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k600394의 diary
길에서 길을 묻다

길에서 길을 묻다 65: 이탈리아 로마

by k600394 2018. 7. 25.

1

몇 시간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긴 시간을 날아와 레오나르도 다빈치공항(여기에서는 파우미치노공항이라고 한다)에 가볍게 앉았다. 최근 한국인에게 허용된 자동입국수속으로 더욱 가뿐하게 로마에 발을 들여 놓는다. 호텔이 대신 예약한 승용차편으로 트레비분수 인근의 호텔에 짐을 푸니 바깥은 이미 어두워져 있다. 바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트레비분수로 나와 비집고 인증사진만 찍는다.


 

2

다음날 호텔조식도 거른 채 로마테르미니역사 내 집합 장소에 도착한다. 관광버스편으로 하는 남부이탈리아 당일여행에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처음 도착한 곳이 폼페이 Pompeii. 1세기에 베수비오화산 폭발로 화산재에 잠겼다가 1592년 재발견된 도시. 그러나 18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된다. 그러기에 초창기 그리스에 의해 건설되었고 로마에 의해 정복되어 관리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로마식 도로의 형상을 확인할 수 있다. 차도가 인도 보다 낮고 중앙이 배가 부른 형상, 그리고 약간의 경사를 유지하는 것은 우수 처리가 용이하도록 한 흔적이다. 귀족주택 도무스Domus가 상가 Taverna로 변모된 상점가를 확인할 수도 있다. 또 당시에는 재판소 역할을 했던 바실리카 전형도 확인 가능하다.



버스는 세계적인 미항으로 알려졌던 나폴리Napoly를 저 멀리 보며 구불구불한 해안길을 통해 소렌토Sorento로 접어든다. 3층 정도 주택들로 가득찬 시가지가 인상적이다. 여기에서 더욱 작은 버스로 갈아타고 포시타노 Positano로 출발한다. 수 백미터 됨직한 높이의 절벽 위에 깎아 만든 해안도로를 달릴 때는 정신이 혼미해진다. 버스기사는 능숙하게 그 곡선으로 된 길을 빠져나간다.

포시타노 인근의 어느 해안도로에 하차해서 해변가 선착장으로 향해 있는 소로를 걸어 내려간다. 교회도 있고 각종 의류 및 음식점들이 거리를 채운다. 우리 남해의 계단식논이 연상되지만 이 조그마한 동네에서 마주친 갤러리만 해도 3개를 넘는게 참 대단하다 싶다. 급경사지에 들어선 형형색색의 소규모 주택들이 인상적이었지만 전공자로서는 어떻게 이들이 규제, 관리되는지가 더 궁금하다.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아말피Amalfi 해안의 절경을 즐기다보면 살레르노Salerno에 도착한다. 아말피는 눈을 떼기 어려운 절경이지만 이태리 국기에서 한쪽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과거에는 융성하기도 하고 침략이 많기도 했단다.

다시 호텔로 돌아 온 시간이 10시. 그래도 간단히 와인은 한 잔하기로 했다. Peppoli와인인데 20유로 가격에 수준이 높다.

 


3

또 새벽부터 서둘렀다. 예약된 바티칸미술관 입장시간이 7시15분이기 때문이다. 이 티켓으로는 입장하면 간단한 뷔페식 아침식사가 제공되고 우선적으로 관람을 시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9시부터 관람이 시작되는 점을 감안하면 큰 혜택이 부여된 티켓이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시스타경당으로 향한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이 우리에게 예술과 역사를 말하고 있는 곳이다. 유일하게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 거대한 프레스코화 곳곳에 이교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33세에 시작한 천지창조 천장화 작업과 60대에 이르러 제작한 전면의 최후의 심판과는 감동에 큰 차이가 있다. 최후의 심판이 제자에 의해 많은 수정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섬세함과 엄정함에서 천장화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전형성에 젖어 있다 싶다.

 

 

벨베데레에서 진짜 라오콘상도 볼 수 있다. 워낙 모작이 많아 무디어진 것이 안타깝다.



