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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컬럼비아대학에서 사회정책을 공부했다는 8년차 뉴요커를 만나 현재 상황을 들어보니 심각한 상황이란다. 확인이 되지 않았을 뿐 뉴욕시민의 감염이 엄청난 수준일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본인도 쌀을 비롯한 식재료를 구입해 혹시나 모를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었다. 한인타운내 슈퍼의 식재료 코너가 동이 났단다.
그래서 모든 일정을 변경하였다. 10년만에 덴버에 가려는 계획도, 3월말에 귀국하려는 계획도, 넉넉하게 뉴욕 맨하탄 일대의 제조업을 탐문하려는 계획도 취소하였다.
오늘 허접하기 이를데 없는 한인숙소에서 벗어났다. Moxy NYC 타임즈 스퀘어는 싸구려 studio형이지만, 혼자 지내는데야 전혀 무리가 없고 편안하다. 오후에는 서점을 둘러 보겠다는 작정으로 길을 나섰다가 점심 식전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중에 보였던 Wasabi는 7th Av와 W 40th St사이에 있는 대중적 Sushi and Bento집이다. 미역미소수프까지 포함해도 13.5달러인데 만족도가 높다.
위에서 내려보면 삼각형의 다리미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Flatiron빌딩은 오히려 사진 촬영 위치에 따라 요상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건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주의 사진작가 Alfred Stieglitz의 1903년 작품에 등장하는 배경인데 말이다. 그런데 때 마침 외관 공사중이었는데 그런 소문을 상쇄하려는 노력의 일환일까? 뉴욕에는 오래 된 건물이 많으니 만큼 개보수하는 건물이 많다. 그래서 뉴욕은 항상 공사중이다.
그리곤 살펴 본 뉴욕 유수의 Strand Book Store, Barnes and Noble은 인기있는 분야의 도서와 잡화를 섞어 파는 곳이었다. 결론은 세부전공에 해당하는 도시 분야의 책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저돌적으로 덤벼든 덕분에 아키텍쳐 코너에서 책 3권은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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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톤스퀘어파크 Washinton Square Park 주변에 유명 사립 뉴욕대학교 건물이 많다. 대학의 공간경계는 없고 빌딩마다 학교를 표시하는 깃발이 이를 알려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처음 오는 시간강사와 신입생들이 강의실을 놓치는 경우도 있단다. 여기도 코로나바이러스 덕분에 폐쇄 안내문이 붙었다.
거기서 동북방향에 있는 그래머시파크 Gramercy Park는 4 에버뉴/20-21 st에 위치하고 있다. 특별하게도 맨하튼 유일의 사유공원이다. 370세대 주민만 출입열쇠를 가지고 있어 이용이 가능하고 일반시민에게는 크리스마스때 단 하루 개방된단다. 1831년 Gramercy Park Historic District를 개발했을 때, 개별 택지매입자가 지구 내부에 위치한 공원의 공동소유자가 되면서 열쇠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에서 유래한다. 좀 더 여유있게 살펴보고자 찾은 공원 앞 Gramercy Park Hotel의 유명한 찻집은 이미 폐쇄되었다. 공원과 연결되어 있는 어빙플레이스 Irving Place는 고소득층 주택가로 유명하다.
이태리 음식과 식재료로 특화된 Eataly 입구에는 'Italy is eataly' 광고판이 재미있다. 이태리에서 직수입한 식재료를 판매하기도 하고 요리한 음식을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편이다. 이 곳도 코로나 한파를 비켜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Union Square를 지나 클럽모나코의 의류 가게와 랄프로랜에서 운영하는 커피 가게가 함께 들어서 있는 현장을 본다. 전에는 꽃 가게도 있었으나 의류에 장소를 내주고 말았다. 서울에서도 자주 목격되는 복합 토지이용의 한 형태이다.
그리고 Ace호텔 내 Stumptown커피숖에 들려 원조 nitro cold brew를 맛본다. 나에겐 특징적이지만 매력적이지는 않다. 지금은 스타벅스에서 판매할 정도로 유행이란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호텔 로비에 즉석사진방이 있다는 것이다.
Parsons라는 유명 디자인 학교도 이미 폐쇄되었고 거리에 사람도 한산하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이 그랑센트랄 Grand Central 역이다. 역사 천장의 별자리 문양으로 유명하지만, 미국에서 경쟁력을 잃어가는 철도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트랙수도 작고 이용객도 많지 않다. 대신 쇼핑과 푸드코트 형식의 식당가만 남아 그나마 성업중이다. 오피스 밀집지역에 들어선 푸드코트 형식의 urban space도 둘러본다. 맛만 보장이 된다면 경쟁력이 있겠지만 그것을 겸비하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브라이언트파크 앞 안다즈호텔 지하의 'the bar'을 알게 된 것은 덤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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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학, 미술관, 공공기관, 일부 식당까지 문을 닫았다. 찾고 싶었던 노이에갤러리, DIA센터도 폐쇄되었다. 안전한 개방 공간을 찾기로 했다.
먼저 Christopher park이다. 여기에는 George Segal의 '게이해방'이라는 작품이 있다. 게이와 레즈비안 두 커플이 각각 서 있거나 벤치에 앉아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두 커플의 표정이 행복하지 않고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 주변에는 무지개 깃발을 내건 식당들이 눈에 보인다.
