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울산역에서 바로 렌트카를 이용하여 석남사를 찾았다. 불과 1시간 전까지 비가 쏟아졌다니 물을 머금은 숲은 짙어졌고 계곡의 물은 풍부했다.
비구니사찰로 유명한 석남사는 마치 정물화를 보듯 단아하고 고즈넉하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연결되는 참배길은 차도와 분리해서 숲속으로 안내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원래 도축장이 있었던데다 경부고속도로 공사 현장인부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불고기마을이 여기서 멀지 않다. 이제는 '언양 봉계한우불고기특구'로 자리잡았다. 숯불 가장 가까이에 평평한 철판을 깔고 그 위에 석쇠를 얹어 은근하게 불고기를 구워먹는 방식이다. 그 중 기와집을 추천받았다. 참 오랜만이지만 아직 맛은 살아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고래를 체험해볼 수 있는 도시 울산이니만큼 고래체험관를 찾았다. 돌고래쇼는 코로나로 인해 중단상태이다. 수족관을 빙빙돌던 돌고래 한 쌍은 사람이 그리웠는지 관람창 너머있던 나에게 반가운 눈길을 준다.
인근에 고래박물관, 고래바다여행 크루즈선, 모노레일, 옛 포경선 그리고 고래연구소까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크루즈선은 오늘도 50명의 관람객을 채우지 못해 운행정지상태이고, 관람객을 잃은 매표소에서 매표원만 기약없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전리 바닷가에 자리잡은 동남횟집의 물회는 이름값 이상이다. 인근 해안가 찻집 '보름'의 시그니처 '보름 라떼'도 기대 이상이다. 방파제를 삼킬 듯 달려드는 파도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으로 여유를 즐긴다.
이 해변에서 25km 떨어진 반구대암각화를 찾아 나섰다. 논란이 많은 곳이다. 1995년 국보로 지정된 반구대암각화이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려는 문화재청과 식수원 확보가 필요한 울산시와의 갈등이 깊어져 있는 상태이다.
암각이 가능했던 것은 바위의 재질이 shale과 hornfels, 우리말로 이암과 변성암이기 때문이다. 가는 길이 온통 붉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으리라.
1시간 가까이 운전 끝에 찾은 반구대암각화는 감동이상이다. 반구대 앞을 흐르는 대곡천과 펜스 때문에 건너 갈 수 없었지만 망원경으로 암각화를 관찰할 수 있다.
우연히 만난 대곡리 주민대표와 문화해설사의 적극적인 권유로 오후 3시가 넘어서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벽면이 햇살을 받으면서 암각화의 윤곽이 뚜렸해졌고 7천년을 건너 감동이 전달된다. 자연스레 탄성이 터져 나온다.
고래 사냥 모습과 물개 가죽으로 만든 사냥도구 부구, 그리고 작살이 선명하다. 표범, 사슴도 보인다.
망원경에 사진기를 대고 촬영할 수 있는 기술까지 전수하면서 울산인의 자부심을 전달하려던 이들을 뒤로 하고 렌터카 반납을 위해 떠나는 발길이 아쉽다. 초입의 반구대암각화박물관과 모하아트센터를 휘 둘러보고 돌아섰지만 반구대암각화의 감동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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