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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험한 분위기 때문에 진작 파리에서 뉴욕으로 목적지 변경은 했다. 미국도 여의치않아 시시각각 전해오는 미국의 반응에 귀 기울이다 망설임 끝에 출발하기로 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영향으로 공항버스와 공항은 텅 비었다. 출국수속도 짧게 끝났고 곳곳에서 건강점검이 이루어진다. 현재 내 체온은 36.2도.
역시 기내에도 좌석이 많이 빈다. 오전 10시 출발이니 기내에서 아무리 잠를 청해도 정신은 말똥하다. 책 한 권을 준비했다. 양은희의 '아트앤더시티(랜덤하우스, 2007)'. 미술전공의 뉴욕커로서 10여년의 뉴욕생활을 정리한 미술예술 중심의 안내서이다. 꼼꼼하게 잘 정리된 책이다. 덕분에 완독했다.
미국 입국수속은 생각했던 것 만큼 까다롭지 않았다. 입국신고서는 따로 없고 키오스크를 통해 입국수속을 마칠 수도 있다. 그러나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출입국공무원 앞에 설 수 밖에 없었다. 주로 구두 질문에 그쳤고 개별 체온 측정도 없었다. 다만 열손가락 지문을 입력하는데 기기가 잘 작동하지 않아 시간이 걸렸다.
정작 어려움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맨하튼으로 오는 것이었다. 먼저 공항버스를 타려는데 첫 버스 운행시간이 11시부터인지라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Airtrain으로 변경했는데, 처음인데다 개념도 없어서 실수가 많았다. 공항터미널을 순회하는 Airtrain에 탑승하고 인근 지하철역(Jamaica)에서 환승한다. 그리고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도심 맨하튼으로 진입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신용카드로 티켓을 구매하려다 실패도 하고 개찰하는 방법도 실수가 있었다. 지난 번 방문시 우버를 이용했더니 이번 방문에 이렇게 애로를 겪는다.
겨우 찾아간 한인운영 숙박업소는 시설이 낡고 소음도 심해 실망스럽다. 주인은 코로나로 인해 동양인들을 경계하니 관광 중에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팁을 준다. 일단 짐을 풀고 몇몇 지인에게 연락을 취해 보는데 그 중 잘 아는 대학원 후배가 말기암 투병중이라니 마음이 무겁다. 어차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세상과의 인연을 끊게 되겠지만 60세가 채 되기 전에 인생 막다른 길목에 와있다는 소식에 황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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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때문에 밤새 이리저리 딩군다. 숙소가 도로변이라 끊임없는 사이렌 소리와 클랙션 소리에 숙면을 취할 수도 없다. 숙소 앞에 있는 요상한 건물이 PABT(Port Authority Bus Terminal)이다. 지방 장거리를 다니는 맨하튼내 터미날 3곳 중의 하나이다. 별도의 입체 진출입로가 있어 주변 지역에 미치는 교통부하가 적은 것이 인상적이다. 우리 현실과 대조를 이룬다.
그래서 체험을 겸해 시외버스를 이용해 필라델피아로 가기로 했다. 개념작가 뒤샹의 작품을 필라델피아미술관에서 많이 만날 수 있고 미국독립 당시의 임시수도로서 미국의 정신적인 지주 도시로 알려져 있기때문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터미날내 그레이하운드 키오스크를 통해 간단히 표를 구매한다. 그런데 2배 정도 차이가 나는 가격의 표 2종류가 있다. 설명상으로는 비싼 표는 짐을 많이 싣을 수 있고 자리 제한이 없다는 정도이다. 17달러의 싼 표를 구입했더니 52번 화장실 앞이다.
터미날에서 램프를 이용해 허드슨강 지하의 링컨터널에 진입하면 곧 고속도로에 들어서게 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버스에 안전띠가 아예 없다. 벼락같은 몸집의 중남미 친구와 어깨를 같이 하며 2시간을 달려 필라델피아에 도착한다. 필라델피아버스스테션이 차이나타운 내에 있어 베트남국수로 이른 점심을 한다. 구글지도를 믿고 미술관을 찾아 나서 30분만에 도착했다.
필라델피아미술관(Philadelphia Museum of Art) 전면은 72개의 계단으로 되어 있다는데, '록키' 영화를 찍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미술관 오른편에 양손을 치켜든 권투선수상이 있는데,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인기 있는 장소이다. 그리고 미술관에서 시청으로 연결된 간선도로와 워싱턴장군 동상이 자리잡고 있는 가로공원은 장관이다.
