이 보이고 CGV가 입점한 대규모상가도 보인다. 한국인 거리가 있다는데 확인하기 어렵다.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들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방3개는 월1000달러 이내이고 가장 작은 것은 700달러도 있단다. 관리비 일체가 월 100달러, 가사도우미를 쓸 경우 1주일에 3번, 한번에 2시간해서 월 80달러. 2달치가 보증금이고 2달치를 미리 내야하기 때문에 첫달에 4달치를 내야 하는 것까지 확인했다. 바로 인근에 퍼블릭골프장이 보였는데 그 비용을 물어보니 잘 모른단다. 땀을 뻘뻘 흘리며 신시가지를 돌았지만 보람있는 시간이다.
호치민에 배낭여행자들이 몰린다는 데탐거리로 왔다. 여행사가 많고 외국인들이 많이 보이는 것외 특별한 것은 없다. 검색결과에 의지해서 '포퀸'이라는 쌀국수집을 찾아 특별히 흥미로울 것 없는 맛을 보고, 그 힘으로 호치민미술관을 찾았다. 호치민의 국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컴컴한 조명으로 제대로 그림 감상도 되지도 않고, 아담한 노란 건물의 내부는 무척이나 낡아 있었다. 누구의 작품인지 그리고 언제 제작된 작품인지 소개도 미흡했고 아예 소개조차 없는 그림도 있다.
하지만 몇몇 작품은 시대의 아픔을 담고 있고 작가의 창작열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의 자개제작방식을 여기서는 lacquer방식이라고 하는데 특별히 많이 소개되어 있다. 게다가 방마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관람객을 감시하는 사람이 없고 사진도 플래시없이는 마음대로 찍을 수 있는 곳이어서 아쉬움을 달랜다.
호텔로 돌아온 시간이 1시반. 몸이 땀에 절어 있었다. 상황을 하소연했더니 4층 수영장에서 샤워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옷까지 갈아입고 나니 이제 호치민에서의 일정은 끝난 셈이다. 커피 한 잔를 주문해 마시며 출발 시간을 기다린다.
검소한 노틀담성당
우체국앞에서 졸업사진을 찍을 정도로 호치민들에게 친숙한 곳이다.
호치민 도심부에는 일본자본과 합동으로 진행하는 지하철공사가 한창이다.
인민회의장 앞에는 호치민 동상이 위치하고 있고 큰 광장이 자리잡고 있다.
보도가 이럴 정도를 도시의 기반시설은 형편없다.
우리의 남대문시장과 같은 벤탄시장. 어디든 시장은 활력이 넘친다.
월남시절의 대통령궁. 지금은 통일기념관으로 사용중이다.
통일기념관의 회의실 전경
전쟁박물관내에 전시된 베트남 소녀의 천진하지만 슬픔이 담긴 얼굴 사진.
사이공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보고 출연진과 함께
서점과 북카페로 이루어진 테마거리
야간에 그 많은 오토바이들이 횡단보도를 침범하지 않는 모습에 우리 현실이 부끄러웠다
메콩강
메콩강의 여인
젓가락질이 탁월했던 서양커플.
푸미홍의 아파트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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