거기서 두 블럭 정도 떨어진 곳에 유명한 Blue Note jazz club이 있다. 특이하게 일요일 오전 11시반에 첫 공연이 있었다. Charlie Apichella & iron city 밴드인데 기타, 드럼, 건반, 색스폰에 트럼펫 객원연주자가 함께 한다. 이른 시간에 무슨 흥이 날까 싶었는데 나름 열심히 하는 모습이다 보니 점점 연주에 빠져든다. 하지만 채운 좌석도 몇 테이블되지 않은데다 의외로 관광온 듯한 젊은 동양계 남자들이 많다 보니 호응이 없어 삭막한 분위기이다. 팁까지해서 50달러는 브런치, 음료 하나가 포함된 가격이다. 음악을 즐기느라 양조차 많은 브런치는 호텔로 싸가지고 왔다.
그리고 커피가 맛있다고 소문난 Joe coffee 가게를 찾아 갔더니 'social distance' 확보를 위해 의자를 재배치했다는 안내문이 커다랗게 붙어 있다. 자리를 많이 없앴다는 뜻이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고 앉을 자리가 없어 그냥 돌아섰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도시락을 사려는데 Wasabi도 문을 닫았고, 편의점에도 살만한 것이 없다. 겨우 타코 하나 사가지고 와 늦은 점심으로 요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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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을 마치고 방으로 오는데 긴급문자가 울린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범죄 관련 차량수배 문자란다. 혹시 코로나 관련 문자아닌가 걱정했다.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덕분에 오전에는 이 곳에서 구입한 책을 읽어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The heart of the city'는 Alexander Garvin(lower manhattan development corporation 부사장)이 은퇴 후 도심의 활성화를 주제로 들여다 본 2019년 저서이다. 서문이 재미있어 다음이 기대된다.
점심을 위해 호텔을 나서다 보니 PABT 앞에 노란 뉴욕택시들이 한 개의 차로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승객를 태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택시 행렬이란다.
방금 전, 식당과 50인 이상 행사를 제한한다는 뉴욕주 등 3개 주지사의 발표가 있었다. 스타벅스 커피숖, 피자가게는 아예 앉을 자리를 없앴다. Wasabi도 자리를 없앴고 'to go'만 가능하다. 커피 조차 앉아 마실 곳이 없다. 그런데도 맨하탄에서 여전히 마스크 착용자가 거의 없다.
다행히 뉴욕타임즈 지하의 Wolfgang steak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하지만 손님은 몇 테이블 되지 않는다. 비싼 점심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책을 펼쳐든다.
저녁은 인근 초당골 순두부집에 갔다. 오늘은 저녁 8시까지, 내일부터는 'to go'만 가능하다며 앞으로 한 달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와인 Apothic Red를 사가지고 왔다. 달콤하면서 드라이하고 묵직함, 매운 맛이 느껴진다. 역시 쉬라, 진판델 중심의 블렌딩 와인이다. '호텔 격리' 첫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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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격리 2일차이다. 조식을 위해 호텔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식당은 문을 닫고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었다. 호텔방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시내로 나가 보았더니 Wolfgang steak마저 문을 닫았다. 모든 식당과 찻집이 문을 닫았고 일부만 'to go'가 가능할 뿐이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Wasabi에서 점심용 도시락, 그리고 우연찮게 본 Cafe Hestia에서 김치라면을 구입해 왔는데 모두 나쁘지 않다. 이제 유명 백화점도 문을 닫았고 학교도 4월 20일까지 휴교 조치란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허용치만 제외하고 도시봉쇄가 된 셈이다.
남은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때우고 역시 남은 와인으로 호텔방에서 혼자만의 환송회를 가진다. 혼자서 하는 환송회라 서글프지만, 관리가 되는 내 나라로의 귀국길이라 안심이 되는 내일이다. 혹시 출국수속이 지체되지 않을까 싶어 내일 서둘러 출발해야 할 듯하다.
이런 어려운 사정에서 이루어졌던 도시탐사도 나름 의미가 있었다. 뉴욕은 노숙자들이 많고 관광객이 많아 유행 전염병에 무방비 노출가능성은 높지만 진단 자체는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당국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강제적으로 폐쇄 조치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학교는 물론이고 공연장, 식당 모두 폐쇄하는 것이다. 뉴욕은 수요 관리중심이 아닌 공급 관리중심의 대책 선택이 불가피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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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침식사는 도시락이다. 러시아워에 해당하는 8시경에 호텔을 나서는데 거리가 한산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이겠지 싶다. 34th Penn station에서 E노선을 탑승했는데 역시 빈 자리가 많다. 참고로 뉴욕 지하철은 24시간 운행하고 1회 탑승 운임이 무조건 2.75달러이다. 30분만에 Sutphin Blvd역에 도착한다. 그 다음역이 종점인 Jamaica Center역이다. 여기서 환승하여 7.75달러를 내고 Airtrain을 탑승해서 원하는 터미날에서 내리면 된다. 이 노선이 가장 싸고, 언제든 이용가능하고, 나름 빠른 노선이다. 출국장 대한항공 데스크 앞에서는 마스크를 하지않은 승객과 직원을 보지 못했다. 여타 항공사 데스크 앞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자택대피명령이 목전에 와 있고, 사망자수가 미국이 한국을 상회했다는 보도를 앞에 두고 귀국길에 오른다. 한국에서 출국할 때는 미국에서 입국제한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돌아올 때는 오히려 한국에서 입국제한이 있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다. 한국에 도착하는 날인 19일 0시부터 특별입국 절차가 진행된단다. 기내에서부터 별도의 건강상태검사표를 작성한다.
비상시국이라 귀국길에 오르지만 여전히 미련은 남는다. 뉴욕스튜디오스쿨에서 Ashcan school of art의 작품, Gray Art Museum, 그리고 Soho에서 New art Museum, Dia Center, Noie Museum에서 클림트 작품, Gagosian museum 등을 그냥 두고 간다. 다음에 다시 찾게 될 이유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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