미술관의 3층은 근대이전, 2층은 인상주의 이후 현대 작품과 기획전이 열린다. 3층에서 베니스파 카날레또, 들라쿠르와 등의 작품들과 엄청난 크기의 태피스트리가 눈길을 끈다. 2층으로 내려가면 베르나르, 뷔야르, 마네, 세잔과 같은 인상주의 작품도 많지만 고흐의 유명한 '해바라기'가 강렬하게 눈길를 끈다. 알려진 대로 마르셀 뒤샹의 유명한 샘, 자전거 바퀴, 깨진 창문도 전시되고 있는데, 프랑스에서 태어난 미국 작가로 소개되고 있어 어리둥절하다.
피카소, 브랑쿠시에서 그래피티에 이르기까지 소장품의 범위가 폭넓어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미술관이라는 것이 이해된다.
지근거리에 로댕박물관이 있어 들렸다. 규모는 아담했지만, 칼레의 시민들,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대표작이 전시되고 있어 제법 형식을 갖추었다. 전시공간의 가장 가운데를 키스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당당하게 모작이라고 밝히고 있어 웃음짓게 한다.
돌아오는 길에 살펴본 도심에는 고층건물 사이의전통건물에서 역사를 보전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도심에 자리잡고 있는 'Love park'도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비율이 50%로 높고 역동성도 떨어진 느낌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신생독립국가에서나 봄직한 '독립(independence)'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본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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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도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곳이 할렘이다. 할렘가스펠투어가 있어 신청했다. 43번가에 모여 한 대의 버스로 이동하는데 모두 52명이다. 그 중 동양계는 나 혼자이고 게다가 혼자 온 사람도 나 하나이다.
Anthony라는 이탈리안계 가이드는 1992년까지 할렘에서 살았다며 방송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겨서 그렇지 사람 살기 좋은 곳이란다. 근린관계, 재즈라는 음악이 있는 미래의 거주지라고 할 수 있단다.
'콜롬부스 서클'을 거쳐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댄젤 워싱턴이 살았던 곳, 존 레넌이 살았던 다코타하우스를 소개한다.
할렘 Harlem은 어원이 네덜란드 지명 Haarlem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가이드는 독일에서 유래했다고 했지만). 110번가까지 센트럴파크가 끝나지만 주변의 116번가까지는 고층으로 개발되고 보니 실질적으로 116번가부터 할렘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크게 서쪽 할렘과 동쪽 할렘으로 구분되고 특히 동쪽 할렘은 스페니쉬 할렘, 이탈리안 할렘 등 다양한 인종 할렘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쪽 할렘 중심에는 독립되기도 전인 1754년에 설립된 컬럼비아대학이 자리잡고 있는데, 폐쇄적 대학경계가 아니라 건물중심으로 들어서 있다. 공공주택 public housing 도 많이 목격이 되는데 슬럼화되어 을씨년스럽다.
Apollo라는 유명한 클럽을 소개받았다. 덴버에서도 도심에 아폴로 클럽이 있었는데, 음악의 신 이름에서 유래한 아폴로는 흑인클럽의 성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곤 어떤 흑인교회의 예배에 단체로 참여한다. 예수를 신으로 믿는다는 귀절을 심하게 강조하고 GHTD(Greater Highway Deliverance Temple)라는 교회 명칭이 다소 어색하다. 유사 신흥종교라고나 할까. 사전을 찾아보니 temple은 사원이라는 뜻도 있고 예배당이라는 뜻도 있다. 예배당 전면부 양편에 백인 주교와 어떤 노여성 사진이 큼직하게 걸려 있다. 가스펠로 찬양하는 시간에는 모두 일어서 춤을 추며 열정적으로 흥겨워한다. 마치 공연을 보고 있는 듯하다. 중간에 헌금통도 돌려서 얼마간의 헌금도 한다. 주교(bishop)의 설교가 시작되기 전에 모두 자리를 떠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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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뉴욕에서 인턴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그 전에 잠깐 시간 여유가 있기도 하고 평소에 궁금증이 많았던 가먼트디스트릭을 둘러 보기로 했다. 6번에서 9번 Avenue사이, W 34번가에서 W 42번가 사이를 garment distict라 한다. 주로 의류 관련 업종이 몰려 있다. 1층 전면에 의류, 신발관련 가게들만 보이지만 상층부에 많은 관련 업종이 들어서 있다. 동양계 여성들이 눈에 많이 띄고 아침9시를 훨씬 넘었지만 개점하지 않은 점포도 많고 한참 바쁜 가게도 있다. 그후에 일요일에 영업을 하던 가게도 있었는데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듯하다.
가끔 한글 간판도 보이고, 7가 애버뉴와 39가 st에는 단추와 바늘로 형상화하고 미싱하는 유대인 미싱공을 형상화한 공공설치물도 볼 수 있다. 뉴욕경제개발공사(NYCEDC)자료에 의하면 900개의 글로벌 패션업체가 뉴욕에 몰려있다고 한다.