한편 헤매다 찾은 라파엘로방에서 아테네학당을 보는 순간 감동이 몰아친다. 그의 천재성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얼굴 하나 하나에 담겨진 무궁한 표정에 자리뜨기가 싶지 않다. 이미 정식 입장이 허용된 지 한참 지난 후라 라파엘로방은 사람들로 채워지면서 감동은 반감되었지만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더 감동적인 것은 성당 한 켠에 마련된 현대미술실이다. 저명화가들이 종교를 주제로 작품을 그려내고 있다. 샤갈도 있고 달리도 있고 리베라도 있고 하물며 칸딘스키 목판화도 있다. 화가 루오는 깊은 고뇌가 묻어나는 예수를 그리고 있다. 모두들 눈길조차 주지 않고 스쳐가는 공간이었지만 나에겐 더없는 감동의 공간이다.



미술관을 나오는데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끝이 없다. 바티칸광장으로 나왔다. 비티칸성당안의 피에타를 보고자 했다. 그러나 여기도 뜨거운 햇살을 견디며 늘어선 긴 줄을 보고 포기하면서 다음에 다시 로마를 찾을 명분으로 넘겼다. 덕분에 여유있는 점심과 쇼핑이 가능해졌다.




점심 이후 3시5분에 입장이 예약된 콜로세움으로 이동한다. 여기에도 너무 많은, 너무 긴 줄에 당황했지만 사전예약된 관람자들은 간단한 몸 검색을 마치고 통과할 수 있었다. 몸 검색은 이태리 명문 뮤지엄과 시설에는 필수인 것 같다. 그런데 몇 장의 인증사진을 찍고는 그늘만 찾는다. 차라리 퇴장을 하고 어제 묵었던 호텔에 가서 차를 한 잔하고 몸을 식히는 것이 낫겠다 싶다. 그래도 그나마 기다림없이 입장하고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은 살신성인의 조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콜로세움은 검투사경기장였으며 바닥에 물을 채워넣고 해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5만 관중을 수용하고 6단의 객석이나 전면에서 보면 4개층으로 구성된다. 58개의 나무 돛대는 차양막시설이었으며 악취를 없애기 위해 향수를 뿌리는 시설도 있었다고 한다. 기둥은 1층은 도릭, 2층은 이오닉, 3, 4층은 코린티안 양식이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인근에는 콘스탄티누스 아치 개선문이 자리잡고 있는데, 3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후에는 피렌체로 출발했다.

 


그리고 5일만에 다시 로마로 돌아왔다. 트레비분수에 동전도 던져 넣지 않았는데 로마를 다시 찾게 되었다. 베니스에서는 고속철도로 4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숙소는 테르미니역 인근의 별 4개짜리 호텔인데 기초적인 차를 끓여 먹을 수 있는 시설조차도 없다. 별 숫자의 차이를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유독 인근에 인도인이 많다.

저녁식사 때의 와인 남부 바실리카타의 aglianico는 매력적이다. 브랜디향이 나는 듯해 드라이한 것 같은데 포도주의 풍미를 잃지 않고 있다.

 

4

귀국 일정에 맞추어 하루 시내투어를 떠났다. 스페인광장, 트레비분수, 콜로세움까지는 이미 도착 첫 날에 둘러 보아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가이드 상세한 설명이 더욱 실감나게 한다. 트레비분수에서는 전기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 콜로세움 4층 부분이 특이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 이유, 그리고 '빵과 서커스의 정치'를 알 수 있게 된다. 이어 팔라티노언덕을 지나 캄비오에서 미켈란젤로의 설계 의의도 살펴본다. 현재에는 로마시청이 사용중이다.


포로 로마와 베네치아광장과 통일기념관을 거쳐 판테온에 이른다. 판테온은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의미에서 만신전이라고 하며 원구돔의 건축적 의의가 대단하다. 2세기 경에 개축하였는데 지름이 43.3미터에 이르고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등장한 주랑현관(Portico)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keystone 없이 돔의 가운데에 뚫려 있는 구멍이 건축적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건축 전공의 친구가 방문해보길 강하게 권했던 성당이다. 건축에만 관심을 가지다 보니 이 곳에 천재화가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다는 것은 잊고 말았다.



 


라보나광장을 거쳐 로마 외곽으로 이동한다. Catacomb. 옛날 로마시절에 지하 무덤이자 기독교 박해시절에는 교회 역할을 했던 곳이다. 로마수도교도 들린다. 스페인 세고비아의 수도교에 비해 많이 노후화된 듯하다. 2층으로 된 박스형 수로라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사도 바울이 참수당한 곳에 지어진 성당을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마감한다. 사뭇 삶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보게 된다.

버릴 수 없는 학습의욕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지만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다. 즐기기에는 너무 큰 감동이었던지라 이 시간이후부터라도 길게 눈을 감고 음미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