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구절36 내가 요즘 배우는 것들 내가 요즘 배우는 것들 최영미 바쁜 입에 넣기 좋게 교양을 토막 내어 편집하기 부드럽게 거절하며 적을 만들지 않는 요령 속을 드러내며 진짜 속은 보이지 않기 세 번 갈 길을, 한번에 몰아서 가기 * 나도 요즘 배우는 것들이 있다. 조각난 미망들 허물기와 아련해질 때 논문에 집중하기. 2013. 5. 14. 이별없는 시대 이별없는 시대 황동규 늙마에 미국 가는 친구 이메일과 전화에 매달려 서울서처럼 살다가 자식 곁에서 죽겠다고 하지만 늦가을 비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인사동에서 만나 따끈한 오뎅 안주로 천천히 한잔할 도리는 없겠구나. 허나 같이 살다 누가 먼저 세상 뜨는 것 보다 서로의 추억이 .. 2013. 2. 5. 서시(序詩) 서시 나희덕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2013. 1. 24. 그리운 이에게 그리운 이에게 나해철 사랑한다고 말할 걸 오랜 시간이 흘러가 버렸어도 그리움은 가슴 깊이 맺혀 금강석이 되었다고 말할 걸 이토록 외롭고 덧없이 홀로 선 벼랑 위에서 흔들릴 줄 알았더라면 세상의 덤불가시에 살갗을 찔리면서도 내 잊지 못한다는 한마디 들려줄 걸 혹여 되돌아오는 .. 2012. 9. 29. 먼저 떠난 고등학교 동창의 딸 아이 편지 얼마 전 스스로 이 세상을 떠난 고등학교 동창녀석이 있다. 멀리서 마음이 안타까웠는데... 그의 딸 아이가 고교동창 블러그에 글을 올렸다. 얼마나 기특하고 감동적인지... 그 글을 옮겨 본다. To. 해동고 37기 아버지들께.. 안녕하세요? 저는 고 피귀동씨의 딸 피 O O 입니다.. 집의 .. 2012. 1. 11. 닿지 않은 이야기 닿지 않은 이야기 - L에게 유희경 달이 있더라니 구부러진 뒤에야 밝은 줄 알았다 귀 를 대고 한참 서 있었다 그저 아득하기만 한 그런 밤 이었다 누가 손등을 대고 까맣도록 칠해 놓은 그런 앉았다가 떠난 자리를 꽃이라 부르고 많은 것들을 보 여 주고 싶었던 그래, 누가 흔들고 지나간 것들을 모 아 .. 2011. 8. 13. “우리나라 지식인들 ‘정치’에 함몰돼 제구실 못해” 문화일보 <파워인터뷰> 2010. 7. 30 “우리나라 지식인들 ‘정치’에 함몰돼 제구실 못해”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대학시절 이인호(74) 당시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지식인의 표상처럼 느껴졌다. 혁명과 학문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던 청년에게 ‘지식인과 역사의식’을 논하고 ‘인텔리겐치아.. 2010. 8. 5.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 2009. 12. 7. 이 도시도 한때는 울창한 숲이었다. 이 도시도 한때는 울창한 숲이었다 이기철 이 도시도 한때는 울창한 숲이었다. 이 빌딩도 한때는 부드러운 숲과 소낙비를 기다리는 나무들이었다. 이 쓰레기 매립도 폐차장도 한때 우리의 맨발을 받아준 꽃밭이었다. 우리를 잠시 그 자리에 서게 하는 신호등의 네거리도 한때는 파꽃 피는 채소밭이었.. 2009. 8. 2. 상한 영혼을 위하여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 2009. 4. 2. 사십대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 사십대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 고정희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로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 사십대를 넘어 넘어, 육십까지 넘어서면 희열과 슬픔이 구분.. 2008. 9. 13. 결국 제 길을 간다 결국 제 길을 간다 이희중 어느 저녁 당신이 친구들과 질펀한 술자리에서 주량에 넘치는 술을 마시고 어깨 동무를 풀기 싫어 밤새 한 몸으로 비틀거렸다 한들, 좋은 계절․당신과 그들의 찬란한 여행은 계속되었고 한 아궁이에서 지은 여러 끼니를 나누어 먹으며 낯선 풍물에 똑같이 놀란 후 단체 사진을 수없이 찍으며 각별한 우애를 다졌다 한들, 개중 몇이 당신과 고향이 같거나 다닌 학교가 같음을 우연히 알아 평생 같은 편인 운명을 단단히 믿으며 수시로 밀담과 음모를 나누었다 한들, 당신 좋아하는 영화나 노래를 똑같이 좋아하는 어떤 친구가 애초부터 당신과 같은 사람임을 섬광처럼 느꼈다 한들, 추운 날 따스한 잠자리가 아쉽던 당신이 또 어떤 친구와 한방에 들어 옷 속에 숨긴 몸을 다 꺼내 귀한 따뜻함을 나누었다 한들,.. 2008. 9. 13. 이전 1 2 3 다음