젊은 친구를 만나 오랜만에 서로의 소식을 나눈다. 간단히 브런치하고 헤어지려고 했더니 나름 식당과 다음 행선지를 준비해 왔다.
오물렛과 커피가 맛있는 브런치를 마치고 루스벨트아일랜드 Roosevelt Island로 안내받았다. 지하철 1회 비용으로 Tramway를 타고 이스터강을 건너는데 그 높이가 7층 이상이 될 정도로 높다. 옆에는 퀸즈보로브릿지 Queensboro Bridge가 같이 지나간다.
이스터강의 중간에 놓인 세장형의 루스벨트아일랜드는 1972년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루이스 칸 Louis Kahn에 의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포 프리덤스 파크 Franklin D. Roosebelt Four Freedoms Park로 진행되었다. 우여곡절을 겪고 2012년에 그의 아들에 의해 완공된다.
현재는 코넬테크와 주거용 고층건물만 있는 한적한 곳이었다. 맨하탄쪽으로 유엔 건물이 가장 눈에 들어온다. 이 젊은 친구는 혼자 이곳에 와서 산책도 하고 글도 쓰면서 이국에서의 외로움을 즐긴단다. 진지하고 건실한 모습이 보기 좋다. 나올 때는 지하철을 이용하여 맨하탄으로 나왔다.
그 친구와 헤어져 오후에는 여유를 갖고 걷기로 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최근에 개장한 Vessel을 볼 수 있다. Vessel은 벌집 형상의 구조물인데, 영국 건축가 Thomas Heatherwick의 작품이다. 2500여개의 계단 구조물로 허드슨강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게 된다. 랜드마크로서의 의의가 높지만 평가는 엇갈리는 듯하다. 나는 구조물이 아닌 설치작품으로 받아들였다.
거기서부터 하이라인이 시작된다. 첼시마켓까지 걸어왔는데 우리의 서울7017과 비교하여 뛰어난 점을 10가지도 넘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걷다가 앉았다가 하면서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의 산책객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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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게으름을 부려 한숨을 돌리는 여유를 갖고자 한다. 그래도 아직 10시 반이다. 이리저리 동선을 생각해보다 Equitqble Bd.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연전에 왔을 때 밤 늦은 시간에 비까지 내려 제대로 된 사진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적극 활용하고자 했다. 본격적인 도시계획없이 뉴욕 초창기에 형성된 lower Manhattan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가로폭은 좁고 가로망은 불규칙적이고 건물은 개방감 없이 따닥따닥 붙어있어 복잡한 느낌을 더해 준다.
뉴욕증권거래소 앞에는 견학이나 관광을 온 이들로 붐빈다. 바로 앞에 워싱턴동상이 있고 이 자리가 최초의 연방건물이 들어선 자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뉴욕시청 앞을 거쳐 브루클린브릿지 Brooklyn Bridge 로 접어들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이런 관광도 가능하구나 싶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까지 거센데도 찾는사람이 많다. 다리 1층은 차량이, 2층은 보행인들이 차지하는데 다양한 형태의 기념사진을 찍느라 정신없다. 강을 건넜으면 브루클린이다. 브루클린브릿지와 맨하탄브릿지 사이를 Dumbo라고 한다.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여러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먹거리만 밀집한 것이 아니라 미술관도, 디자인계 회사도 자리를 잡고 있다. Rooftop 푸드코트에서 타코와 와인 한 잔으로 넉넉한 시간을 보낸다. 월스트리트에서 점심식사를 할까 하고 기웃거렸는데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귀가할 때는 지하철로 돌아왔는데 출구에 따라서는 4개 블럭 정도 떨어진 완전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오게 되기도 한다. 그만큼 규모가 큰 지하철 역사가 있다는 의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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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tery Park City는 뉴욕시가 소유한 허드슨 강변 37만㎡ 매립지를 복합개발한 시가지이다. 별도의 개발주체를 설립해서 1968년부터 30년동안 계획개발되었는데, 21만㎡의 사무실과 1만여 대 주거가 공급되고 호텔, 박물관과 학교, 요트장이 확보되었다. 30% 이상이 공원 등 공공용지로 개발되어 쾌적성이 담보되지만, 토지소유권이 없어 투자매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다. 2017년 뉴욕시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선정되었지만 대신 가장 높은 임차료를 지불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는 지하철역으로 부터는 먼거리이다. 그나마 1호선 Chambers St 역에서 내려 접근하는 것이 최단거리이다.
가장 북쪽에 있는 록펠러공원에서 부터 걷기 시작했지만 두드러진 특징은 잘 보이지 않는다. 허드슨강변에는 주로 공원를 배치하였고 단지 중앙에 쿨데삭 형태의 트래픽카밍이 설치되어 있지만 경제적 카밍도 함께 한 듯하다. 빈 가게도 보인다.
시가지의 가장 남쪽에 유태인박물관(Museum of Jewish Heritage – A Living Memorial to the Holocaust)이 입지하고 있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치Auschwitz 수용소에서 자행되었던 홀로코스트가 발생하는 과정을 증언, 유물, 역사를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격앙되지 않고, 가르치려 들지 않고, 사실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소독한다고 가스실 Crematorium에 옷을 벗기고 투입되었을 때의 아비규환도 의성어로는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는 절제된 증언만 있다. 남겨진 옷들만 보여준다. 그런데 차분히 감동에 젖는다. 박물관 앞에는 유태인 100명이 함께 타고 이동했다는 열차 1량이 전시되고 있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으로 'original bagel and lox'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lox가 훈제된 연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 다음은 배터리파크이다.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곳이다. 클린턴 포대를 복원하고 티켓은 거기에서 판매한다. 30여년전에 다녀온 경험만으로 충분하다.
맨하탄의 가장 남쪽에는 1호선의 종점인 South ferry역이 있다. Staten Island로 가는 24시간 무료 페리를 탈 수 있는 터미널이 있는 곳이다. 주중 낮 시간대 인데도 의외로 이용객들이 많다. 터미널 1,2층에서 페리 1,2층을 동시에 탑승할 수 있어 탑승시간이 짧다. 20여분만에 도착한 Staten Island쪽 터미널에는 여러 교통편과 연계, 아울렛이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그닥 매력적이지 않아 대합실에서 조금 졸다가 생수 한 병만 사가지고 왔다.
뉴욕의 햄버거 양대 산맥은 Five Guys와 Shake Shack으로 알려져 있다. 햄버그 자체를 좋아하진 않지만 일부러 Five Guys의 리틀치즈햄버그를 구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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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tt Center의 Adam Fiedmann에게서 아직 연락이 없다.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기대하는 것도 무리인듯해서 그냥 위치도 확인할 겸 편안하게 들려보기로 했다.
정식명칭은 Pratt Center for Community Development인데, 비영리의 비민간비공공단체이다. 자료에 의하면 주로 뉴욕시의 위탁을 받아 각종 커뮤너티 개발을 위한 사업을 수행하고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지하철 E선을 타고 가다 Court Sq역에서 갈아타야 하지만 아예 내린다. 여기에 MoMA P.S.1이 있어 이번 기회에 찾아보기로 했다. 전세계 현대미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정오부터 개장이라니 2시간이나 남았다. 지근거리에 있는 5 Points graffiti는 폐업이란다.
그래서 먼저 Pratt Center부터 가기로 했다.
G선으로 갈아타고 Classon Av 역에서 내렸다. 뭔가 묘한 슬럼분위기를 피부로 느끼며 Pratt Center를 찾았다. 예술분야 중심의 Pratt Institute 내에 위치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출입이 엄격해서 신분증을 확인해야 출입이 가능했다. 그 친구를 찾아서 만났는데 행사가 있어서 바쁜 상황이란다. 나중에 확인했지만 '2020 pratt shows'가 5월까지 진행된다. 부담주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대신 도보권내에 있는 Brooklyn Navy Yard를 추천해 주었다. 1966년에 페업된 해군조선소를 산업단지로 바꾸어 성공했단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산업단지 입장도 ID가 있어야 가능했고 투어 프로그램이 없어져서 아쉬웠다. 하지만 브루클린해군조선소 역사박물관에서 차도 마시고 산업 미술작품 전시회도 보고 역사사진도 둘러보는 것으로도 좋다.
이제 다시 MoMA P.S.1이다. 그런데 안내데스크에서 설명을 하는데 뭐라고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 4월까지는 미술관 전체가 전시 준비중이며 10달러에 미술관투어만 가능한데, ICOMOS 무료입장객은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James Turrel의 작품만 이용가능하다며 어떤 방으로 안내해준다. 가운데 하늘이 뚫린 것처럼 되어 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 본격적인 전시가 아니라서 빛의 변화가 없는 것이란다.
이번 귀가길에는 Shake Shack에 들려 치킨햄버그를 사가지고 왔다. 어제는 맨하탄에서 1시간 떨어진 New Rochelle을 봉쇄했고, 오늘은 30일간 유럽으로부터의 입국금지 조치가 취해졌다. 뉴욕주의 250명 이상 공연, 미술관도 통제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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